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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젠은 어떤 사람일까? 본문
재물주술에서 꾼쩬의 역할과 위상
이로써 재물주술을 전반적으로 훑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꾼쩬’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눈여겨보게 됩니다. 두꾼이 꾼쩬을 겸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꾼쩬은 박물관의 큐레이터처럼 자신이 관리하는 시설이나 관련인물(역사속의 위인이나 전설속의 영웅들), 그리고 관련지역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통하여 핵심적인 정보제공과 안내가 가능한 사람입니다. 재물주술에 있어서 꾼쩬은 대개의 경우 스스로 어떤 주술을 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귀신이나 신령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의식의 의미와 방법을 알려주며 관련된 위험과 파국을 경고하는 일을 합니다. 정말 신령한 꾼쩬은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아무런 이익도 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꾼쩬을 거치지 않고는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의식을 해야 하고 어떤 영과 어떤 신에게 빌어야 할 지 알 수 없습니다. 까마귀고기를 어느 묘지의 어느 나무 밑에 얼마만큼 준비해 놓아야 할지도 알 수 없고 이 산에서 근드루어를 만나야 할지 아니면 저 해안에서 니블로롱을 만나야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꾼쩬은 재물주술에 있어 핵심적 존재입니다. 그들은 주루꾼찌(Juru Kunci), 즉 ‘열쇠를 관리하는 자’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합니다.
물론 꾼쩬은 꼭 흑마술과 재물주술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의 현실세계에도 꾼쩬문화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절차를 무시한 무리한 세무조사로 천문학적 벌금을 얻어 맞았을 때 그걸 해결하기 위해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할 지 잘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경을 곤두세워 잘 찾아보면 그 길과 과정을 알려줄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바로 꾼쩬입니다. 스스로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지만 그 길을 알려줄 수는 있는 사람 말입니다.
대대적인 투자허가를 위해 또는 거대한 프로젝트 합작을 위해, 때로는 파국적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주지사나 부빠띠, 또는 장관을 만나야 할 경우도 생기죠. 하지만 그 문고리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외부인은 죽어도 알 수 없고 설령 개인적으로 아는 내부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주지사나 부빠띠나 장관 앞에 정말 날 데려다 줄 수 있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도 필요한 문을 한 방에 열어줄 꾼쩬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로 인해 고위인사를 만나려면 ‘꾼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꾼쩬의 역할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재물주술의 세계에서도 사기사건은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교회 돈을 빼돌리는 목사들, 부정부패를 아무렇게나 저지르는 무슬림들이 있는 것처럼 니로로키둘이나 니블로롱에게 바쳐질 돈을 가로채는 꾼쩬들이 없을 리 없습니다.
다음은 한 꾼젠의 홈페이지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홈페이지는 사기꾼들이 쳐놓은 함정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럴듯한 사기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도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진실 속에 결정적인 거짓들을 섞어 놓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 논리의 매카니즘을 주목하면 문득 재물주술 문화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전략)
즉각적으로 돈을 벌게 해주는 마물세계의 큰 존재들과 꾼쪤은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모든 마물들은 염소 같은 가축들을 먹이로 하는데 인간세상에서 얻어야 하는 것들이지만 함부로 경계를 넘나들며 가축들을 운반할 수 없다. 마물들은 오직 인간들이 바쳐야만 비로서 얻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꾼쩬의 역할이 생긴다. 재물주술 의뢰자가 내놓는 복채는 전액 염소를 사거나 그 염소를 마물의 세계에 바치는 과정에 발생하는 비용으로 사용된다. 복채를 얼마를 요구하느냐 하는 것은 재물주술 의뢰자가 원하는 금액을 마물세계에서 받아 내기 위해 염소를 몇 마리 바쳐야 하는지 역산하여 결정한다. 염소가 마물의 세계로 바쳐지고 나면 그곳의 큰 존재들은 즉각적으로 의뢰자가 요구한 금액을 만들어 준다. 그것을 꾼쩬이 받아 의뢰자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꾼쩬은 그 금액에 대해 10%의 권리를 갖는다. (만약 내가 재물주술을 통해 10억을 얻고 싶다면 꾼쩬에게 1억을 복채로 미리 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그 1억으로 꾼쩬이 염소를 사서 제물로 바치고 그 댓가로 10억을 받아오겠다는 얘기인 거죠. 계약서를 공증해 주는 인도네시아 노타리스(법무공증사)들의 게산법과 비슷합니다)
여기서 재물주술을 지원하는 큰 존재들과 꾼쩬은 과연 누구인가?
