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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선전하는 종이책들

beautician 2024. 5. 23. 18:28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선전하는 종이책들

Wed, May 22, 2024

 

빳짜르메라(Patjarmerah) 문예 페스티벌 (Courtesy of Patjarmerah)

 

 작년엔 70년 역사의 구눙아궁 서점(Toko Gunung Agung)이 남은 매장을 모두 폐쇄한다는 소식에 전국 도서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미 여러 유명 오프라인 서점들과 체인들이 속속 문을 닫거나 매장을 줄인 상황이어서 사라져 가는 구눙아궁 서점의 뒷모습이 마치 종이책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전조처럼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까지 암울하진 않다. 종이책 시장은 여전히 분명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다.

 

한편 독자들은 이제 전통적인 도서유통 경로를 벗어나 그 너머의 방식으로 책을 접하고 있으며 늘 서점을 사이에 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출판사와 독자들의 사이가 여느 때보다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열혈 독자 구스트라 아디야나(Gustra Adyana)는 문예축제나 도서전을 자주 방문하며 특별히 여행에 관심이 많아 여행기 작가들의 이야기를 즐겨 듣고 여행 관련 책들을 자주 사온다. 그는 ‘우붓 작가와 독자 페스티벌(UWRF)’의 인도네시아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작가를 직접 만나 책 이야기를 들을 때 더욱 큰 설득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오프라인에서 책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그 역시 주로 틱톡에서 책을 사는 편이어서 책을 사러 서점에 가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디지털 세상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모든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하고 디지털 방식으로 클릭 한 번 하는 것이 발품을 팔아 서점에 가는 것보다 훨씬 편한 방법이다. 그러나 발품 파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이 세상에 아직 넘쳐나고 있다.

 

(Courtesy of Patjarmerah)

 

서점 이상의 것

대형 서점체인 매장의 상당 부분이 문구류, 학용품, 악기 및 기타 상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전환되어 책 자체가 차지하는 공간이 많이 줄었음을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망에 크게 의존하는 출판사들은 온라인 북스토어에 적응한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유연성이 적어 팬데믹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노우라 북스(Noura Books)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디타 스까르 쯤빠까(Ditta Sekar Campaka)는 과거 최소 인쇄 부수가 3,000부였던 것이 요즘 2,000부로 줄었다고 말한다. 비용을 줄여 리스크도 함께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 달에 6~10개의 타이틀을 출판하던 것도 지금은 한 달에 최대 5개의 타이틀 출판으로 줄었다. 팬데믹 이후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예전의 황금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도서인구를 감안하면 과연 옛날에 정말 도서산업의 ‘황금시대’가 있었는지는 좀 의아한 부분이다.

 

최근 대형 서점체인의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에 벗어나 다양한 변화를 주는 것은 개별적 취향을 저격하는 방식의 현대식 프로모션 경향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체인인 반스 앤 노블스(Barnes & Noble)는 표준화된 대량의 도서들을 비치하는 대신 각 매장이 현지 특성에 맞춰 자체 컬렉션을 큐레이팅하여 친근한 동네 서점으로 성공적으로 재탄생한 케이스다. 서점 직원들은 판매원이라기보다 방문객과 책을 연결해 주는 중개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말하자면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이는 결국 아무리 도서 진열을 섬세히 디자인하고 알고리즘 마케팅을 구현한다 해도 사람이 담당하는 부분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책들은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메시지를 전파할 확고한 지지자, 방대한 리셀러 네트워크 속에서 특정 서적의 정신과 배경을 생생하게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동식 서점 문해 페스티벌 인 팟짜르메라(Patjarmerah)와 출판사 인도네시아 테라(Indonesia Tera)를 운영하는 윈디 아리스딴띠(Windy Ariestanty)는 ‘책은 생물’이라 전제하면서 접근성이란 사람도 책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책 역시 사람들에게 접근할 경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변했다.

 

(Courtesy of Patjarmerah)

 

바자회, 문학축제, 독서클럽, 작가모임은 기존 서점들과 함께 책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그 중요성이 조금도 감소하지 않았다.

 

빳짜르메라 리터러리 페스티벌을 2019년 처음 시작했을 때 내놓은 책들은 대부분 도서유통업체의 창고에서 썩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오프라인 페스티벌에서 이 책들을 접한 사람들이 보인 긍정적인 반응을 윈디는 기억했다. 빳짜르메라를 찾는 이들은 책을 사러 백화점에 갈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즉 빳짜르메라는 구매력이 적은 이들의 독서열을 충족시키는 틈새시장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제 20회째를 맞이한 발리의 UWRF는 매년 10,000명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마카사르 국제 작가 페스티벌은 13년째를 맞아 여전히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오프라인 도서행사와 문화제가 아직도 각광을 받고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한편 말레이시아 대형 도서박람회인 빅배드울프 북스(Big Bad Wolf Books)의 인도네시아 행사들은 반둥, 발릭파판 같은 도시에서 자정까지도 독자와 리셀러들로 성황을 이룬다.

