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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멀지 않은 흑마술의 세계 본문
흑마술사 - 두꾼 (Dukun)
두꾼은 인도네시아의 무당, 또는 흑마술사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한국의 무당들이 몸주를 모시는 것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두꾼들은 귀신과 혼인하거나 제물을 바치며 계약을 맺은 결과 얻은 힘으로 귀신들을 부리거나 신통력을 발휘해 의뢰자들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려는 사람들입니다. 두꾼을 다루려면 그들이 시전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산뗏(Santet)저주술과 함께, 누구든 천하일색 미인으로 보이게 하는 주술적 성형수술 수숙(Susuk)시술, 상대방을 홀려 사랑에 빠지게 하는 뻴렛주술(ilmu pelet), 귀신에게 생명이나 수명 등 제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단기간내에 부자가 되려는 재물주술 뻐수기한(Pesugihan), 불멸의 신체를 추구하는 금강불괴 신체술 일무끄발(ilmu kebal) 등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그들이 부리는 진(dzinn)과 귀신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꾼
물론, 마술의 실존여부, 백마술과 흑마술의 경계 등은 매우 미묘하고 개인적 신념과 확신의 사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기 전에 교통법규와 안전수칙을 미리 배우는 것처럼 인도네시아를 보다 깊숙이 알기 위한 일반상식이란 점에서 그 개요 정도만 소개하려 합니다.
몇 년 전 격었던 일입니다.
라마단 금식월을 마치고 찾아오는 이둘피트리(Idul Fitri) 장기휴무 기간에 서부자바 자싱아(Jasinga) 산골 친척집을 다녀온 메이네 온가족이 앓아 눕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 차도를 보였지만 메이의 얼굴 한복판에 세 줄의 손톱자국 같은 것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그 때 메이가 내개 해준 얘기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메이의 엄마는 까라왕(Karawang) 출신으로 철없던 시절 자싱아 산골짝에서의 첫 결혼생활을 허겁지겁 이혼으로 끝내고 그 때 얻은 첫아들을 이웃에 맡기고서 14살 즈음 자카르타로 재가해 나왔습니다. 그 첫 아들은 나중에 금광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지만 아들을 맡았던 이웃과의 돈독한 관계는 그 후에도 줄곧 이어졌습니다. 그 이웃에겐 얀띠라는 딸이 있었는데 메이가 둘째를 출산할 땐 한동안 자카르타에 와 아기를 봐주기도 했습니다. 그 아가씨가 문제의 발단이 됩니다.
자바와 순다의 시골에서는 딸이 초경을 시작할 무렵인 13-14세 조혼시키는 풍속이 아직도 성행하는데 빠듯한 살림에 입 하나라도 줄이겠다는 의지와 ‘마스까윈’(mas kawin)이라 부르는 신랑측이 주는 지참금 수입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의 결혼을 ‘거래’라고 인식하는 신부측 부모는 사위가 시원찮다고 여겨지면 이혼을 종용한 후 곧바로 다른 남자에게 지참금을 받고 재혼시키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이슬람이 전체 인구의 80%를 넘는 인도네시아가 견고한 혼인관계를 유지할 것 같지만 사실은 높은 이혼율을 보이는데 1990년대 전후 자카르타 근교공단의 경공업 노동인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20대 젊은 여공들 중 대략 반쯤이 실제로 아이 딸린 과부이거나 이혼녀, 또는 재혼녀였습니다. 그에 비해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편입니다. 당시 18세가 되던 얀띠도 두 번째 이혼수속을 밟으며 세 번째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나’라는 이름의 당시 남편은 변변찮은 채소장사였지만 용한 두꾼의 아들로 자신도 나름대로 약간의 술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빈곤의 바닥에서 이혼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술법이 그의 인생에 진지한 도움이 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순다족 남자들 중엔 아내나 애인과 문제가 생겨 금방이라도 파국이 찾아올 듯하면 직접적인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두꾼에게 쪼르륵 달려가 매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귀신의 조화를 통해 애정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죠. 당연한 일이지만 나나는 이혼의 위기를 맞자 두꾼인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 애원했습니다.
어느 날 밤 메이는 꿈 속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자싱아 얀띠의 부모집 부엌에 뭉게구름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문지방 바로 밑 구멍에서 뱀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얀띠는 엄마가 아파 마침 자싱아 집에 돌아가 있던 차였는데 잠에서 깨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된 메이는 얀띠에게 전화해 부엌을 한번 뒤져 보라고 합니다. 영문도 모르고 부엌을 뒤지던 얀띠와 가족들은 메이가 꿈속에서 뱀구멍을 보았던 부엌 문지방 밑에 수상한 헝겁뭉치가 파묻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모래, 사금파리, 커피가루, 바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데 두꾼들이 저주를 걸 때 사용하는 재료들이었어요.
