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 본문
제1장 디포네고로 왕자 유년기의 시대적 배경
디포네고로 왕자는 1785년 11월 11일 새벽녁, 당시 ‘동인도’라 불리던 현재의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위치한 요그야카르타(Yogyakarta)에서 하멩꾸부워노 왕가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특별시 중 하나인 요그야카르타가 이 이야기의 주무대가 되는데 여기서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족자’(Yogya)라고 줄여 부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갓 태어난 왕자에게 아버지 라덴 마스 수로요(Raden Mas Suyojo)가 붙여준 이름은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 (Raden Mas Mustahar)였습니다. 왕가와 귀족들의 이름 앞에는 깐젱(Kanjeng), 라덴 마스(Raden Mas), 구스티(Gusti), 번도로(Bendoro) 등 고귀함을 나타내는 칭호가 붙고 공주나 왕후의 이름 앞에는 라덴 아유(Raden Ayu), 깐젱 마스(Kanjeng Mas) 등이 붙곤 합니다. 그래서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란 ‘무스타하르 왕자’라는 의미로 쉽게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아버지 라덴 마스 수로요는 무스타하르가 25세가 되던 1810년 ‘하멩꾸부워노 3세’(Sri Sultan Hamengkubuwono III)라는 공식 호칭과 함께 족자 술탄국의 3대 국왕으로서 왕좌에 오르게 됩니다. 그때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도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디포네고로 왕자’라는 이름을 받게 되죠. 그는 아버지에게 첫 아들이었고 훗날 왕가와 족자 술탄국 신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으며 당연히 왕위계승서열 가장 앞쪽에 있었습니다. 훗날 술탄이 된 아버지 역시 그가 자기 뒤를 이어 족자의 술탄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무스타하르야. 난 네가 훌륭한 술탄이 될 거라 믿는데 왜 국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소홀히 하고 뜨갈레죠(Tegalrejo)의 할머니 댁에만 가 있는 게냐?”
“아버님…, 저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낮게 한숨만 내쉴 뿐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들의 마음 속에 사무치는 열등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라덴 아유 망꼬로와티(Raden Ayu Mangkorowati)는 빠찌딴(Pacitan) 지역 출신의 후궁이었던 것입니다. 누구도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암투가 횡횡하는 왕가에서 정실부인을 어머니로 두지 않은 왕자들이 겪는 남모를 차별대우를 디포네고로 왕자도 겪었을 것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스타하르는 철들면서 그 부분을 더욱 의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마타람의 정기를 이은 왕가의 사내 놈이 의기소침하다니 꼴불견이구나! “
40살이 넘도록 구스티 라덴 마스 순다라(Gusti Raden Mas Sundara), 즉 순다라 왕자라고 불리던 할아버지는 무스타하르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족자 술탄국의 두 번째 술탄 하멩꾸부워노 2세가 되어 왕좌에 앉지만 왕자 시절의 불 같은 직선적 성격은 술탄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스타하르 왕자야, 넌 아무래도 이 왕국을 세우신 네 증조부님의 정기를 좀 더 듬뿍 받아야 할 것 같구나. 뜨갈레죠(Tegalrejo)에 그렇게 뻔질나게 다닐 거면 아예 증조모님께 시조 술탄 어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오려무나!”
할아버지 하멩꾸부워노 2세는 괄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습니다. 왕실에 차고 넘치던 왕자들 사이에 특별히 누굴 편애하는 모습은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하멩꾸부워노 2세는 딱히 개의치 않았고, 호통치는 듯한 그 목소리엔 첫 손주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 있었음도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무스타하르의 유약한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인 하멩꾸부워노 2세는 손주가 강하게 성장하길 바랬고 그러기 위해 무스타하르를 이민족 입김이 거센 끄라톤 궁전이 아닌, 궁 밖에서 키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1755년 족자 술탄국을 세운 하멩꾸부워노 1세는 무스타하르 왕자가 일곱 살이던 1792년 3월 24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왕비이자 하멩꾸부워노 2세의 친어머니인 하긍 태후(구스티 깐젱 라투 하긍 – Gusti Kanjeng Ratu Hageng)는 그후 얼마간 끄라톤 왕궁에 살다가 친정이 있던 뜨갈레죠로 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뜨갈레죠는 족자 끄라톤 궁전에서 북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입니다.
