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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마지막 점검 미팅

beautician 2019. 3. 3. 10:00

아직 멀었습니다

 

 

 시내 중심가 이쿼티 타워(Equity Tower)에 도착한 것이 수요일 오후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빤쪼란 사무실을 출발한 것이 410분경. 막히지 않았다면 20여분 걸렸을 것을 퇴근길 정체에 휘말리고 2018년 아시안게임 이후 계속 시행되고 있던 차량 홀짝제를 피해 좁은 이면도로를 달린 결과였습니다. 이쿼티 타워 17층엔 3.1운동 100주년 기념 여러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 공관이 있어 불과 5일 후로 다가온 세미나 최종점검 미팅에 참여하러 온 것인데 허겁지겁 주차하고 뛰어올라가니 525분이 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카톡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오늘 미팅이 많이 늦어지네요. 세미나 전 마지막 미팅 아니었나요?]

 

공관장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책망하는 뉘앙스가 역력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미 왔는지 여부는 최소한 확인했어야 했죠. 미리 와 있던 인도네시아 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 (Yayasan Historika Indonesia) 실무자들과 미팅룸 학이실에서 체크포인트를 짚어 나가기 시작한 지 15분쯤 후에 공관장이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한 마디 쏘아댔습니다.

 

아니, 이렇게 늦어도 되는 겁니까?”

 

왜 늦냐며 카톡 보내고 부하직원 시켜 전화로 독촉한 것도 부족해 직접 한 마디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던 것입니다. 건너편에 앉은 세미나 발표자 선배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분이 눈짓으로 보낸 신호를 못알아본 것도 아니었고 평소라면 그저 대충 웃고 흘릴 일이었지만 이 세미나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지 한달 반, 작년 10월 첫 프로포절을 제출한 후로는 4개월 반 동안, 그냥 넘기기 힘들었던 몇 번의 전례도 있어 이번만은 받아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퇴근길 정체야 다 아는 일인데 조금 늦었다고 그런 얘기 듣는 건 참 오랜 만의 일이네요.”

 

자카르타에서 상대방이30~한 시간 정도 미팅에 지각해도 이해해 주는 것은 심각한 시내 교통상황을 피차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두 시간씩 늦는 경우도 가끔 생기지만 그래도 타박하지 않는 것이 자카르타 비지니스맨들의 예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내에서 이전에 가졌던 점검미팅에 공관직원이 늦은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동해서 찾아가야 하는 측은 시간적으로 늘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 것이고 그걸 유리한 측에서 양해해 주는 것이 자카르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인도네시아 2년차 공관장은 그런 걸 잘 모르는 듯했습니다. 물론 관용차와 운전사를 사용하며 대체로 차 뒷좌석에 깊숙이 앉아 핸드폰 화면에만 집중하던 사람은 자카르타가 얼마나 막히는 곳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번잡한 시내 한 복판의 자기 사무실에 굳이 자기 근무시간인 오후 5시까지 자카르타와 위성도시 전역의 기획팀 개개인을 모두 소집한 것인데 그 시간을 맞추려면 최소한 4시쯤 생업을 중단하거나 회사를 조퇴하고 와야 한다는 것이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고회로에 역지사지 키트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것도 며칠 전 그날 오전으로 결정했던 것을 공관 편의에 따라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오기 어려운 시간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소집한 터였습니다. 그래서 멀리 데뽁과 카라와치의 교수님들을 비롯한 발표자들과 모더레이터는 대부분 참석할 수 없었고 내 건너편의 선배와 히스토리카 담당자 두 명 정도가 시간을 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세미나 기획팀에선 팀장마저  당일 사용할 인쇄물 마감에 묶여 참석할 수 없게 되어 내가 가지 않으면 기획팀에선 아무도 못가는 셈이 되닌 어쩔 수 없이 안되는 시간을 만들어 회사를 조퇴하고 달려왔던 것인데 말입니다. 물론 구구절절이 그런 상황을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니 공관장이 내게 불편한 심기를 보인 것은 그런 사정을 몰라서였겠죠.

 

게다가 그동안 미팅엔 한번 나와보지도 않고 자기 필요할 때마다 자긴 사무실에 편안히 앉아 민간인들 바쁘든 말든 불러들이는 공무원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듯 합니다만.”

