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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어떤 날

beautician 2017. 12. 1. 10:44

12월 1일은 딸의 생일입니다.

싱가폴에 살기 시작한지 10년이 된 딸의 생일은, 그래서 제대로 챙겨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더욱이 물가 비싼 싱가폴에서 마지막 함께 지냈던 딸의 생일엔 통 케익이 아니라 조각 케익에 초를 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일 축하한다. 우리 딸.


 

올해는 그 12월 1일이 유명인사의 생일과도 겹쳤습니다. 이슬람이 유일한 선지자로 여기는 무하마드/모하멧 말입니다. 물론 늘 같은 날인 건 아닙니다. 이스람력을 따르는 무하마드의 생일은 매년 2주쯤 빨라지니 내년엔 11월 중순쯤에 도래할 것입니다. 이슬람은 결국 무하마드의 생일과 승천일을 모두 인도네시아의 휴무로 정해 똑같이 생일 크리스마스와 승천일이 휴일인 예수님과 동급의 위상을 부여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았던 고난일 Good Friday도 휴일이므로 한 수 위라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이둘 피트리 또는 르바란이라 부르는 관련 축제로 짧게는 3일 길게는 20일 간의 장기휴무가 매년 있으니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확실한 우위를 점한다 하겠습니다.



그런 중요한 두 사람의 생일이자 휴일이 오늘 12월 1일 금요일입니다. 그리고 금요일이 휴일이면 목요일 자카르타 도로엔 차들이 쏟아져 나와 대혼잡을 이루곤 합니다. 연휴를 앞두면 갑자기 기동력을 점검하고 싶어지는 걸까요? 어제가 그런 날이었습니다. 시내에서 한 국제적 광산업체를 릴리와 함께 만나 술라웨시 코나웨우타라의 니켈회사 지분과 현지 니켈 스톡을 팔기로 하며 꽤 큰 액면가의 미팅을 하고 자카르타 최고 중심가인 수디르만 거리의 ICBC 은행에서 릴리의 수표책을 받아오는 간단한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정을 위해 난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경까지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자카르타 도로는 지옥과도 같았고 난 움직이지도 않는 시내 도로에서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한 친구는 업무관련 서류를 잔뜩 보내 번역해 달라며 닦달을 했는데 결국 내가 집에 도착할 즈음엔 혼자 알아서 번역했다며 반 장난으로 노발대발 했습니다. 그런 걸 보면 교통정체는 분명 일말의 순기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내 마음 한 편에 있던 생각은 그 전날 아모르문디 출판사에서 받은 이메일이었어요. 그들은 1년반 전에 보냈던 내 원고에 대해 출판해 주겠다는 메일을 막 보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낸 회신에 대해선 하루 종일 더 이상의 답신이 없었습니다. 무명 작가의 인문학 서적 출간에 대해 그들이 밝힌 의사는 과연 진심이었을까요?

 

그렇게 복잡하던 날 떠나는 사람과 도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간담회를 갖기로 한 세월호 어머니 두 분이 11월 30일 밤 11시경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분들은 밤늦게까지 계속된 그 정체를 뚫고 숙소에 들어가 오늘 북부자카르타의 끌라빠가딩에서 첫 간담회를 갖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난 커다란 슬픔을 감당했던 분들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길 건너 다미식당에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제 마음 다잡고 굳건히 일어나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그분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11월 30일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정부가 여행중인 국민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보낸 아시아나 특별 전세기가 한국을 떠나 수라바야 공항으로 날아온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발리 아궁화산의 폭발로 발이 묶인  한국인 여행객들을 위해 정부가 손을 쓴 것입니다. 화산 분화로 발리공항이 폐쇄된 초창기인 11월 27일-28일의 분위기는 대사관에서 공지문을 통해 이리저리 철수루트와 현지 전화번호 몇 개를 알려 주며 알아서 잘 돌아오라는 분위기였는데 그것이 29일 확 바뀌어 발리공항에 한국인들을 위한 버스를 대기시켜 수라바야까지 실어 나르고(돈을 달라 하더군요. 1인당 30만 루피아) 급기야 30일에는 특별기가 뜬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무료인 모양입니다. 1998년 자카르타 폭동 당시에도 아수라장이 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특별기가 떴다는 것 같은데 그땐 평소 비행기값의 몇 배를 받으며 항공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하더군요. 이번엔 그렇진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도 평소와 같이 느긋하게 대응하던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강경화 장관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크게 혼난 결과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그날 저희 문협 인니지부 회장님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갑작스러운 모친상을 당해 경황도 없이 허겁지겁 한국으로 향한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자카르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12월 12일 경 귀국할 예정이었습니다. 회장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어머님 마지막으로 잘 모시고 자신의 건강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고 또 진행되고 있습니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것만 같은 자카르타의 일상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다채롭고 급박하고 다이내믹합니다.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2017. 12. 1.


PS. 특별기 돈 내는군요. 

하지만 발리-인천 항공권 가지고 있는 분들은 환불액만 이체하면 된다고 하니 무료라고 해도 말은 될 듯 합니다. 특별기 타는 걸로 추가비용이 들진 않으니 말입니다. 
돈을 낸다 해도 비성수기 최저가 기준이네요. 정부의 성의가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