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베트남

호치민 시립박물관

beautician 2015. 5. 23. 21:18


호치민시립박물관 오랜만에 다시 방문했습니다.

중국과 황사군도 영유권 분쟁을 빚는 중이고 최근 충돌도 있었던 여파가 박물관에도 미쳐 황사군도 관련 특별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더군요.



박물관 외부 담벼락에 '황사군도와 청사군도는 베트남의 섬들이다'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결혼전 야외사진을 찍으러 온 커플들이 셋쯤 있었는데 이 친구들때문에 제대로 지나갈 수 없어 다른 문으로 돌아가길 몇번 했습니다.











유독 날이 더웠는데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전시관에서 두 사람이 전시관 한복판 바닥에 시원하게 앉고 누워 있었습니다. 웬만한 다른 나라, 다른 전시관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죠.









민속. 경극복장을 보면 베트남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 분명합니다.







화폐전시관은 작년에 처음 이 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호치민주석의 초상이 모든 베트남 화폐에 들어가 있지만 예전엔 역사속 옛 영웅들도 화폐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응우웬 후에 장군도 보이고 쩐흥다오 장군도 보입니다.



이건 언제적 화페일까요? 프랑스식민지 시절? 그런데 센트?









그리고 근대사 부분엔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벌였던 월남전이 호치민시립박물관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박물관에 나치 메달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좀 의외였습니다.











1075년 4월 30일 북베트남 탱크가 대통령궁을 밀고 들어오면서 남베트남은 멸망하고 베트남은 하나의 나라도 통일됩니다. 그래서 4월 30일은 이 나라의 큰 명절이 되었습니다.






월남전 당시 남베트남 정부에 항거하며 분신한 승려 틱꽝득의 사례는 유명합니다. 그는 몸이 타들어가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가부좌를 풀지않고 잠잠히 선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노란 자켓에 자수된 Hoa Binh은 화평, Tu Do는 자유라는 뜻입니다.


호치민시 북부 구찌(Cu Chi) 지역엔 이런 땅굴들이 건설되어 베트콩 게릴라들이 미군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조악한 무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요? 죽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요?


북베트남에서부터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중부 전선까지, 그리고 베트남 남부까지 늘어진 긴 병참선인 호치민루트에선 트럭이나 기차들보다 이런 자전거부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따발총이죠.




응우웬반트라는 애티를 벗지 못한 청년(처녀?)는 북부지역 전투를 지휘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황사군도 특별전시관이었습니다.

황사군도의 현재와, 중국군과의 충돌했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옛날 동서양의 지도들이 대거 등장하며 황사군도가 베트남의 영토였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일본과 독도영유권으로 마찰을 빚는 한국사람들로서는 충분히 이해가는 상황입니다.



박물관 2층에서 바라본 호치민시내.



복도에 설치된 이 카누도 병참라인을 이루는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고 써 있더군요.

박물관을 모두 돌아볼 때까지도 세쌍의 커플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높이가 2.5미터는 되는 화장실 문. 좀 괴기스러웠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는 마치 대저책의 그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결혼촬영을 하는 이유가 충분히 미루어 짐작되는 부분이죠.

호치민광장 전경, 이건 예전의 모습이고 최근 대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단장이 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길 건너에서.




2015.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