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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

창공을 향해 도약하는 디르간타라 동상

beautician 2018. 7. 14. 10:00


창공을 향해 도약하는 디르간타라 동상

 

디르간타라 기념비(Monumen Patung Dirgantara)는 빤쪼란 동상이나 사냥꾼 동상이라고도 알려진 적이 있지만 사실 디르간타라란 대기권, 공중, 창공을 뜻하는 단어로 인도네시아의 항공산업 또는 인도네시아의 창공을 나타내는 조형물을 만들고자 했던 수까르노 초대 대통령의 생각을 반영하여 건설된 것입니다. 그러니 동상이 사실 우주인을 표현한 것이라는 정설입니다.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는 인도네시아 민족의 벅찬 용기를 그린 것이죠. 얼굴을 한번 보세요. 정말 대기권 밖으로 튀어나갈 같지 않습니까?

 

 

이 동상이 서 있는 빤쪼란 사거리는 옛날 인도네시아 공군사령부가 있던 위스마 알디론 디르간타라(Wisma Aldiron Dirgantara) 앞입니다. ‘디르간타라란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 동상이 공군 사령부 것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그래서 창공을 향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옛날엔 할림 뻐르다나꾸스마 공군기지(공항)을 통해 도착하는 사람들에겐 빤쪼란 사거리가 자카르타 시내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으니 이 디르간타라 동상은 예전엔 자카르타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로서 더 큰 의미를 지녔었습니다.

 


 

처음 동상을 만들게 것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창공에 대해 품은 원대한 포부를 표현해 달라는 수까르노 대통령의 요구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64년부터 1965년까지의 기간동안 에디 수나르소(Edhi Sunarso) 기획했습니다. 끌루아르가 아르짜 족자(Keluarga Arca Yogyakarta)라는 예술가 그룹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편 동상을 실제로 만든 것은 가르도노(I Gardono) 지휘하는 족자 조형예술 금속동상 제작소(Pengecoran Patung Artistik Dekoratif Yogyakarta)입니다. 이동상의 금속부분은 11톤에 달하고 높이는 11미터입니다. 지나치면서 보면 굉장히 작아보이지만 사람 키의 6-7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동상입니다. 받침대부터 치면 27미터에 달합니다. 이 동상을 여기 가져와 세워 올린 것은PN 후타마 까르야(PN Hutama Karya)와 공학사 수타미(Ir. Sutami) 입니다. 기획되고 설계되어 제작되고 현재의 장소에 세워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던 것입니다.

 

동상의 제작은 1965년에 벌어진 G30S PKI 반란사건/친위쿠데타 때문에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쿠데타 이후 하루가 다르게 실권을 잃어가던 시절에도 수까르노 대통령은 이 동상의 설치상황을 가끔 찾아와 보았으므로 경호원들과 작업자들이 모두 애를 먹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당시 이 동상을 세우는 것은 완전 수동식이었으므로 11톤 무게의 이 동상은 1톤 짜리 조각 11개로 나누어 올려야 했다고 전해집니다.

 


원래는  이런 모습으로 계획


그러다가 결국 이런 모습으로 확정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지하게 .

 

빤쪼란 사거리에 있던 공군사령부는 이미 오래 전에 이사해 갔지만 디르간타라 동상만은 여전히 빤쪼란 사거리에 남아 자카르타의 발전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물론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 지상의 발전상을 보긴 어려웠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인도네시아 근대사 이야기로 식상했을  테니 오늘은 잠시 간단한 동상 이야기로 쉬어갑니다.^^

 

2018.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