 

이런 얘기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굳이 내뱉진 않았습니다. 세미나 준비는 이제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판이었으니 이젠 싸울 때가 아니라 아직 처리 못한 문제들을 빨리 매듭지어야 할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공관장도 바보가 아니니 웃으며 말한 내 말투에 돋힌 가시를 느끼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공관직원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 사전점검인 줄 알았던 이날 모임은 사실 담당 공관직원이 공관장에게 진행보고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늘 모이기 쉬운 위치의 시내 식당에서 하던 미팅을 이날 굳이 공관으로 바꾼 건 그런 목적이었던 거죠. 기획팀과 발표자들, 현지 히스토리카 운영진들은 졸지에 공관 내부 보고 둘러리가 된 것입니다. 정말 효율적인 최종점검을 해려 했다면 우선 자기들끼리 보고든 미팅이든 사전에 하고서 그 결과를 가지고 우리들과 최종 협의하고 조율했어야 할 텐데 공관에선 민간들의 시간을 자기들을 위해 허비해도 되는 소모재라고 본 것이죠. 이 사람들 사고방식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졌습니다. 내가 공무원이 아니라서 공무원들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로스티뉴 교수가 독립운동에 대한 한국과 인도네시아인들의 감정 차이를 말한다는데 그 사람이 인도네시아인들 감정은 알아도 한국인 감정은 모를 수 있잖아요? 한국인들의 감정은 누가 부연설명 해야 할 텐데요.”

 

중간이 공관장이 눈을 휘번득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관에서 못미더워하는 로스티뉴 교수는 애당초 우리 측 기획서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공관에서 굳이 추천해 밀어 넣은 인물입니다. 그분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홀로 멀리 데뽁(Depok)에서 와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는 엄마 입장이라 그동안 단 한번도 미팅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사람 발표내용에 문제 있다며 공관 측에서 우릴 추궁하면 곤란한 일이 되는 거죠

 

  그분도 한국에서 오래 공부했고 명색이 한국학 전공이니 이상한 소리 할 리는 없어요.”

내가 없는 말 합니까? 발표자료에 그렇게 써 있으니 하는 소리죠.”

 

도대체 어디가요? 로스 교수 자료엔 한국인들의 감정이 spekulatif 하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과연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 단어입니까?

 

  그분 생각이 한국인들과 달라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한국 인도네시아 양국간  인식 차이는 분명 있는데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드러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요?”

  그래도 이상한 얘길 하면 바로 잡아아죠.”

 

발표자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검열하자는 걸까요? 그럼 세미나는 왜 하려는 걸까요?

 

그건 모더레이터가 할 일이에요. 세미나 전반을 이끌면서 토론을 주도하고 질의응답을 진행시키는 모더레이터가 발표내용 오류나 쟁점을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모더레이터도 인도네시아인 아니오? 그 사람도 잘 못할 것 같은데.”

그럼 MC인 제가 얘기하면 되죠. 로스티뉴 교수가 문제성 발언을 하지도 않겠지만 설령 하더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MC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MC가 나서서 주장을 하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난 공관장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전부 다 안된다는 그는 뭘 원하는 걸까요? 기획팀이 잘못했다며 석고대죄하고 할복이라도 하길 바라는 걸까요? 난 더 이상 대안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원장님 원하시는 건 뭔데요? 그대로 따라 갈게요.”

뭐요?”

 

뭐요? 그 말이 정말 공관장의 입에서 나왔는지 치켜 뜨는 눈빛에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그 단어는 다음 상황으로 시의적절하게 연결됩니다.

 

아니, 배작가님 왜 그런 식으로 나와요? 나한테 감정 있어요?”

무슨 맥락으로 그런 말씀을?”

그렇잖아요. 내가 하는 말이 마음에 안듭니까? 나랑 싸우러 오셨어요?”

 

내가 고분고분하진 않은 게 사실이지만 최종점검미팅에 고분고분하려고 간 것 또한 아닙니다. 게다가 공관장은 자기 부하도 아닌 내가 왜 자신에게 순종하하길 바라는 걸까요?

 

내가 제시하는 것들마다 원장님이 다 안된다고 하시니 더 이상 스무고개 하지 말고 원장님 원하는 걸 듣자는 거에요. 그래야 빨리빨리 결정하고 진행될 거 아닙니까?”

아니, 내가 뭘 안된다고 했다는 거에요? 조율하자는 거지.”

