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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현대사

반둥의 독립영웅 모하마드 또하 (Moh.Toha)

beautician 2019. 1. 2. 16:11

반둥의 독립영웅 모하마드 또하

(Mohammad Toha)


 

인도네시아의 현충일인 1110, 영웅의 날(Hari Pahlawan)이 다가오면 인도네시아인들은 자기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큰 발자취를 남겼는지 새삼 되새겨본다. 그들의 영웅들은 타민족의 압제로부터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독립을 담보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1945817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지만 독립투사들의 노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되찾은 독립을 지키는 것 역시 최상의 과제였다. 그들 중 반둥이 낳은 독립투사, 모하마드 또하(Mohammad Toha)가 있다.

 


모하마드 또하의 초상과 석고상. 같은 인물을 전혀 다른 얼굴로 만들어 놓은 것은 상상력을 기반한 초상임을 의미한다.

모하마드 또하가 산화하던 당시 사진이나 초상화 단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연합군과 싸운 모하마드 또하는 1927년에 태어나 반둥불바다사건 당시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일곱 살에 폴크 스쿨(인민학교)에 들어갔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4학년까지밖에 다닐 수 없었다. 일본이 인도네시아에 진주한 후 또하는 세이넨단(청년단)이라는 일본이 만든 군사조직에 합류했다. 그는 일본군 차량 정비소에서 일하며 일본어를 익혔고 비로 순다(Biro Sunda – 순다 위원회)에서 일하던 할아버지를 도왔다. 그는 찌꾸다빠뚜(Cikudapateuh) 지역 자동차 정비소의 정비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모하마드 또하 기념공원

 

또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전선(Barisan Rakjat Indonesia -BRI)에 합류했는데 이 단체는 이후 안와르 수딴 빠문짝(Anwar Sutan Pamuncak)이 이끄는 개척전선(Barisan Pelopor)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얼마 후 다시 인도네시아 인민저항전선(Barisan Banteng Republik Indonesia -BBRI)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모하마드 또하는 전투단 제1반 지휘관의 임무를 맡았다.

 

그가 반둥불바다사건에 휘말린 것은 절친 모하마드 람단(Mohammad Ramdan)과 함께 연합군 무기고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반둥 남부는 당시 연합군에게 점령될 판이었으므로 인도네시아 측은 초토화작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전투원들은 쉽게 전선을 내주려하지 않았고 철수할 바엔 아무것도 연합군에게 넘겨주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철수하면서 반둥 남부의 모든 건물들에 불을 질렀고 그 결과 반둥 시내의 절반 이상이 전소했다. 그 와중에 모하마드 또하와 모하마드 람단은 무기고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들은 폭파임무를 수행한 후 철수대열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폭발은 그들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서 엄청난 유폭에 휘말린 두 사람은 온전한 시신도 남기지 못한 채 산화해 버리고 말았다.

 


전소한 반둥을 점령한 네덜란드군

 

모하마드 또하의 이때 나이가 19세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 그를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그의 활약기간이 너무 짧고 활동내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둥 시민들에게 있어 모하마드 또하는 분명한 독립영웅이다. 반둥 지방정부는 그를 기려 다유꼴롯(Dayeuhkolot) 지역의 한 도로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폭발의 근원지인 창고가 있던 연못 앞엔 그의 용맹을 기려 그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모 또하 거리 북쪽 끝에는 반둥불바다사건 기념탑이, 남쪽 끝에는 모또하 기념관이 있다.

 

누군가 고집스럽게 기억하고 기념하지 않았다면 그는자칫 무명용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그의 활약도 잊혀졌을지 모른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무기고 폭파가 반둥불바다사건을 가져온 것도 아니다. 반둥은 이미 초토화작전으로 불타고 있었고 거기에 무기고 폭파사건이 더해졌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가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래서 반둥 시민들을 저 긴 도로에 그의 이름을 붙이고 두 개의 기념관을 지어 그를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영웅들, 잊혀지려는 무명의 독립투사들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기념했으면 좋겠다.

 

2019.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