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막스 하벨라르

[랑까스비뚱] 물타뚤리의 ‘막스 하벨라르’가 태어난 곳

beautician 2017. 11. 20. 10:00


[랑까스비뚱] 물타뚤리의 막스 하벨라르가 태어난 곳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담장 너머의 코리아센터 콤플렉스 구 영사동 건물에서 2017 11 13일 월요일 아침 일찍 한-인니 문화연구원의 사공경 원장과 한 차를 타고 출발해 서부 자바의 랑까스비뚱(Rangkasbitung)을 다녀왔습니다. 자카르타에 가까운 반뜬 주(Provinsi Banten)의 행정구역인 르박 군(Kabupaten Lebak) 군청소재지인 랑까스비뚱은 만만찮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출발한지 2시간 반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이자-아딘다 도서관


물타뚤리 박물관


랑까스비뚱의 옛 이름은 랑까스버뚱(Rangkas-betung)이라 하는데 순다어로 흩날려 떨어지는 대나무 잎사귀란 시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배경으로 160년 전에 쓰여진 네덜란드 고전소설 막스 하벨라르의 주무대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간 것은 그 책의 저자 물타뚤리의 이름을 딴 물타뚤리 박물관(Museum Multatuli)와 그 책에 등장하는 비운의 주인공들 이름을 딴 사이자(Saidja)-아딘다(Adinda) 도서관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박물관장과 르박군수(부빠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순다 전통의 곡물창고 모습을 본 딴 도서관은 개관되어 있었지만 이미 개관된 것처럼 신문지상에 소개되었던 박물관은 12 4일 정식개관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우바이씨(Bapak Ubaidilah - 왼쪽)와 사공경 원장(오른쪽)

 

전세계에서 수집한 막스 하벨라르 번역본들


이곳을 담당하는 공무원 우바이씨(Mr. UBAIDILAH_ 2000년 대학시절 막스 하벨라르를 처음 읽으면서 물타뚤리 덕후가 된 후 교육부 공무원이 되어 르박의 바두이(Badui)라는 곳에서 중학교 교원으로 일하다가 박물관 개원계획을 알게 되어 랑까스비뚱의 현재 직책에 자원한 사람입니다. 랑까스비뚱은 막스 하벨라르의 탄생지답게 도로, 병원, 시의회건물 등이 너도나도 물타뚤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도 물타뚤리를 기념하는 도로나 지역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우바이씨는 독학을 통해 물타뚤리에 정통했고 사비로 번역본 20권을 사 바두이의 학생들과 함께 물타뚤리 독서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박물관에 부임하기 전부터도 전세계에서 출간된 물타뚤리 번역본 및 관련서적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였고 네덜란드에서 간행되는 물따뚤리 관련 간행물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는 비록 덕후로 시작했지만 이젠 인도네시아는 물론 네덜란드에서도 알아주는 물타뚤리의 전문가가 된 것입니다.

우린 그와 함께 다음 장소들을 탐방하였습니다.

-
아디빠띠의 집무실 : 1926년 개축되어 현재 군수(Bupati) 청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막스 하벨라르에 등장하는 르박의 태수 라덴 아디파띠  까르타 나타 느가라는 실존 인물로 2대 부빠띠로 기록되어 있었고 그의 사위이자 당시 빠룽꾸장(책에는 빠랑꾸장 Parang-Kudjang으로 기록됨)의 군수였던 쁘라위라 꾸수마(Prawira Kusoemah) 3대 부빠띠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작품 속의 막스 하벨라르가 그들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지만 부패는 막스 하벨라르보다 랑까스비뚱에 더욱 오래 남았던 것입니다. 한편 아디파띠의 저택은 와룽구눙(warung gunung)이라는 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
아디파띠의 무덤 : 인근 회교사원 머스짓 뒷편 묘지에 있으며 묘비의 마멸을 우려해 흰 천으로 덧씌워져 있었습니다. 사위의 묘지도 같은 묘역에 있었습니다. 장인보다 더 큰 지면을 차지한 사위는, 그러나 무덤의 관리 상태는 장인보다 매우 열악했어요. 그리고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한 시대를 영주로서 살아가며 숱한 사람들을 불행 속으로 빠뜨린 그들 역시 죽고 나서는 기껏 한 평 남짓한 땅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물타뚤리의 집 : 막스 하벨라르는 물타뚤리의 자전적 소설이어서 물타뚤리, 즉 에드아르드 다우베스 데커르의 공직 경력은 소설 속 막스 하벨라르의 경력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 표사된 바대로라면 오래된 관저 새 관저, 그리고 부지사 청사 등 3개 건물이 거대한 저택의 대지 위에 세워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하반기에 시작된 대대적인 개발사업이 벌어지면서 이 중 건물 2개는 완전히 철거되었고 나머지 1개도 70% 이상 소실되어 벽 일부와 방 3개 정도가 험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디파띠의 집무실은 독립 후에도 군청 청사로 개보수, 증축, 개축되어 아직도 사용되고 있지만 총독부 부지사의 청사 및 관저는 독립과 함께 그 용도가 폐기되어 더 이상 유지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적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다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이 복원조차 불가능한 것은 그 부지 전체가 이젠 르박 지방정부 소유의 병원에 둘러싸여 있고 관저의 남은 부분들도 오랫동안 병원의 낡은 가구, 침대 등을 보관하는 허드레 창고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바이씨는 남은 것이나마 어떻게든 보존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물타뚤리 관저의 남은 벽

이 병원 부지 안에 막스 하벨라르의 관저 일부가 남아 있다.

