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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별걸 다] 영혼의 비밀

beautician 2017. 3. 25. 10:00





난 '영혼체백'이라는 개념체계에 선조들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뒤에서부터 말하자면 

'백'이란 '혼백'할 때의 그 백인데 나의 흔적이죠. 나의 유령.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없고 그 존재를 지속할 능력도 없지만 수맥이 흐르고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한 스러져 없어질 때까지 본체였던 내가 했던 행동과 감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나의 귀신. 그게 백입니다.


'체'는 두 말 할 바 없는 것이죠. 내가  가진 몸. 죽고 나면 스러져 없어지는 것. 

그러나 나를 움직이고 그래서 젊은 시절엔 마치 그게 나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이 신체가, 그리고 죽고 나면 시체가 되어 '백'과 같은 나의 흔적이 되고 마는 것이 '체'입니다.


그래서 '백'과 '체'는 나를 이루는 가장 낮은 단계의 저급한 자아라고 선조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혼체백'이란 말에서 가장 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죠. 백은 체보다도 뒤입니다.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 하는 건 웃기고 자빠진 얘기란 뜻이죠.


이제 남은 것은 영과 혼이죠. 흔히 영혼이라 하죠.

그러나 선조들은 이것도 각각 별도의 개념으로 생각했습니다.


'혼'이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가동되는 프로그램과도 같습니다. 컴퓨터의 윈도우스같은 가동체계이며 그것을 형성하는 각종 응용프로그램들과 소스코드들인 것이죠. '혼'이 없는 나는 하루 종일 먼산을 쳐다보며 멍때린 상태로 일생을 보내는 '빈집'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바로 그 혼이 우리들의 두뇌를 작동시키고 의지와 목표를 만들고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인성을 형성하고 그래서 악인이 되기도, 성현이 되기도 하는 갈림길로 우리를 몰아가는 '가장 나에 근접한 존재, 또는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겠죠. 이 혼은 나중에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가 믿는 종교에 따라 천국에 가기도 하고 연옥을 헤매다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어딘가 매우 가련하기도 하고,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의 '자아'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럼 '영'은 무엇일까요?

성서에 따르자면 우리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짓자고 하던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인간의 콧구멍에 불어넣은 '신의 숨결'이 바로 '영'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한다면 신의 숨결을 가진 인간들이 어떤 이들은 강호순, 유영철 같은 살인마들이 되고 또 어떤 이들은 히틀러, 뭇솔리니 같은 파시스트 전쟁광들이 되어 사람들의 인생을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 그 '신의 숨결'이란 반드시 '선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신이 반드시 선한 존재만은 아니기도 하고요. 성서를 읽으면서 신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셨나요? 절대적, 광적인 종교관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바라본다면 신이란 '자기 꼴리는 대로 규정하고 결정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암만 봐도 결코 그래서만은 아닌 것 같은 대단히 비인간적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인간적이고 우리 이치에 딱딱 들어맞으면 그게 인간이지 신일 수 없는 거죠.


그러니 신이 불어넣은 그 '영'이란 무엇이라 추정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이름표와 같은 것입니다. 그 이름표가 우리의 선함과 악함을 가르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지도상의 좌표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 되리라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USB용 플래시디스크를 살 때 딸려오는 제품정보와도 같습니다. 그 제품정보에 따라 우리가 거기 저장하는 파일들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죠.


그 '영'이란 것은 창조주가, 그게 아니라면 우주의 어떤 섭리가 우리에게 배정한 이름표이자, 좌표이자, 제품정보인데, 난 그것이 우주의 비밀을 담은 마이크로칩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린 사실 광활하다 할만큼 거대한 신의 도서관의 한 구석에 꽂여 있는 작은 책자에 붙은 색인같은 존재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계의 창조주는. 아니 꼭 신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이 우주의 '섭리'가,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그리고 사실은 동물들과 식물들, 그 모든 생명체들에게, 그뿐 아니라 은하계 저 너머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형태와 존재체계를 가진 수많은 외계생명체들에게 우주의 비밀을 '영'이라는 단위로 잘게 나누어 각각 보관해 두었다고 보는 것이죠. 데이타가 한 큐에 날라가 버릴까 우려했던 것일까요? 창조주께서...?

그래서 우리가 죽고 나면 '혼'은 연옥을 방황하다가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버리고 '체'는 화장터에서 재가 되거나 이땅에서 다향한 방식으로 소멸해 버리고, '백'은 자신의 장례식날 '살'이 되어 벼락처럼 누군가를 살기등등 맞춰 쓰러뜨리고 사라지거나 우리가 머물던 곳 변두리에서 유령이 되어 오래도록 어슬렁거리며 서서히 스러져가지만 '영'은 자신이 왔던 그 원래의 자리로. 비록 그곳이 인간의 시간으로는 수천만 광년이 떨어져 있는 곳일지라도 우리의 죽음과 동시와 순식간에 돌아가 또 다른 생명체의 이름표이자 좌표이자 제품정보로서 주어지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상당히 수정된 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선조들이 생각했던 '영혼체백'의 존재체계인 것이고 그것은 모든 기독교와 이슬람의 천당, 지옥설과 불교의 윤회설 등은 물론 현존하는 천체물리학과 고등수학들이 풀지못하는 답변들을  단번에 충족시키고 해결해 버리는 사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연 정말 나일까요?
나의 어떤 부분이 진정한 나일까요?
나라는 존재는 죽으면 없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경로와 시스템과 섭리를 통해 영속하는 존재인 것일까요?

내 생각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2014.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