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우위영의 로스 호베네스 - [작곡] 장마비 그치던 날 본문
장마비 그치던 날
장마비 그치던 날 나는 보았지
내 눈에 무지개 어리던 것을
그때에 지나던 바람은 속삭였었지
인생은 장마같은 어려움 투성이라고
장마가 머물다가 지나간 곳은
결코 편한 곳은 아니었지만
아, 떠날 때 두고 온 마음 한 조각
아, 미처 듣지 못한 긴 이야기
돌제방 지날 때 탁류가 물었지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하냐고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지
아직도 강의 끝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1986년 상무대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자그마한 여학생이 부대에 면회를 왔습니다.
그 친구가 내가 거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그 친구 이름은 '우위영'이라 했고 용인분교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선배님, 만들어 놓은 곡들 많다고 들었어요. 곡 받으러 왔습니다~!"
당돌하기 짝이 없죠.
용인에서도 축제 때 '왕산가요제'라는 경연이 있는데 거기에 '로스 호베네스'라는 팀을 결성해 나간다는 거였어요.
난 생전 처음보는 아가씨가 군인 아저씨에게 그런 요구를 해오는 그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결국 이 곡을 주었습니다.
'장마비 그치던 날'
그리고 그 해 우위영과 그 팀은 왕산가요제에서 이 곡으로 대상을 탔습니다.
내가 1985년 외문가요제에서 제비꽃으로 대상을 탄 후 2년 연속 내 곡이 대상을 받은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아가씨는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이 일로 인해 나중에 전역할 때 한화로 돌아갈지 군에 남을지 아니면 딴따라의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날 통합진보당 RO 사건이 터지고 이석기가 내란죄 등으로 체포 수감되었습니다.
그때 함께 재판받고 감옥에 간 사람 중 통진당 공동대변인 우위영이란 여성이 있었습니다.
웬지, 그녀가 우리 부대를 찾아와 내게 곡을 받아 갔던 그 작은 아가씨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위영씨는 외대 용인캠퍼스 84학번이라고 나와 있군요.
아마도....틀림없을 겁니다.
그립네요.**
우위영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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