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타룹 장군 - 수마트라 호랑이 본문
2020년 1월 20일 무궁화유통 김우재 회장 (월드옥타 명예회장)의 주선으로 1995년 전역 당시 육군 중장으로 통합군 참모장을 맡고 있던 타룹 장군을 만나 1995년 5월 폭동당시 상황과 하비비, 구스두르, 메가와티에 걸쳐 대통령 3명의 대통령 자문을 맡았던 경험을 인터뷰 했습니다.
그는 위키페디아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인물입니다.
Tarub
Loncat ke navigasiLoncat ke pencarian
Untuk kegunaan lain, lihat Tarub (disambiguasi).
Letnan Jenderal TNI (Purn.) |
|
Tarub saat masih Kolonel |
|
Panglima Kostrad ke-19 |
|
Masa jabatan |
|
Presiden |
|
Pendahulu |
|
Pengganti |
|
Komandan Jenderal Komando Pasukan Khusus ke-12 |
|
Masa jabatan |
|
Pendahulu |
|
Pengganti |
Brigadir Jenderal TNI Agum Gumelar |
Informasi pribadi |
|
Lahir |
10 Juni 1942 (umur 77) |
Kebangsaan |
|
Akademi Militer (1965) |
|
Profesi |
|
Dinas militer |
|
Pihak |
|
Dinas/cabang |
|
Masa dinas |
1965 - 1997 |
Pangkat |
|
Satuan |
Letnan Jenderal TNI (Purn.) Tarub (lahir di Surabaya, Jawa Timur, 10 Juni 1942; umur 77 tahun) adalah salah satu tokoh militer Indonesia. Ia berasal dari lulusan Akmil tahun 1965 dan tergabung dalam kesatuan Infanteri - Baret Merah (Kopassus).[1] Pangkat terkahir militer aktifnya adalah Letnan Jenderal TNI dan jabatan terakhir militernya adalah Kepala Staf Umum ABRI. Ia juga pernah menjadi Komisaris Utama TPI dari Maret 2005 hingga Juli 2006, kemudian seterusnya menjadi komisaris TPI (sekarang MNCTV).
Karier[sunting | sunting sumber]
Kolonel
Komandan Brigade Infanteri Linud 3 Kostrad
Komandan Resort Militer 171 Manokwari, Irian Jaya
Komandan Resort Militer 172 Abepura, Irian Jaya
Brigadir Jenderal
Komandan Kopassus
Mayor Jenderal
Panglima Daerah Militer VIII/Trikora
Panglima Komando Cadangan Strategis Angkatan Darat
Letnan Jenderal
Kepala Staf Umum ABRI
Referensi[sunting | sunting sumber]
Jabatan militer |
||
Didahului oleh: |
Komandan Kopassus |
Diteruskan oleh: |
Didahului oleh: |
Pangdam Trikora |
Diteruskan oleh: |
Didahului oleh: |
Pangkostrad |
Diteruskan oleh: |
자리 함께 한 연합뉴스 성혜미 기자가 요약해 준 인터뷰 요지는 이렇습니다.
<따룹장군 한인사 참고 인터뷰>
따룹 (1942년생)= 참모장이었다. 각 지역에서 전화가 계속 왔었다. 도와달라고. 통합군 전략사령관 시절이니까 전화가 불이 난다.
김회장 = 폭동 당시 집에서 피신해서 살라했는데, 지켜야 한다고 했더니 군인 2명을 스나얀 지켜줬다. 1층에서 공항으로 다 피신했었다. 아기 엄마들 울고,, 황대일 특파원 시절.
그 군인들을 버스에 태워서 가드를 시켜 공항으로 보냈었다.
동포들을 돕기 위해서 그때가 가장 중요했다. 가장 잘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두분은 어떻게 친해졌나?
김회장 = 1979년께 따룹 장군 밑에 있는 장군이 육군 중위가 아궁 구메이란. 베니 부르다니(전 한국대사) '코리안데이' 10월3일 행사에서 만나서 친해졌다. 따룹장군과는 40년 된 사이다.
김회장 = 있음으로써, 대들보 같은 관계. 따룹, 아궁, 이런분들.
따룹장군은 하비비부터 메가와티까지 3명 대통령 DPA(대통령자문)를 맡았다.
2000년 남북대화 물꼬 틀 때, 아이디어를 따룹장군이 내서 커미티로 가서 했다.
김우재 회장이 민주평통을 하면서 메가와티더러 평양 방문하라고 따룹장군한테 얘기를 했더니, 실현됐다.
한국 가보셨나?
따룹 = 국방대학원, 판문점, 땅굴 가봤다.부산도 가봤다.
한국인에 대한 추억은?
따룹 = 좋게 생각한다. 부지런하고 긍정적이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김우재 회장 = 나는 이런 사람들하고 사귀면서 중심을 잡고, 자리를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친하다보니 현지인들이나 관련된 사람들이 나한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수하르토의 동서와 따룹 장군이 매우 친하다. 수하르토 계열로 구분이 된다.
따룹 = 프라보워 장관이 얼마전에 집으로 나를 초청했었다. 내가 프라보워를 발탁했었다.
인도네시아 군경 합하면 100만명 된다.
김회장 = 옛날에 건설회사 하고 할때 따룹장군이랑 찍은 사진을 걸어두면 깡패들이 들어오지도 못했다.
안선근 = 폭동때는 소요사태. 길거리 유리창은 다 깼다. 원주민 집 다 표시하고. 공항에 가는데 샛길로 가다가, 칼들고 쫓아오는데. 그 당시 기아 세피아 탔는데 운전사더러 가다가 살짝 틀라고 했다. 공항에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새벽 2시에 비행기 뜨고 했었다.
김회장 = 김종필 시절인데,, 다른나라는 다 나갔는데 한국은 폭동난날 나가려고 하니 정말 힘들었다. 그때 따룹 장군이 도와줘서 셔틀버스를 구해서 공항으로 한국인들을 나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연기가 나는데 트럭에 비상식량 싣고 대사관으로 가서,,,
나중에 다시 정리해 놓겠습니다.
2020. 1. 18.
'매일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한다는 것 (0) | 2020.01.26 |
---|---|
욕쟁이 안티팬의 의미 (0) | 2020.01.25 |
신생국가 트래시 아일랜드 (0) | 2020.01.20 |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인도네시아 통신원 결원 (0) | 2020.01.18 |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발명품 (0) | 2020.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