- 르박 형무소: 당시 설계가 완료된 것으로 작품에도 등장하는데 실제 건립된 것은 1904년이었다고 합니다



르박 형무소



- Alun-alun : 태수의 집무실 앞에 펼쳐진 거대한 정원은 막스 하벨라르에도 등장하는데 이곳을 관리하기 위해 인근주민들의 무상노동력 동원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인근 찌우중(Ciujung) 강은 찌버랑(Ciberang) 지천과 합류해 땅거랑에서 바다로 나가는데 현재 강에는 악어가 창궐하고 있었습니다. 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길에 찌우중 강을 건너는 철교를 몇 개 지났습니다.


찌우중 강 위의 철교


한편 우바이씨는 www.readingmultatuli.co라는 물타뚤리 관련 전용 웹사이트를 운용하고 있었고 거기에 관련 자료들과 사진, 비디오들도 수록해 놓았습니다. 그가 알려준 물타뚤리 관련한 보다 다양한 정보들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 랑까스비뚱의 도로, 관공서, 학교병원 등에 물타뚤리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
수마트라의 나딸과 메단 수라바야에 물타뚤리 도로가 있으며 (나딸은 물타뚤리가 조정관으로 근무했던 곳이고 메단은 바딱 사람들의 도시로 소설에서도 바딱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킨 아쩨인들을 몰아내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음)

-
해군군함 중 KRI Multatuli라는 군함도 있고, (이 군함은 배수량 3,220, 전장 111미터 최대폭 16미터에 최대 시속 18.5노트를 낼 수 있고 1.5인치 대공포 6, 0.58인치 대공포 4, 3인치 함포 1문을 장착하고 헬기 1대를 적재할 수 있다. 1961년 동경조선소에서 제작되어 아직도 해상경계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 현지 록밴드 중 족자 출신 물타뚤리 밴드와 자카르타 출신 막스 하벨라르 밴드가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물타뚤리와 막스 하벨라르의 의미를 정말 알고는 있는 걸까요?

 




- 1976
년 촬영된 인니-네덜란드 합작 물타뚤리 영화는 수하르토 정권의 상영금지 처분으로 인해 1984년이 되어서야 상영되었고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 귀족들을 너무 악독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네덜란드 강점기 시절 영주들의 가혹한 수탈의 역사를 수하르토 정권이 왜 애써 감추려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동병상련을 느꼈던 걸까요? 찔리는 게 있었던 걸까요?


 

 

- 직가 뿌라무디야 아난다 뚜르(Pramoedya Ananda Toer)는 막스 하벨라르에서 영감을 얻어 4부작 소설을 썼고 그 중 Bumi Manusia 라는 소설엔 막스 하벨라르와 유사한 이름의 등장인물도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도 모두 수하르토 시절 금서로 지정됩니다. 그 이유는 독립전쟁 당시 이 작가가 사회주의 작가연맹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아난다 뚜르 작가의 작품들

 

기본적으로 인니인들 사이에 막스 하벨라르는 별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극히 적은데 그 이유는 오래된 책이기도 하거니와 장기간 계속되어온 정부측 탄압의 결과라는 견해가 힘을 얻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하르토 정권이 영주, 귀족들의 가혹한 서민수탈 사실을 덮으려 했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을 인도네시아인들이 스스로 고발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그것을 식민지배의 주체였던 네덜란드인이 얘기했다는 것이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막스 하벨라르는 톰아저씨의 통나무집과 동시대의 소설로 당시 거대한 국제적 반향을 불러왔던 문제작이었던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12 4일 박물관 개관식엔 물타뚤리의 동상과 함께 사이자 아딘댜의 동상도 함께 세워질 것이라 합니다. 그때쯤, 아니면 한국어 완역본을 기증하러 갈 때 또 한 번 방문하게 되겠죠. 그땐 좀 더 자세히 둘러볼까 합니다.

 

 

2017. 11. 17.



P.S. 그 날 결국 군수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자리에 있긴 했지만 자카르타에 무슨 회의를 하러 가기 앞서 준비 중이어서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바이씨를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우리가 자카르타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공 선생님 통해 우바이씨가 보낸 랑까스비뚱 신문에 난 기사를 하나 카카오톡으로 받았습니다.  물타뚤리 박물관에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제목이었고 거기 우리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어요.  우린 관광객이 아니었는데....



이래저래 그날의 방문은 여기 저기 흔적을 남겼습니다.



==================


박물관 건너편의 Alun-Alun의 일부


도서관 내부. 실제 도서관은 저 램프를 걸어 올라가 2층에 있습니다.

박물관 앞 뻔도뽀(Pentopo) 내부

박물관 건물 앞에서 필자, 박물관장 우바이씨 사공경 원장님

군청 청사 견학 중


군청 시설 일부

아마도 행사용 강당처럼 사용되는 뻔도뽀 전면에 설치된 그림. 독립영웅들의 그림들 중 중안 왼편이 부빠띠(군수) 오른쪽이 부군수랍니다.



찌우중 강 철교 위에서 사공경 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