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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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논리
인니 4년 차에 접어든 사람에게 왜 인니어를 배우려 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합니다.
"난 한국에서 이 산업분야에 예술이라 불릴 정도 경지를 쌓았소. 그런데 영어도 아니고 고작 인도네시아어 같은 하급 언어체계를 배워 내가 쌓은 경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배우지 않은 것이오." 그는 그 한 마디로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는 모든 한국인, 아니 모든 외국인들을 한 큐에 보내버렸습니다.
어떤 단어의 사전적 의미란 가장 비현실적 의미일 수 있습니다. 언어는 사고와 철학, 습관, 문화가 녹아들어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인도네시아 왔을 때 창고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놈들처럼 자존심 강한 놈들은 본 적이 없어. 저놈들은 뭘 몰라도 tidak tau라고 하는 법이 없어. 꼭 Kurang tau래. 아는 게 좀 부족하다는 거지. 절대 모른다고 하질 않아." 그 두 표현 모두 '모른다'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걸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창고장을 비웃던 나도 어느날 내가 한 지시에 baik Mr.라고 대답하는 직원에게 눈을 부라린 적 있습니다. Baik 이라니. 좋다니? 니가 내 지시에 좋다 나쁘다를 판단해서 대답하는 거야? Baik Mr가 최상급의 긍정 답변임을 모르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 말꼬리를 잡고 그 직원에게 열을 냈던 것은 오래도록 부끄러움으로 남습니다. (Baik Mr. Baik Pak는 군대에서 잘 알겠습니다라는 복창에 사용되는 단어로 중국식이라면 '존명!' 정도 레벨임)
그래서 웃기는 일도 생깁니다. 내 지인은 이사를 도와준 우리 직원들에게 10만 루피아 씩을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enak saja'. 에낙은 좋다, 편하다란 뜻이니 그는 도와줘서 이사를 편하게 마쳤다는 말을 하려 했던 것입니다. enak saja란 말뜻이 잘 났어, 별꼴이야, 라는 뜻이라곤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고 지금까지 쌓은 경지가 무너지는 일은 없습니다. 가끔 실수를 깨닫고 자존심이 무너지는 경우가 좀 생기긴 하지만 그건 무너져 마땅한 자존심이었으니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요.
2019.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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