하긍 태후에게 무스타하르 왕자가 후궁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총명하면서도 내성적인 증손주를 더없이 사랑했고 무스타하르에게도 하긍 태후는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이었습니다.
“무스타하르 왕자는 정말 시조 술탄을 쏙 빼어 닮았어.”
“할머니, 그 말씀은 벌써 50번쯤 하셨어요.”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걸 어쩌겠니?”
하긍 태후는 무스타하르를 대할 때마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 자글자글한 주름살에 허리가 굽은 노파가 되었지만 그녀는 마타람 왕국의 후신인 까르타수라 왕국 시절부터 하멩꾸부워노 1세가 족자 술탄국을 건설하면서 거쳐온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해온 사람입니다. 하긍 태후의 눈에는 날로 장성해 가는 무스타하르 왕자에게서 자신의 남편이자 왕자의 증조부인 시조 술탄의 모습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증조부님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 서양 이민족들과 싸우던 이야기 말이에요.”
“그 이야기야말로 50번은 넘게 해주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하긍 태후는 할 수 없다는 미소를 띄우며 잠자리에 누은 무스타하르에게 족자 술탄국의 건국과 그 후의 상황들을 몇 번씩이나 알기 쉬운 말로 옛날 이야기처럼 해 주곤 했습니다. 마타람 왕국의 이야기는 늘 시조 권능왕 스노빠티(Penembahan Senopati)의 신화로부터 시작했죠.
“남쪽 바다 마물들의 여왕 니롤로키둘(Nyo Roro Kidul)조차 스노빠티 대왕의 놀라운 영력에 놀라 흠모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니롤로키둘은 스노빠티 대왕이 마타람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도왔고 마타람 왕가를 영원히 지켜 주기로 했지. 그 니롤로키둘의 가호가 족자 술탄국의 시조 술탄에게도, 무스타하르 왕자 너에게도, 그리고 지금 저 끄라톤 왕궁에도 깃들어 있는 거야.”
마타람 왕국은 권능왕 스노빠티(Penembahan Senopati)가 1587년에 건국한 이슬람 왕국입니다. 왈리 송오(Wali Songo)라 불리는 아홉 명의 이슬람 선교사들 중 한 명을 극진히 지원한 스노빠티 대왕이었지만 야사에서는 자바의 모든 귀신과 마물들마저 복종시킨 놀라운 영력의 사나이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니로로키둘의 이야기는 그냥 전설일 뿐이잖아요?”
“그래, 하지만 우리 왕국에서 저 이민족들을 몰아내기 위해 그런 전설 속의 가호조차도 꼭 있었으면 좋겠구나.”
젖을 떼면서부터 이슬람 공부에 열중해온 무스타하르에게 마물들의 여왕 니롤로키둘의 고사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말하는 증조할머니의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 증조부께서는 서양 이민족들, 저 네덜란드인들을 정말 증오하셨지. 저들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 니로로키둘의 힘이라도 빌렸을 거야. 네덜란드인들은 마타람의 형제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에 끼어들어 이간질로 불화를 부채질해 왔단다. 그런 짓을 해온 지 벌써 20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저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군대로 전쟁을 거드는 대신 이 왕국의 영토와 이권을 야금야금 빼앗아 갔지. 너의 증조부님은 그런 네덜란드군과 몇 번씩이나 전쟁을 벌여 승리하셨단다.”
하긍 태후는 창밖 별빛 찬란한 밤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전장에서 대군을 이끌고 자바땅을 호령하던 증조부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끼리 비밀이지만 시조 술탄의 어머니도 후궁이었단다.”
하긍 태후는 빙긋 웃으며 한쪽 눈을 꿈쩍해 보였습니다.
(계속)
'인도네시아 근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3) (0) | 2023.09.03 |
---|---|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 (0) | 2023.09.02 |
[한겨레 스크랩] 마자빠힛의 가자마다 재상 이야기 (0) | 2023.07.20 |
아이를랑가의 까후리빤 왕국 (0) | 2022.04.05 |
마타람 왕국의 시조 스노빠티 (0) | 202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