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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권총의 역사

beautician 2017. 2. 5. 10:00

아래는 2017년 2월 4일자 조선일보 인터넷판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양욱의 Wide & Wise 군사] 권총은 자살용이 아니다

입력 : 2017.02.04 10:23:23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30여년 만에 권총 바꾼 미군, 이젠 '플라스틱 권총' 쓴다
우리 군도 신형 권총이나 개량형을 차츰 준비할 때

군대에서 권총 얘기를 하면 나오는 말이 있다. '권총은 자살용이다.' '권총은 맞지 않는다.' '권총은 적에게 던질 때 더 잘 맞는다.'

필자가 보기엔 여기엔 3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우선 애초에 대부분의 부대에서 권총사격 교육은 소개교육 정도의 수준이고, 교육시간이나 사격 발수도 심하게 부족하다. 둘째로 부대에 편제되었다고 해도 보수교육의 기회도 없다 보니 연간 나오는 교육탄환 xx발도 거의 소모사격하며 써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권총 자체도 잘 관리되지 않는다.

일례로 한국전 때 들어와 아직도 남아있는 45구경 중에는 총열의 강선이 다 닳아 명중이 불가능한 총도 보이고, 가늠자∙가늠쇠도 옛날 방식이라 너무 작아서 쓸 수 없다. (물론 이런 권총들을 특전사에 쓰라고 던져준 것도 참 무서운 얘기이긴 하다. 손보기는 했고 당연히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참고로 특전사는 총기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1911 권총 사격장면 / 유튜브

◆ 안 맞는 권총, 뭐 하러 바꾸나

2017년 1월 18일 미 육군은 32년 만에 드디어 차세대 군용 권총을 선정했다. 새롭게 고른 권총은 시그사우어(SIG Sauer)사의 P320이라는 권총이었다. 앞으로 10년간 최소 28만 정이 신규로 도입될 예정이고, 최종적으로는 50만 정까지도 생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계약액만 해도 무려 5억8000만불(6658억원) 상당이다.

미 육군이 1차대전 이전부터 사용해온 자동권총은 M1911 45구경 권총이었다. 천재적인 총기설계자인 존 브라우닝이 콜트(Colt)사를 위해 설계한 이 권총은 1911년 미 육군에 채용된 이후로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활약하면서 미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2차대전 당시에는 무려 1900만 정이 생산되었다. 당연히 원제작사인 콜트 혼자서 생산을 감당할 수 없어서 레밍턴, 이사카, 스프링필드, 스위치&시그널, 싱거 등에서도 M1911을 생산했다. 이 중에서 유니온 스위치&시그널 사는 총기제작사가 아니라 철도용 신호기 등을 만들던 회사였고, 심지어 싱거는 미싱을 만들던 회사였다.


▲M1911A1 권총. 사진은 그 중에도 희귀한 ‘싱거 1911’이다.

M1911이 권총탄 치고는 다소 큰 편인 45ACP 탄환을 사용하여 살상력은 뛰어났지만, 총알이 크다보니 탄창에 고작 7발이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총기의 대부분은 사용한 지 30~40년이 지나서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게다가 NATO의 표준권총탄으로 9x19mm 파라블럼탄이 채용되면서 미군도 권총을 바꿔야만 했다. 상황을 꼼꼼히 조사한 미 의회는 1978년 국방부에게 권총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그것도 육군 혼자만이 아니라 3군이 같이 다 바꾸라고 말이다. 그래서 합동군 소화기사업(JSSAP)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13발 이상을 장탄하고 9mm 탄을 쏠 수 있으며 왼손잡이도 편하게 쏠 수 있는 더블액션 권총을 채용하기로 했다.

