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동티모르] 프레틸린 (Fretilin) 본문
프레틸린(Fretilin)
프레틸린(Fretilin)이라 줄여 부르는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혁명전선’(포르투갈어로 Frente Revolucionária de Timor-Leste Independente)은 동티모르의 좌익정당이다. 그들은 현재 동티모르 국회의 65석 중 23석을 차지한 야당이 되어 있다. 그러나 프레틸린은 독립정부를 구성한 후 2007년까지 집권여당이었다. 프레틸린은 포르투갈에 대항한 독립운동 저항단체로 시작하여 1974년부터 1998년까지는 동티모르를 강점한 인도네시아군을 대항해 싸웠다. 하지만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프레틸린은 다당제 환경 아래 여러 정당 중 하나가 된 상태가 되어 있다.
프레틸린은 1974년 5월 20일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ASDT(티모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연합)로 알려져다. ASDT가 프레틸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1974년 9월 11일의 일이고 이때부터 “동티모르인들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변자”라고 주장하며 좀 더 과격한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했다. 1975년 유디티(UDT-티모르 민주연맹)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프레틸린은 자신들의 군사조직 팔린틸(Falintil)을 급히 조직해 내전 3주 만에 승기를 잡는다. 팔린틸은 1975년 12월 7일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침공과 강점기간 내내 저항전쟁을 벌였다.
1975년 11월 28일 프레틸린 독립선언식.
단상 가운데 프란시스 자비에르 도 아미랄 대통령, 그 옆 수염 덥수룩한 부통령 니콜라우 도스 로바토가 보인다.
프레틸린은 1975년 11월 28일 동티모르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면서 자비에르 도 아마랄(Xavier do Amaral)을 대통령으로, 니콜라우 도스 레이스 로바토(Nicolau dos Reis Lobato)를 부통령 겸 총리로 세우고 18명의 장관과 프레틸린 중앙위원회 위원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점령군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서로 반목하게 되었고 1977년 로바토는 반역죄로 아마랄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아마랄의 뒤를 이어 동티모르의 대통령이 된 니콜라오 로바토는, 그러나 1978년 12월 13일 인도네시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그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통령이 된 마우 레어(Mau Lear)도 1979년 2월 2일 인도네시아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대통령을 두 번씩 잡아 죽여도 망하지 않는 프레틸린이 인도네시아군 입장에선 얼마나 얄미웠을까?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살해한 인도네시아군에 대한 프레틸린의 원한은 얼마나 하늘에 사무쳤을까? 1970년대 후반 프레틸린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어져 1977년 9월부터 1979년 2월까지 총 52명의 프레틸린 중앙위원회위원들 중 단 세 명만이 목숨을 부지했다.
자비에르와 로바토
프레틸린은 군사적으로 궤멸되었지만 간신히 살아남아 상대적으로 온건한 민족주의자 자나나 구스마오(Xanan Gusmao)의 지휘 아래에서 서서히 재건되었다. 1981년 3월부터 1984년 4월 사이에 프레틸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Marxista–Leninista Fretilin -PMLF)이라 알려지게 되었고 당 이념도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1984년 혁명적 정치사상을 폐기하면서 당명은 예전대로 복원되었고 보다 민족적 단결을 촉구하면서 유디티와 카톨릭 교회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공식 독립 1년 전인 2001년에 열린 선거에서 프레틸린은 57.4%의 득표를 하면서 의회 88석 중 55석을 차지했다. 이로서 프레틸린은 의회의 과반을 점했지만 애당초 희망했던 헌법을 초안할 전권을 누릴 3분의 2 의석수에는 이르지 못했다.
2007년 6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프레틸린은 제일 많은 득표를 했지만 득표율은 크게 줄어 29%에 그쳤고 의석도 21개만 가져올 수 있었다. 선거에서 프리틸린은 전 대통령 “자나나 구스마오가 이끄는 티모르 재건을 위한 민족의회”당(CNRT)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고 CNRT는 제 2당이 되었다. 프레틸린은 과반을 얻지 못했지만 당 사무총장 마리 알카티리는 소수당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언급을 하면서 CNRT당을 포함하는 민족연합정부를 구성했다. 이러한 연합정권은 프레틸린이 이전에는 거부하던 형태였다.
그러나 정당간 대화는 난항을 겪었고 결국 정부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몇 주 동안 CNRT가 이끄는 정당들의 연합체와 프레틸린이 정부구성 주도권을 놓고 분쟁을 겪은 후 호세 라모스-호르타가 8월 6일 CNRT가 이끄는 연합이 정부를 구축하며 구스마오가 총리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딜리의 프레틸린 지지자들을 곧바로 폭력적 반응을 보였다. 알카티리는 이 결정에 대해 프레틸린dl 당 차원의 준법투쟁을 할 것이며 시민들에게 저항과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부통령 아르세뇨 바노(Arsenion Bano)는 당이 정부에게 소송을 걸지는 않을 것이며 민족연합정부의 발족을 위해 나아갈 정치적 해결을 지행한다는 입장을 밝했다.
역대 총선결과
선거연도 |
획득의석 /전체의석 |
득표수 |
득표율 |
투표결과 |
선대위원장 |
55 / 88 |
208,531 |
57.37% |
55 석: 집권당 |
||
21 / 65 |
120,592 |
29.02% |
34 석: 야당 |
||
25 / 65 |
140,786 |
29.87% |
4 석: 연정참여(2015년부터) |
||
23 / 65 |
168,422 |
29.65% |
2석 |
||
23 / 65 |
34.29% |
|
역대 대선결과
선거연도 |
후보자 |
1차투표 득표 |
득표율 |
결과 |
2차 투표 득표 |
득표율 |
결과 |
프란시스코 구테레스 |
112,666 |
27.89% |
통과 |
127,342 |
30.82% |
낙선 |
|
프란시스코 구테레스 |
133,635 |
28.76% |
통과 |
174,408 |
38.77% |
낙선 |
|
프란시스코 구테레스 |
295,048 |
57.1% |
통과 |
N/A |
N/A |
당선 |
(이상)
위키페디아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Fretilin
'동티모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강점 -(3) (0) | 2019.02.11 |
---|---|
[동티모르] 산타크루즈 학살사건 (0) | 2019.02.09 |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강점-(2) (0) | 2019.02.07 |
포르투갈령 티모르 (Portuguese Timor) (0) | 2019.02.04 |
발리보의 5인 (Balibo Five) (0) | 2019.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