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실리카 2

인도네시안 드림 (2)

ep2. 연봉 50억 “아, 나 여기 말링핑에 와 있는데요. 지난 주까지 킬로그램당 1,200 루피아 하던 납 원석을 3,000 루피아 달라고 하는데 얘기 좀 해 주세요. 도대체 가격이 비싸진 이유가 뭐고, 얼마까지 주면 팔겠냐고요.” 전화를 걸어온 최사장은 빠른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대뜸 현지인을 바꿔 주곤 하는 겁니다. 그 시간도 대중없어 아침식사 전에도 전화가 걸려오고 한참 미팅 중일 때에도, 지인들 골프모임에서 드라이버를 막 휘두르려는 찰나에도 핸드폰이 울곤 했습니다. 최사장은 저녁식사 자리를 종종 만들었는데 예고도 없이 자기 사업 파트너라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내가 자기 일을 봐주는 것처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또한 악의나 고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나로서..

인도네시안 드림 (1)

1. 파산 이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업종과 사업현장들을 돌고 돌다가 디자인 회사 봐주던 일을 막 그만 두게 되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사업이나 봐주는 바보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정말로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달리 먹고 살 방법이 없다면 어떤 일이든, 그 대가가 얼마이든,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파산 후 반둥공장 꼬린 가멘타마에 헐값으로 팔려 갈 뻔 했던 것도, 박치기 대마왕이 지배하던 빠룽의 봉제공장에서 자존심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것도, 골프샵에서 사장 첩의 집사 노릇까지 감수해야 했던 것도 그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그 뒤끝이 한결같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디자인 회사의 운영을 맡게 될 즈음의 상황은 분명 달라지기 시작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