흰 표범의 왕 쁘라부 실리왕이(Prabu Siliwangi), 남쪽해안의 여왕 니로로키둘(Nyi Roro Kidul), 이무기 장수 니블로롱(Nyi Blorong), 그리고 북쪽해안의 여왕 니근뎅뻐르모니(Nyi Gendeng Permoni) 등이 재물주술을 지원하는 마물 세계의 큰 존재들이다. 한편 그들의 꾼쩬은 두꾼 끼술탄누그로호(Ki Sultan Nugroho), 모든 의뢰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다르위스씨가 그의 조수다. (이 다르위스라는 사람은 이 웹사이트를 만든 사람입니다. 한편 마물세계의 큰 존재들로서 왕과 여왕들 사이에 일개 장수인 니블로롱이 대등하게 끼어 있는 모습은 매우 작위적입니다)
재물주술을 빙자한 사기나 돈을 불려주겠다는 감언이설은 아닌가?
사회 일각에서 재물주술이나 돈을 불려준다는 명목으로 사기행각이 벌어지는 것은 알고 있지만 끼술탄누그로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직접 와서 겪어 보시라. 알라께 맹세코 우리가 시전하는 재물주술은 절대 사기가 아니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우린 아주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이 맹세는 절대 헛소리가 아니며 맹세의 결과를 반드시 책임질 것이다. 그러니 의심하거나 주저할 것 없이 한번 겪어 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암튼 한번 믿고 해 보시라는 얘기)
만약 재물주술이 실패해서 원하는 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복채는 어찌 해야 하는가?
만약 주술이 실패해 약속을 증명해 보일 수 없다면 우린 복채의 두 배를 돌려줄 용의가 되어 있다. 복채는 당장 현장에서 돌려줄 것이다. 우린 단 한 번도 주술에 실패한 적이 없고 결과물인 목돈을 받아가지 못한 의뢰자들은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지불한 복채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 복채를 어떻게 마련해 우리에게 지불하였든 절대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번도 복채를 돌려준 적이 없다는 얘기인데...)
재물주술의 결과물 목돈을 챙겨가기 위해 곧장 우리를 방문해야 하는가? 거리가 멀어 방문에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핵심인 듯)
이 재물주술 결과물로서 획득한 목돈은 우리 주소지에 직접 와서 찾아가도 된다. 그러나 방문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송금해 줄 수 있다.
직접 방문하여 등록할 경우 – 주소, 대리인 전화번호. 받고자 원하는 금액에 따라 결정된 복채를 적접 가져와 지불하면서 등록하면 된다. 인근에 호텔도 있어 거기서 하루 밤 묵은 후 다음 날 주술 결과물인 목돈을 받아가면 된다.
원거리 등록이 경우 – 구좌번호로 복채를 송금한 후 고객서비스부의 다르위스씨에게 전화로 결재했음을 통지하면서 의뢰자의 구좌번호 내역을 알려주면 이틀 후 주술결과물인 목돈을 송금받을 수 있다. 어느 은행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끼술탄누그로호의 홍보부 다르위스씨에게 연락해 주기 바란다.
(출처 – 잘란뻐수기한 워드프레스닷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다르위스씨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재물주술의 종류와 내용들은 앞서 소개한 것들 말고도 무궁무진합니다. 각 지역마다 특유의 재물주술이 존재하는데 여기 수록된 주술들은 대부분 자바섬에 기반을 두었지만 그중에서도 거데산, 슬록산, 스란딜산 등에서 성행하는 재물주술들을 대부분 건너 뛰었고 수마트라, 깔리만탄, 술라웨시, 파푸아 등지의 재물수술들은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오지로 들어갈 수록 그곳에선 좀 더 색다른 재물주술들이 시전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왜 이토록 재물주술에 열광하고 있을까요? 국적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돈을 싫다 할 사람은 없겠지만 좀 심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다른 아이를 납치해 온 부모가 그 아이의 목을 베어 제물로 바치며 주술을 시전했던 네팔의 사례가 오래전 세계적 비난을 받은 바 있는데 부모, 친지, 배우자는 물론 자식의 생명, 자신의 수명까지 바치며 좀 더 은밀하게 시전되는 인도네시아 재물주술은 이에 못지않은 매우 비정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일까요? 아니면 부자가 되겠다는 순수한 열정의 발로일까요? 한편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는 재물주술은 과연 건강한 것일까요?
오늘날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의 가치와는 대체로 반대편에 서 있는 재물주술이 사회의 암묵적 동의 하에 경건한 종교의 수면 밑에서 은밀히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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