그 용도는 피뢰침같은 것이었습니다. 두꾼들이 저주를 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주를 담은 산뗏(santet), 말하자면 한국전통무속의 ‘살(煞)’ 개념과 비슷한 것을, 두꾼이 부리는 진(dzinn – 이슬람 세계의 악마 또는 도깨비)을 통해 쏘아보내는 것입니다. 두꾼의 산뗏저주는 은밀하게 시전되지만 그렇게 발현된 저주는 밤하늘에 불덩어리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시골산촌에선 그런 불덩어리 날아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합니다. 상대방 후보에게 저주를 쏘아 보내는 것이죠. 그런데 주소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배달사고가 나듯이 저주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목적지에 위치발신장치를 몰래 심어 놓는 것이죠. 그게 얀띠 가족 부엌에서 발견한 두꾼 팩키지의 용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예지몽 비슷한 것을 꾸는 메이도 어딘가 신기(神技)가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 사건으로 인해 얀띠와 나나의 이혼수속은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나나가 그 주술물품 헝겁뭉치를 부엌에 묻은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얀띠가 나나를 혐오하는 데엔 또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얀띠와 나나 사이의 아기가 두개골이 제대로 덮이지 않아 뇌가 드러난 상태로 태어나 금방 숨을 거둔 사건이 있었다는 겁니다. 병원도 아닌 순다의 산골짝 산파의 집에서 그런 끔찍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귀신의 장난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죠. 얀띠가족들은 그게 나나와 그의 아버지가 조심성없는 주술로 귀신들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악마와의 계약이 피와 영혼의 댓가를 요구하는 것을 파우스트같은 소설이나 호러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게 아주 얼토당토한 얘기가 아닙니다. 무슬림들이 하지명절이 다가오면 사원에서 소나 염소를 제물로서 잡고 고대 야훼교 제사장들이 가축의 피를 신에게 바쳤던 것은 신이 소고기나 양고기에 특별한 입맛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속죄를 비는 것을 포함해 신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소원을 비는 것은 분명 대가가 필요한 일인데 그 대가를 내 피와 내 살로 감당해야 마땅하지만 아무쪼록 짐승의 피와 살을 대신 받아 달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술에 동원되는 잡신들 역시 명색이 신인 만큼 사역의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부두교에서는 저주를 시전하며 신선한 닭피를 뿌리는 것이고 2006년 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에서 마야제국 대제사장은 제국의 번영을 위해 태양신 앞에 수많은 신민들의 목을 베어 바쳤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두꾼들도 그런 귀신들의 속성을 무시하고서는 저주술을 시전할 수도, 귀신을 부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간혹 인색한 두꾼들, 또는 초짜 두꾼들이 공짜로 귀신들을 부리려다 자기가 살에 맞아 죽기도 합니다. 귀신을 속여 교묘히 피하거나, 자신에게 부적을 심어 귀신이 자신을 찾을 수 없게 하거나, 강력한 주술로 살을 튕겨내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꾼을 피해간 살이 꽃히는 곳은 백이면 백, 가장 가깝고 가장 방어력이 약한 가족이나 친척이기 쉽습니다. 인도네시아 무속의 살도 십중팔구 혈연을 따라갑니다.
나이 지긋한 시골 출신 자바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가정폭력을 일삼던 메이의 아버지 역시 나름 일천한 흑마술 지식로 감히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서툰 저주술을 시전하다가 그 매개체였던 처녀귀신 꾼띨아낙을 집안 거실까지 불러들여 그렇지 않아도 천식으로 몸이 약했던 막내딸을 거의 죽일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나나의 경우 그와 아버지의 부주의로 튄 살과 저주를 온몸으로 감당한 것이 바로 얀띠 뱃속에 있던 나나의 아기였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얀띠와 그녀의 가족들은 철썩같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물론 산골짝 허름한 조산소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사고를 책임져야 마땅할 사람들이 귀신탓, 두꾼탓으로 둘러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메이의 온 가족이 앓아 누은 것은 얀띠네 집 부엌사건이 있은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메이는 또 꿈을 꿨습니다. 그 꿈속에선 무슬림 복식의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나타나 메이를 책망하며 위협했다고 합니다. 나나와 얀띠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요. 꿈에 본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 얀띠에게 전화하여 설명한 그 아저씨가 얀띠의 시아버지, 즉 나나의 아버지의 인상착의를 쏙 빼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실존인물이 메이의 꿈 속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이 대목부터 어딘가 싸구려 공포영화 스토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 허풍이나 착각이라 하기엔 그간의 과정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그러자 메이의 외할머니가 저주를 물리치는 의식을 시전합니다. 이미 걸린 저주를 푸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날아오는 저주를 튕겨 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라고 합니다. ‘발릭낀 산뗏’(balikin santet)이라 하는데 시전자의 저주를 반사해 돌려보낸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두꾼들은 자신이 시전한 저주술을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며 자신의 주술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걸 과시하려 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이미 시전된 저주를 무력화할 수 없다고 하죠. 하지만 주술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병을 낫게 하는 두꾼들도 분명 있습니다. 메이의 외할머니는 당시 외관상 백 살도 더 되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70세 정도였는데 글도 읽을 줄 모르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엔 특별한 능력이 있어 아픈 사람들을 고치고 태중에 뒤집힌 태아 위치를 바로잡아 주고 병원에서 뼈를 맞춰야 할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반나절만에 걸어다니게 해주는 사이비(?) 의료행위로 평생을 살아왔죠. 종교적 금식에도 열심을 내는 경건한 무슬림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분명히 두꾼입니다. 그런데 집안 전래의 두꾼 비법을 물려받았지만 주변사람을 도울 뿐이지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빈곤의 밑바닥에서 살며 이웃에게서 쉰 누릉지를 얻어 연명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생이 그렇다고 해서 두꾼으로서도 형편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외할머니가 나서 뭔가 모종의 조치를 취한 후 메이와 가족들 용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습니다. 메이도 가족들과 함께 무슬림 규범에 맞춰 때마다 숄랏기도에 열심을 쏟았습니다. 경건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주술적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믿음도 현지 무슬림 사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곧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왔고 오래 남아있던 메이 얼굴의 상처도 나중엔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쪽에서 뱀의 영을 부린 거래요.”
메이는 누가 들을세라 내게 그렇게 소근거렸는데 그게 메이가 꾸었다던 자싱아 얀띠집 부엌 뱀구멍과 대충 맥락이 닿았습니다. 흑마술의 세계는 그런 식으로 우리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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