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신의 뜻 덧씌우기 본문
신의 뜻
한국에서 우리 교회에 자주 오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지긋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에너지가 아우라처럼 보일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죠. 중요한 행사때마다 자카르타를 찾는 그분이 자주 설교단에 서는 걸 보면 그분이나 그분의 교회가 자카르타에 있는 우리 교회의 설립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날 그분은 자기 교회가 화재로 전소된 사건을 설교 중 소개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매달려
하나님의 뜻을 구한 끝에 2년여에 걸쳐 교회당 재건에 나섰고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이를 지원한 성도들은
타버린 교회당 바깥 공터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면서 헌금과 기도에 애썼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교회당은 지난한 공사를 거쳐
마침내 위풍당당한 예전 모습을 되찾았고 목사님과 성도들은 감사의 눈물을 훌렸습니다.
놀라운 간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난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교회당이 전소한 그 화재사건을 그 목사님은 교인들이 다시금
단합하여 모든 고난을 함께 극복하는 계기라고 받아들였고 마침내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메세지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왜 그 화재사건을 "이제 그짓 작작들 해라"하며 교회당 문을 닫으라는 계시였을 지도 모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요?
뭔가 오래동안 하던 것을 갑자기 중단하지 않으면 안될 순간이 찾아온다는 건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전에 하던 짓을 이후에도 똑같이 하라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부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다른 방향 또는 다른 것을 시도해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다 타당하고 합리적이겠죠. 물론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의 논리로, 인간의 기준으로 가늠하지 말라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교통사고로 폐차지경에 이르면 새 차로 바꿔야 할 시점이 되었다거나 아니면 앞으론 절대 직접 운전하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그러진 곳을 펴고 부품을 모조리 갈아 짜맞추고 도색해서 다시 타고 다니라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게 인지상정이죠. 인지상정이란 사람들의 일반적 감수성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인간들 사이의 상식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 감수성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부합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신의 뜻이란 그렇게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와중에 불탄 성전을 재건해 거기서 예전에 하던 일들을 똑같이 다시
하겠다고 한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 목사님의 뜻이기 쉽고 그건 '의지'라기보다 '독선'이라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목사님은 성전재건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성도들을 독려해 수십 억은 족히 들었을 성전재건공사를 2년만에 마무리 지었답니다. 성전을 전소시킨 화재는 그런 영광스러운 재건을 위한 서곡이었을 뿐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목사님과 성도들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뜻을 깨달아
알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목사님의 '불굴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포장으로 덧입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설교나 목회가 아니라 사기에 가까운 것이됩니다.
신의 뜻을 말하는 자.
그는 사실 신의 뜻을 설파하기보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래서 신의 도구가 되어야 할 목사들은 오히려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곤 하는 것이죠. 기억하세요. 아프리카의 자유인들을 노예의 굴레로 엮어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모두 내로라하는 기독교 국가들, 심지어 청교도 국가들이었으며 당대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노예제도를 비호하고 찬양했더랬습니다.
신이 이름을 덧입은 영광스러운 얼굴의 뒷면엔 성직을 맡은 인간의 불굴의 의지, 때로는 음습한 욕망이 숨어있곤 합니다.
2018. 12. 16.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0년 광주에 북한군 개입 (0) | 2019.02.12 |
---|---|
[기독교의 패기] 성서무오설 (0) | 2018.12.26 |
비겁함의 근원 (0) | 2018.12.11 |
힘든 삶을 살아간 친구에게 (0) | 2018.12.01 |
한인들의 목소리를 한인회에 들려 주세요 (0) | 2018.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