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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들을 위한 인도네시아 소개

beautician 2024. 2. 25. 13:16

 

 

보통 인도네시아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 인구가 얼마, 섬이 몇 개, 종교가 어떻고 경제와 정치와 역사가 이렇다는 식으로 설며을 시작한다. 짧으면 1-2 페이지, 길면 책 몇 권의 길이가 된다.

 

나도 인도네시아 개괄에 대한 글을 몇 번 써보았지만 늘 드라이하게 써달라, 개인 의견을 담지 말아달라, 객관적으로 써달라는 요구를 받아 거기 충실하다 보니 좀 메마른 느낌의 인도네시아 소개서가 이런 저런 책이나 서류의 앞에 달렸다.

 

좀 더 '재미있는' 인도네시아 개괄을 써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이런 글이 관건은 얼마나 알찬 내용을 얼마나 짧게 쓸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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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세계 14번 째인 190만 평방킬로미터 이상의 넓은 영토를 가졌고 인구는 약 2억7,000만 명으로 세계 네 번째 인구 대국이다.

 

하지만 인구분포의 불균형이 심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5,600만 명이 14만 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자바섬에 밀집해 있다. 전 국민의 58%가 전 국토의 7.3% 면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자바 외의 주요 섬인 수마트라는 5,800여만 명, 북부 지역을 말레이시아와 부르나이와 나누어 갖고 있는 깔리만탄(옛 보르네요)은 불과 1,000만 명, 술라웨시 섬은 2,300만 명,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지 14년 후인 1969년 비로소 인도네시아에 편입된 파푸아뉴기니 섬의 서쪽 반 파푸아엔 2,000만 명이 살아 자바섬과는 현격한 인구차이를 보였다.

 

그나마 그 전엔 이들 외곽지역 인구가 너무 적어 인구가 넘쳐나는 자바섬 주민들에게 무상 토지를 약속하며 이른바 국내이주정책(transimigrasi)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가 그렇다. 이는 국토균형개발이란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부족사회 분위기가 아직 남은 지방과 오지에 자바인들이 들어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토착민들과 이주민들 간 반목과 충돌이 수시로 벌어졌고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 하야와 함께 찾아온 전국적 혼란기에 깔리만탄에서 토착 다약족과 자바에서 건너간 마두라족이 서로의 목을 베던 유혈사태였다.

 

국내이주정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노동부 정식명칭이 ‘노동이주부’인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여러 모로 자바인 주도라는 것은 대통령들 면면에서도 볼 수 있다. 1998년 수하트로 하야 후 술라웨시 출신 유숩 하비비 부통령이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엉겁결에 대통령을 승계했던 사건을 제외하면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부터, 수하르토, 압두라흐만 와히드, 메가와티 수카르노뿌트리, 밤방 수실로 유도요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거쳐 이제 쁘라보워 수비안토로 이어지는 모든 대통령들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자바 출신이다.

 

왼쪽 위부터 수카르노, 수하르토, 하비비, 와히드만, 메가와티, 유도요노, 조코 위도도 대통령
 

이러한 인구분포의 불균형은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 정치 경제가 모두 자바섬을 중심으로 이루어게 했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다른 지역들이 소외되거나 무시되면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독립 직후인 1950년대엔 수마트라와 술라웨시에서는 주민들에게서 걷은 세금을 중앙정부로 보내지 않고 균형개발을 요구하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PRRI-뻐르메스타 반란을 일으키며 분리독립 조짐을 보이자 당시 수카르노의 자카르타 정부가 대규모 병력을 움직여 대대적인 반란진압작전을 벌인 일도 벌어졌다.

 

그 결과 오지에 들어가 석탄이나 니켈 같은 광산, 팜오일 플랜테이션을 하려는 경우 말고는 모든 비즈니스가 자바섬으로 몰렸고 수도 자카르타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어 국제적 기업들의 본사와 각국 대사관들이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 옹기종기 자리잡게 되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동깔리만탄으로 행정수도를 새로 건설하려는 계획이 2019년부터 시작되었으나 2020년 3월 코로나-19가 인도네시아에 상륙하면서 나라 자체가 멈춰설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신수도 이전 프로젝트도 사실상 2년가량 지연되어 차기 대통령이 해당 프로젝트를 승계해 진행하게 되었다. 계획대로 신수도가 동깔리만탄에 건설되어 대통령궁과 국회 등이 이전하면 수도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자카르타는 현재 극심한 교통정체와 대기오염 그리고 지반침하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호치민(옛 사이공)처럼 명실상부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경제중심으로 남을 전망이다.

 

신수도 누산타라(Nusantara) 위치

 

행정수도가 옮겨가는 깔리만탄을 적도가 관통하며 적도 선상 서깔리만탄 주도 뽄띠아낙에는 적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는 고온다습한 열대기후이고 10-11월경 우기가 시작한다. 거기에 날로 심해지는 엘니뇨 현상과 해수면 온도 상승에 의해 매년 여러 지역이 폭우로 침수되곤 한다. 건기는 4월 전후에 시작된다.

