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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코미디 영화 <조금 달라 (Agak Laen)> 본문
<조금 달라 (Agak Laen)> 후기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러니 당연하게도 손님이 한 명도 들지 않는 망해가는 ‘귀신의 집’을 정말 무섭게 개조해 떼돈을 버는 영화 <조금 달라(Agak Laen)>는 제목부터 번역이 만만치 않다.
‘Agak Laen’은 조금 다르다는 뜻인 ‘Agak Lain’을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것.
그런데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개조공사를 하기 전과 후의 귀신의 집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인지(사실 영화에선 대단한 차이를 보였지만), 사고를 치고 교도소를 다녀온 후에도 사람들이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것인지… 나중에 이 영화를 본 인도네시아를 붙잡고 물어봐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전에 리뷰했던 <아주 달콤한 작전(Ngeri-Ngeri Sedap)>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정말 이런 뜻이었을까? 이 영화는 배우나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 면면에서 <아주 달콤한 작전>과 많이 비교된다.
일단 <조금 달라>의 제작자 디파 안디카(Dipa Andika)가 <아주 달콤한 작전>도 제작했다. 이번엔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대표적인 화교 감독인 어니스트 쁘라까사(Ernest Prakasa)도 함께 제작에 참여한 것이 조금 달라진 부분이다.
감독인 1983년생 무핫클리 아초(Muhadkly Acho)는 2023년 <코끼리 엄마(Induk Gajah)>로 데뷔한 신인 감독이지만 배우로는 2014년 데뷔해 <아주 달콤한 작전>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단역 배우가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까지 맡았으니 이건 ‘많이 발전한 부분’이다. 인적 구성이 <아주 달콤한 작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당시의 단역 배우에게 메가폰을 맡기는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분위기와 심리를 잘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무핫클리 감독이 사실은 영화인이라면 다 알만한 재주꾼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아주 달콤한 작전>의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하며 북치고 장구쳤던 베네 디온 라자국국은 <조금 달라>에서는 네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베네로 출연해 싱크로율 높은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였다. 잘 보면 인도네시아 영화감독들은 다 재주꾼들이다. 다들 배역을 맡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시나리오 작가를 겸한다.
<아주 달콤한 작전>의 큰 아들 뿌르바 역의 보리스 보키르(Boris Bokir)와 막내 아들 세핫 역의 안드라 제걸(Indra Jegel)도 <조금 달라>에서 각각 자기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그러니 ‘<아주 달콤한 작전> 제작진이 다시 모여 만든 영화’라는 타이틀이 붙는 게 자연스럽다.
주인공들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오키 렝가 위나타(Oki Rengga Winata)는 이들 중 연기경력이 가장 일천한 편에 속한다. 1990년생인 그는 메단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들어섰고 2019년 <와르꼽 DKI 리본 (Warkop DKI Reborn 3)>란 유명한 프랜차이즈 영화에 단역으로 데뷔했는데 심한 여드름 자국이 남은 얼굴로 네 번째 출연 영화에서 당당히 주연을 꿰어 찬 것이다. 물론 그가 이 영화에서 베네 디온 라자국국과 함께 코프로듀서로 참여해 나름 강한 발언권과 지분을 누렸기 때문일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키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고 영화는 재미있었다.
흥행 돌풍
귀신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호러보다는 코미디 드라마로 분류될 이 영화는 2024년 2월 1일 개봉해 10일 만에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들어 코미디 영화의 약진은 사뭇 의외의 일이어서 2월 12일(월) 끌라빠가딩 모이(MOI)의 플릭스 영화관에서 티켓을 끊었다.
300만 관객이면 2016년 68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당시 기준 역대 최대 흥행을 한 <와르꼽 DKI 리본: 귀뚜라미 보스 1부(Warkop DKI Reborn: Jangkrik Boss! Part 1)> 이후 가장 크게 흥행한 코미디 영화인 셈이다. 하지만 개봉 초창기이고 입소문이 막 퍼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최소한 600만까지는 쉽게 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굳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것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유머 코드가 궁금해서였는데 나도 현웃 터트린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관객들 상당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웃음소리를 내고 있어 이 영화가 최소한 로컬 관객들 취향을 잘 파악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단, 아쉬운 점은 자막이 전혀 달려 있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표준 인도네시아어를 썼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영화 속 대화를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영화 속 오키는 어린 시절 나쁜 짓을 하다가 교도소에 다녀온 후 개과천선해 병든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일하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상설 야간 축제장이 설치된 곳에서 일거리를 찾다가 망해가는 귀신의 집까지 흘러 들게 된다.