사업 시작의 소식이 알려지자 콜트, 스미스&웨슨, FN, HK 등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유수의 총기회사들이 덤벼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구매하겠다던 최소수량이 22만 정이었기 때문이다. 선정사업은 1979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미 육군이 까다롭게 기준을 세워서 1982년에 '선정할 총이 없습니다' 하고 의회에 보고하자 난리가 났다. 사실 육군은 익숙한데다가 아직 수량도 충분히 많은 M1911을 바꾸기를 꺼려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의회의 압박에 1983년부터 다시 선정시험을 시작하여 베레타(Beretta)의 모델92SB-F(민수형이 모델 92F)와 시그사우어의 P226이 최종 후보로 남았고, 피 말리는 입찰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 단 900만불을 적게 쓴 베레타가 선정되어 1985년 M9 권총으로 채용되었다. M9 권총의 미군 납품가는 정당 178불50센트 수준이었다. 모두 31만5930정이 주문되었으니 충분히 납득이 가는 가격이었다.

▲M9 권총


◆ 적에게 던지는 용도라는 M9 권총

M9은 당시로서는 꽤나 혁명적인 권총이었다. 특히 베레타가 과거시절부터 채용해오던 오픈 슬라이드 설계방식으로 슬라이드에서 총열 부분이 거의 외부로 노출되는 형태였다. 탄창에는 15발이 장전되었고, 안전장치는 슬라이드 쪽에 좌우에 동시에 작동이 가능하도록 장착되었다. 여담이지만 베레타 M9 권총은 모양새가 예뻐서인지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 '다이하드'나 '리썰웨폰' 등에서 주인공이 들고나오던 총들이 M9 권총(정확히는 민수형 92F)들이었다.

그러나 M9은 채용 초기에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1986년경 미 해군 특수부대 실팀 대원들이 사격 중에 슬라이드가 분리되면서 대원의 얼굴을 강타한 사건이 벌어졌다. 개발한 지 무려 15년이 지난 총이었는데 여태까지 단 한번도 보고된 바 없었던 문제였다. 소식을 들은 미 육군은 1988년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7개월간 집중적인 시험평가를 실시했다. 시험한 총기 가운데 11정이 적게는 4900발, 많게는 3만500발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미 해병대원의 M9 사격훈련 장면 / 유튜브

원래 제작사에서는 생기지 않던 문제가 미군에서 발생한 이유를 추적해보니 우선 문제는 탄환이었다. 미군이 사용하던 M882 탄환은 유럽에서 사용하던 NATO 표준 9mm 탄보다 다소 쎈 탄환이었다. 그래서 탄환의 추진제를 좀 약하게 바꾸었다. 또한 품질관리를 위해 권총을 미국에 공장을 지어 생산하도록 했으며, 슬라이드 분리사고 시에도 사수가 다치지 않도록 내부에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했다.

M9은 이후 1991년 걸프전과 2001년 아프간전, 2003년 이라크전 등 전쟁의 일선을 누비면서 미군의 총기로서 활약해왔다. 그러나 사실 전장에서 권총의 역할이 주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전과를 올릴 기회는 없었고 M1911 권총과 같은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간 나름 잘 활용되어 왔다. 문제는 이제 채용된 지 30년이 되어가다 보니 로킹블록 파손, 탄창 급탄불량 등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지난 1월 12일 매티스 국방장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조니 에른스트 상원의원은 자신의 군 경험을 얘기하면서 "M9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적에게 던지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면서 총기 교체사업을 서두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조니 에른스트 상원의원의 M9 발언 (1:05~3:00) /유튜브

◆ 새로운 권총을 찾아라

M9의 등장과 채용은 쓴 뒷맛을 남겼다. M1911만큼의 명성이나 신뢰는 얻지 못했던 모양이다. 기회가 되면 M9을 교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4년경에는 미 육군의 미래권총체계(Future Handgun System; FHS)사업이 있었고, 특수전사령부(SOCOM) 전용의 권총을 도입하려는 사업도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합쳐져 합동 전투용 권총(Joint Combat Pistol) 사업이 2005년 시작되었는데, 1년도 못가서 사업이 멈춰섰다.

그러다가 2008년 공군이 새로운 권총을 찾기 시작하고 육군이 다시 움직이면서 모듈러 권총체계(Modular Handgun System) 사업이 시작됐다. 전세계에 정말 다양하고 우수한 권총들이 시장에 나와 있으니, 그 중에서 골라서 군용으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의회는 기존의 M9을 고쳐 쓰면서 돈을 아끼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계산을 해보니 새 걸 사는 게 고치는 것보다 싸다고 군은 판단하고 사업을 진행했다. 2014년 여름부터 신형 XM17권총을 채용하기 위한 MHS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수부대들은 글록19처럼 트렌드를 반영한 권총을 이미 사용 중이었다.