 

인도네시아는 그간 돌개바람이 불어 빨래가 날아가고 심하면 나무가 쓰러지는 일이 흔히 있었지만 태풍이나 사이클론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대기가 안정된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외곽 도서지역에서 용오름 현상이 몇 차례 발견되다가 2024년 2월에는 인구가 밀집한 서부자바 반둥-수머당 지역에 제법 강대한 토네이도가 발생해 적잖은 재산피해를 입혔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포함된 인도네시아에는 아낙 끄라카타우 화산, 머라삐 화산, 아궁 화산, 스메루 화산 같은 유명한 활화산들이 가끔 분화하고 있고 지진과 쯔나미 등 다양한 자연재해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2017년엔 발리 아궁화산 폭발로 모든 관광객들이 발리를 빠져나갈 때 한국에서도 수라바야에 전용기를 보내 한국인 관광객들을 소개한 일이 있었고 2019년엔 지금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반둥 근교 땅꾸반쁘라후 화산이 갑자기 폭발해 아수라장이 벌어지기도 했다.

 

발리 구눙아궁 화산 분화

 

많은 인구가 사는 큰 나라인 만큼 다양한 종족들이 살고 각 종족들은 대부분 자기 고유 언어를 가지고 있다. 자바섬엔 자바족이 주를 이룬 가운데 순다족, 마두라족이 함께 살고 있고 수마트라엔 바딱족, 아쩨족, 깔리만탄엔 다약족을 비롯한 여러 종족들, 술라웨시에는 부기스족과 똘라끼족, 암본과 파푸아를 아우르는 드넓은 동인도네시아 지역엔 자바족과는 외관부터 다른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계통의 원주민들이 주를 이루어 살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현재 이슬람이 전체인구의 80%를 넘는 다수이지만 15세기에 이슬람이 전래되기 전 자바와 수마트라 지역엔 7세기부터 힌두-불교 왕국들이 존재했고 13세기 마자빠힛 왕조에서 전성기를 이뤘다. 중부자바 마글랑 지역의 보로부두르 사원, 족자 인근의 쁘람바난 사원 등 유명 관광지들은 힌두-불교 왕국 시대의 유적들이다. 이슬람 술탄국들이 세워지기 시작하던 15-16세기에 마자빠힛의 유민들이 동쪽으로 밀려가 발리에 들어가 터전을 잡았다. 그 결과 발리는 오늘날 ‘신들의 섬’이라 불리며 인도네시아 힌두교의 본산이 되어 있다.

 

먼저 와 있던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VOC)를 앞세워 인도네시아를 야금야금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17세기 초의 일로, 유럽인들이 ‘동인도’라 부르던 인도네시아의 모든 왕국들이 네덜란드에게 먹혔다. 하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네덜란드와 싸웠고 급기야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1949년 기간의 독립전쟁을 거치며 마침내 주권을 되찾았다.

 

이후 각지에서 벌어진 수많은 반란을 진압한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2년 아직도 네덜란드가 쥐고 있던 서파푸아를 침공했고 1964년에는 깔리만탄 북쪽 사라왁 지역을 말레이시아로 합병하려던 영연방군과 정글에서 국지전을 벌이다가 공산당이 주축이 된 1965년 10월 1일 새벽에 벌어진 이른바 9.30 쿠데타를 기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해 1967년 결국 실각한다. 그렇게 23년을 통치한 수카르노의 뒤를 이어 제2대 대통령이 된 수하르토가 32년간 철권통치를 하다가 1998년 민주화운동으로 퇴진하면서 마침내 인도네시아에도 개혁시대가 찾아왔다.

 

그 사이 파푸아는 1969년 인도네시아에 공식 합병되었고 1975년 인도네시아에게 침공당해 강제 합병당한 동티모르는 하비비 대통령 시절인 1999년에 이르러 25년만에 마침내 독립해 UN 신탁통치를 거친 후 ‘띠모르 레스테’로 거듭났다. 1999년 당시 한국 상록수 부대도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참여해 동티모르에는 주둔했었다.

 

외교적으로는 모하마드 하타 초대 부통령이 세운 자국 중심의 외교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며 동서 진영 사이에서 줄곧 실리외교를 벌여왔다. 지금도 중국 돈으로 고속철을 지으면서 미국과 남중국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인도네시아 공군은 미국 F-35 전투기를 구매계약 하고서도 아직 소련제 수호이 군용기를 운용하고 있는 점에서 그러한 외교기조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공군이 2013년 러시아에서 구매한 수호이 Su-27 전투기

 

인도네시아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1998년 외환위기와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매년 최소 5% 이상의 경제성장을 보였고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23년부터 동남아시아 최초로 OECD 회원국 가입을 노리면서 2045년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