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풍등 날린 본디오 빌라도

beautician 2018. 10. 10. 09:06

 




기독교의 사도신경에서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며 그 전적인 책임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돌리고 있죠. 그는 당시 유대에 파견된 정복자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사도신경이란 것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이며 즉 기독교인들을 통제하는 교황청 또는 교단의 통치기제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권위 있다는 말이며 그만큼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의 죽음을 요구한 것은 예수의 동족인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사주를 받아 격동한 예수살렘 주민들이었죠. 하지만 사도신경이 '동족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아 로마의 십자가에 달리시고~' 이런 식으로 쓰지 않은 것은 굳이 동족들, 기독교인들 자신, 나 자신을 살인자의 자리에 앉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더욱이 압제자, 정복자에게 예수의 죽음의 책임을 물으며 피압제자, 피정복자들에게 우린 서로 같은 편이란 신호를 보내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기저에 있는 본질은 기독교단과 교황청의 '비열함'에 있습니다.

 

이제 그와 같은 사건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저유소 화재사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유소가 폭발하며 기름이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타도록 손도 쓰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를 예방하지 못하고 화재진압도 하지 못한 관리주체인 당국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당국은 그곳에 우연히 날아든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을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합니다. 물론 그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풍등 날리는 것이 불법이었거나 펜스 안으로 날아가 잔디에 불이 붙은 것을 상황종료로 판단해 방치한 것이 불법이었다면 자신이 행한 행동만큼의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 근처 어딘가에서 책임의 한계선이 겹치는데 그 건너편에서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받아야 할 처벌까지 이 스리랑카인이 모두 감당해서는 안될 일이죠. 그렇게 된다면 그건 당국의 비열함이고 한국인들의 비겁함이 되는 겁니다.

 

우린 모두 합당한 책임만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후 광기에 휩싸여 유병언만 잡으러 다녔던 그런 희생양 작전에 또 다시 휩쓸려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2018.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