이미 오랫동안 귀신의 집을 운영하고 있던 세 친구들은 계획도 없고 요령도 없어 파리를 날리고 장소 임대료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중 라자국국이 분한 베네는 아름다운 여친과 결혼을 준비하지만 하객 1,000명이 드는 예식장과 음식을 감당하기 위해 적잖은 돈을 마련해야만 한다. 제걸은 도박 빚을 져 모스크까지 찾아온 해결사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빨리 빚 갚을 돈을 구하지 못하면 패가망신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한편 보리스는 군인이 되라는 어머니 말을 듣고 지원했다가 시험에 떨어지지만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꽤 계급이 높은 군인인 된 척하며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도 군에 들어가기 위해 사기꾼 냄새를 풍풍 풍기는 군입대 브로커에게 적잖은 금품 제공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렇게 주인공 넷 모두 나름대로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등장인물 설정이 꽤 입체적이니 개연성이 생겨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 친구는 돈이 벌리지 않는 귀신의 집에 오키까지 받아들이길 꺼리지만 오키가 집문서를 맡겨 돈을 마련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면서 귀신의 집을 개조해 꽤 스산하고 무시무시한 구조와 레파토리를 완성한다. 하지만 불륜녀와 축제장에서 비밀 데이트를 즐기던 국회의원 후보가 야간 축제장까지 찾아온 본처를 피해 귀신의 집에 들어왔다가 주인공들이 분한 귀신들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으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다들 당장 돈이 필요한 마당에 이 사건으로 귀신의 집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이 사건이 드러나면 결백을 주장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한 이들이 귀신의 집 안에 의원후보를 암매장하는데 그때부터 정말 귀신이 출몰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귀신의 집은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야간 축제장의 인정많은 관리인 종키로 줄연한 아리 끄리띵과 의원 후보의 불륜녀 인딴으로 분한 인다 뻐르마타사리는 부부 사이다. 영화 속에서 아리는 귀신의 집에 임대료를 독촉하며 월말까지 완납하지 못하면 다른 팀을 입주시키겠다고 겁박하고 인다는 주인공들이 자신의 불륜남을 암매장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협박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남 술라웨시 주도 끈다리 출신이지만 그의 외모에서 암본 말루꾸 혈통임이 역력한 아리는 대체로 험악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는 공정하고 인정많은 관리인을 연기했다.
사건의 증인들이 나오고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는 가운데 귀신의 집에 묻힌 사체와 각자가 처한 문제들 사이에서 주인공들이 서로 부딪히고 협력하며 각종 소동이 벌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판과 복선
호러와 코미디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인도네시아 영화계에서도 수없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뽀쫑소재는 온갖 코미디에 동원되다가 지난 코로나 팬데믹 시절 마을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또는 렘봉에서 반둥 넘어가는 길목에서 차량들을 붙잡고 구걸하는 길바닥 프리랜서로 현실 세계에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헝클어진 머리를 풀어 해치고 묘지를 맴돌던 꾼띨아낙들도 그 사이 샴푸 광고에 출현해 개런티를 벌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귀신들에게 코미디를 시키려 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원혼이 복수를 하는 내용이라면 당연히 귀신을 부각해야 하지만 사람들이 중심이 된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한 귀신을 철저히 소품으로 이용하고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감독은 귀신 이야기보다 현실 속 소시민들의 애환을 웃기는 코미디 속에 구현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찌찔함의 끝판왕을 보여준 인드라 제걸과 라자국국의 연기가 특히 빛났다.
이 영화 속에는 현실 정치와 실제 사회문제들이 신호등도 켜지 않고 불쑥 들어오는 대목들이 나오는데 예를 들면 ‘루훗은 대통령보다 힘이 세서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 영화 속 경찰관이 사라진 국회의원 후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실종자라고만 언급하자 귀신의 집 매표원이 최근 몇 년 사이 최악의 부패범죄를 저지르고 잠적한 후 부패척결위원회와 경찰 등 사정기관, 법집행기관들이 검거하지 못한 유명 부패범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되묻는 부분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군입대를 희망하는 보리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브로커를 몇 차례 다른 장면에서 보여주면서 한국에선 가능하면 빼보려는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적잖은 뒷돈을 찔러줘야 하는 인도네시아 군입대의 실상을 꼬집었다. 대놓고 사회문제를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에서 쾌감을 느낀 관객들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시나리오가 나름 잘 짜였다고 느낀 것은 이야기 초반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던져놓는 복선들, 예를 들어 의원후보 부인이 신고를 하던 경찰서가 이사하는 중이라 번잡하다는, 지나가는 듯한 이야기, 네 명이 모였을 때 어디선가 나는 고양이 똥 냄새, 오키가 마침내 마련한 아버지 무덤 옆 어머니 묫자리 같은 떡밥들이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착착 회수되기 때문이다.
트렌드란 늘 변하는 법
물론 그 동안 인도네시아에 내로라 할 코미디 영화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의 멍청한 상사(My Stupid Boss)> 1, 2편이 각각 2016년과 2019년에 나와 흥행 상위에 올랐고 2022년 흥행순위 3위의 <7번방의 선물> 리메이크, <불완전(Imperfect)>(2019) 등이 있었지만 2016년 <와르꼽 DKI 리본> 1편이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 2017~2023년 기간의 7년간 코미디 장르는 흥행 수위에 오르지 못했고 흥행순위 상위 15편에 포함된 숫자도 호러와 드라마에 비할 바 되지 못했다.
이번에 <조금 달라>가 2024년 첫 3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되면서 어쩌면 이제 인도네시아 영화기조가 코미디로 돌아서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관객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호러영화에 열광하고 2022년 천만 관객을 찍은 호러 영화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의 공식 후속작 <무용수마을의 바다라우히(Badarawuhi di Desa Penari)>가 조만간 개봉을 앞두고 있어 어쩌면 올해 흥행 수위는 <조금 달라>와 <무용수마을~>이 각축하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후자의 트레일러는 약간 별로였지만.
그러고 보니 귀신의 집 매표원을 연기한 조연 티사 비아니(Tissa Biani)는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에 출연한 주인공 여학생 삼인방 중 한 명 출신이다.
티사 비아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시가렛 걸>에서도 비중이 작은 증야의 동생 역을 맡았는데 크게 성공한 영화의 주연 출신이 왜 군에 잘 띄지 않는 조연 역을 전전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2024. 2. 13.
P.S. 다음은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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