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2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서만수 목사와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1970년 9월 28일 대구 서현교회에서 개최된 제55회 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에서 김창인 목사는 “남방 밀림 속에 그리스도의 게릴라를 투입시킨다”며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나 총신 신학과 65학번 1회 졸업생인 서만수 목사의 인도네시아 파송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1971년 12월 31일 자카르타에 처음 도착한 서목사는 비록 첫 한국인 선교사는 아니지만 현지 한국교회사에 가장 굵고 큰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한다. 수라바야를 거쳐 술라웨시에 들어가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토라자 마마사 교단 소속 선교사로 현지인 선교에 전념하던 그가 대사급 수교 이전이었던 당시 한 줌도 되지 않던 동포들을 위한 목회를 병행하기로 한 것은 자카르타 한인 크리스천들의 영적 갈급함을 알았기 때문이..

선교지에 묻히려 돌아온 말기암 선교사

서만수 목사가 처음 자카르타에 들어온 것은 1971년 12월 31일의 일이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선교사 신분이었으나 하나님의 병사로서 각오를 세웠다. ‘작전지에 투입된 게릴라는 감독관이 없다. 오직 임무수행의 명령만 있을 뿐이다. 살고 죽는 것이 오직 거기 있을 뿐이다.’ 1994년 출간한 저서 에서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1939년 평양에서 출생해 6.25전쟁 중 월남한 서만수 목사는 1970년 9월 대구서현교회에서 개최된 제55회 총회에서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다 죽어라. 너는 죽고 인도네시아는 살아야 한다.’ 총회장 김창인 목사가 이 자리에서 서만수 선교사 부부에게 당부한 이 비장한 명령은 이후 그의 선교일생을 관통하는 모토가 된다. 그가 처음 ..

기록 20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