그리하여 2015년 6월에 최종 작전요구성능이 발표됨으로써 신형 모듈러 권총 선정사업이 시작되었다. XM17 권총사업은 애초에 탄환을 특정하지 않았단 점이 특이하다. 즉 9mm탄이든 40S&W탄이든 필요하면 탄환을 바꿔서 쓸 수 있도록 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긴 총열과 짧은 총열 등을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요구했다. 레고처럼 필요에 따라 붙였다 줄였다 하는 모듈러 설계가 요구된 것이다. 또한 최근 어떤 권총에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피카티니 레일을 포함하도록 했다.

물론 선정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원래는 2012~2013년 정도에 시장에 나와있는 총을 그대로 사기로 했던 것이, 2014년부터 육군의 요구조건을 포함한 총기를 만들기로 했다. 새로운 총을 만들자니 당연히 업체들은 요구조건에 맞는 총기를 만들어서 제출해야만 했다. 새로운 총을 선정하는데 2년의 시간과 1700만 불이 소요되자, 마크 밀리(Mark A. Milley) 미 육군 참모총장은 차라리 그 돈으로 총기판매점에 가서 권총을 사오겠다며 일갈하기도 했다.

▲시그사우어 P320MHS 모델이 M17 권총으로 선정되었다.


◆ 새 시대에는 새 권총으로

이 모든 난리통 속에 드디어 사업이 시작되어 이미 명성높은 권총들이 세계 최대의 권총시장에 뛰어들었다. 폴리머 프레임을 채용하여 '플라스틱 권총'의 시대를 연 글록도 있었다. 스미스&웨슨에서 글록에 자극을 받아 만든 M&P는 혼자 들어오기 불안했는지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함께 입찰에 뛰어들었다. 이외에도 베레타나 CZ 등 유수의 회사도 참가하여 모두 12개의 모델이 경쟁에 참가했다.

치열한 성능검증과 입찰 속에서 업체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고, 결국 최종후보로는 시그사우어, 베레타, FN, 글록이 남았다. 후보들 중에서 세계 권총시장을 휩쓸고 현재 미군 특수전부대가 애용하고 있는 글록이 선정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차기 M17권총으로 시그사우어의 P320 MHS 모델이 선정되었다. M17은 M9 뿐만 아니라 M11 권총(민수형 시그사우어 P228)까지도 동시에 교체하게 된다. 이렇다보니 최소 28만 정에서 최대 50만 정까지 교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320 권총은 모듈러 설계로 손쉽게 구경을 바꿀 수 있다. / 유튜브

P320은 2014년에 처음 나온 권총이다. 외양은 2007년에 등장한 P250 권총과 유사한데, P320의 내부는 스트라이커 작동방식이라 사실은 다른 총이다. 총기는 모듈러 방식으로 총열과 하부 폴리머 프레임을 바꾸면 길이와 구경을 달리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육군의 요구에 맞춰 원래 모델에는 없던 안전장치를 장착했고, 색깔은 최근의 유행에 맞춰 코요테(짙은 갈색)로 생산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M17 권총의 정당 가격은 207불에 불과하다. 역시 가격이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M17 권총은 2018년부터 양산될 예정이다. 그래서 딱히 M17이 얼마나 훌륭한 총일지 평가하긴 어렵다. 필자도 아직 쏴보지도 못했다. 설사 몇 발 쏴본다고 그 신뢰성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권총의 세대가 바뀌어 가고 있단 점이다. 폴리머 프레임은 기본이고, 이제 모듈러 식으로 탄환구경이나 총의 크기까지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육군이 K5 권총을 채용한 것은 1989년부터이다. 당장 바꿔야 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미래의 방향성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부터 말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경비대대의 K5 권총사격 훈련장면 / 유튜브

필진 양욱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과 국방부·방사청·합참 정책자문위원을 겸하고 있으며 인텔엣지 대표이사로 역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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