 

독자와의 관계를 활성화하고 있는 도서는 비단 문학 서적뿐 아니라 아트북과 잡지, 한정판으로 출간된 자가출판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자카르타 아트북페어의 야누아르 리안토(Januar Rianto)는 2019년, 2022년, 2023년의 지난 세 번의행사를 비교해 보면 매년 매출, 방문객, 전시업체 숫자 등 측면에서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족자나 찌레본 등에서도 아트북 이벤트가 많이 열립니다. 몇 년 전에 시작했다가 중단된 다양한 진(매거진) 페스티벌도 다시 돌아왔고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Courtesy of Patjarmerah)

 

Multiple channels 다양한 채널

각각 고유의 커뮤니티를 보유한 온라인 서점들 역시 중요한 유통 채널이다.

 

팬데믹이 닥치자 그 진가를 보이며 놀라운 역할을 한 온라인 서점들은 전염병으로 모든 경제가 멈춘 상황에서 수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던 출판산업에 던져진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설립된 지 12년이 된 노우라 북스(Noura Books)를 비롯한 많은 출판사들이 점점 더 종래의 오프라인 서점 체인들 대신 도서전 같은 이벤트나 온라인 쇼핑몰, 온리안 북스토어에 의존하게 된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책의 70~80%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되었지만 팬데믹이 지나간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전체 도서 판매량을 대체로 양분해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독립 온라인 서점은 아직 경력이 일천하고 새로운 특성들이 많아 당장은 이를 관리하는 데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온라인 서점의 마진고 오프라인 서점에 비해 작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출판사로부터 30~35% 할인을 받고, 구매를 장려하기 위해 고객에게 10% 정도할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온라인 서점의 마진은 20~25%에 불과하다.

 

출판사가 내놓는 책 가격은 리셀러의 가격보다 싸지 않아야 리셀러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책을 팔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 그런데 출판사나 온라인서점이 가격을 더 낮춰 리셀러들이 활동할 공간을 없애 버리면 그것은 당장 출판사나 온라인서점의 판매량을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도서산업 생태계를 스스로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 온라인 서점들이 시장을 독점하려고 리셀러들을 말살하는 방향의 정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소매업체들이 온라인에 등장하여 출판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새로 나와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 팬픽과 비슷한 대체 유니버스 장르(alternate universe genre)입니다. 아마도 한류의 영향 같습니다. 특정 보이 밴드의 팬들이 해당 밴드 구성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트렌드입니다. "

 

디타는 트위터 스레드로 시작하여 소설책이 된, 한국 보이그룹 NCT 멤버인 나재민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부쿠네의 소설 아자민(Azzamine)을 예로 들었다.

 

아자민(Azzamine)

 

이런 책들은 선주문량이 1만권을 넘는 경우도 있다. 젊은이들이 이런 장르의 책을 읽고 있다는 반증이다.

 

디타는 최근 아동도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소리내어 책읽기’라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일찍 책을 읽기 시작하길 원합니다. 그것도 간절히요. 그런 젊은 엄마들은 자녀들을 위한 책을 사는 데에 돈을 아까지 않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100만 루피아(약 8만3,000원)가 넘는 프리미엄 동화책 패키지를 판매했는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빠르게 매진되었습니다.”

 

한편 윈디는 '에버그린’ 도서에도 집중한다. 도서 콘텐츠의 가치가 시대가 변해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 책들이다.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이완 시마뚜빵(Iwan Simatupang)의 대도시 노숙자들에 대한 이야기 ‘빨강은 빨강(Merahnya Merah)은 1968년 잠바딴(Djambatan)에서 처음 출판된 후 2020년 인도네시아 테라(Indonesia Tera)가 재인쇄했다. 윈디는 이 책의 철학적 무게가 충분히 재인쇄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점을 찾는 방문객 수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지만 사람들이 종이책을 사고 읽는 행위는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은 제목, 장르, 유통 채널 등 여러 측면에서 선택의 폭이 획기적으로 늘어났고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낼 확률도 더욱 높아졌다.

 

도서를 구매할 다양한 경로와 선택지 중에 오프라인 서점은 그 중요성과 가치로 인해 앞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https://www.thejakartapost.com/culture/2024/05/22/long-live-print-physical-books-thrive-in-the-digital-ag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