 

기획팀이 몇 주씩 생각을 모아 계획하고 준비한 것들을 트집잡아 막판까지 자기 의견으로 뒤흔드는 사람이 조율이란 말을 꺼내는 게 좀 웃겼습니다. 그간 시내에서 세미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지난 몇 주 간 수시로 미팅할 때 콧배기도 보이지 않고 부하직원만 보내던 그는 그 부하직원에게 뭔가를 결정할 아무런 실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미팅에서 기껏 결정한 내용은 공관장에게 건의처럼 전달되었던 모양이고 그는 우리 결정을 수시로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으면서 그 이유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결재서류를 집어던지며 다시 해오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민간기업의 갑질임원들을 떠올린 건 내가 예민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토요일은 안되요. 대학에서 주말은 안된다니 월요일날 세미나 해야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거의 오기 힘든 월요일 오후로 세미나 일정이 잡힌 것도 아트마자야 대학이란 장소에 꽃힌 공관 측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설립자 장순일씨의 이름을 붙였던 쥬니치 폴 초(Junichi Paul Cho) 관은 30-40명 짜리 강의실들만 있어 실제 세미나 장소 경내 다른 건물인 Gedung Yustinus(유스티누스 건물)로 결정된 상태였습니다.

 

양칠성은 안되니 빼세요. 무조건 빼세요.”

식사는 안되요. 식사 빼요.”

떡은 해야죠. 무조건 하세요. 한국 떡은 꼭 해야 되요.”

행사 제목에서 부제를 빼세요. 포스터 다 나왔어도 어쩔 수 없어요. 무조건 빼세요.”

이 문장은 빼고 저 문장을 넣으세요.”

 

용역을 준다는 것은 제안서를 수용해 일을 맡긴다는 의미이지만 공관에선 온갖 세부사항에 대한 수정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바꾸려는 이유를 물어도 굳이 답변하지 않으려는 공관 측 속마음은 이럴 것 같았습니다. 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내가 말하면 무조건 처 들어. 그러니 이번에도 자기들이 끼워넣은 인니인 교수의 발제내용을 문제삼으며 런다운이 다 정해진 행사 순서를 바꾸려 드는 게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조율은 서로 의견을 절충하는 거지 원장님 원하는 대로 따라 하라는 게 아니에요.”

 

아마도 공관에서 그렇게 고압적으로 나오는 건 기획팀에게 세미나 용역비를 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돈을 주면 갑질을 해도 되는 사회. 한국이, 교민사회가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말입니다.

 

결국 두 번째였던 로스티뉴 교수의 순서를 맨 앞으로 빼고 혹시라도 발표에 문제가 있으면 그 다음 발표자인 한국인 교수가, 그리고 모더레이터가, 그것도 모자라면 그 다음 발표자인 한인뉴스 논설위원 선배가 바로잡기로 하는 선에서 이 부분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여기 자리 비워 주셔야 하는데요?”

 

또 다른 공관직원이 들어와 5분 후부터 한국어 수업이 있다고 회의실을 비워달라 합니다. 아직 보고도, 점검해야 할 부분도 한참 남았는데 말입니다. 우린 그 5분 동안 나머지 얘기를 허겁지겁 끝내야만 했습니다. 애써 시간 내 참석해 준 히스토리카 사람들에겐 최종점검 미팅이라 말하기 미안할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공관장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모임이 그렇게 어정쩡하게 끝났으면 나머지 조율을 식당에서라도 해야 하는데 그에게 있어 조율이라는 것은 겨우 그 정도의 의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 고분고분하지 않은 내가 불편했겠죠.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오버하며 공관을 나서는 내 등을 펑펑 소리 나게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보여, 왜 그리 날카로워? 다 보인다구.”

 

이 인간이 정말 날카로운 게 뭔지 보고 싶어 이러는 걸까요?

그날 식당에 따라온 공관직원은 내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후 베트남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자기가 천호동에서 노사모 지역위원장 한 것을 자랑하며 한국업자들에게 사기를 쳐 물건을 공짜로 들여오고 대금을 결재하지 않은 것을 본 적 있습니다. 노사모 회원이었다고 해서 그가 노무현처럼 고결하진 않았던 것이죠.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문재인 정권을 맞아 문대통령이 인성 훌륭하다 하여 그 정권의 공무원들이 모두 문대통령같은 인성을 가진 것도 아닌 것이죠.

 

3.1운동과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우린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멀었다는 느낌이 들어 한숨이 나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