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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내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만

beautician 2022. 10. 6. 09:08

진정한 자유

 

 

꼭 어머니 상을 치러서가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느냐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너무나 일반적인 화두이긴 하지만, ‘웰다잉(Well dying)’이란 전쟁과 질병, 사회적 부조리에 시달리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험한 인생을 살다가 주어진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단명하던 이전 세대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주제입니다.

 

하지만 이젠 자의 또는 타의로 경제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후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아 자신의 예금을 모두 소진하고 결국 자녀들이나 친지에게 부양받아야 하는 짐이 되거나 이웃, 또는 정부의 도움이나 아량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작금의 상황은 우리의 노년과 죽음이 예전과 같아서는 안된다고 강변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며 그래서 저항과 시위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 비도덕적 비인륜적이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정말 이상한 세상입니다.

 

삶과 죽음은 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인데 삶은 자유로워도 죽음은 네 맘대로 해선 안된다는 규칙은 사뭇 이율배반적입니다. 우리의 우리 죽음의 방법과 시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일 텐데 말이죠.

 

삶을 사는 형태와 방법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숫자 만큼이나 다양한데 어째서 그들이 죽는 방법만은 병사나 사고사 또는 전사하거나 피살당하는 등 달랑 몇 가지만 허용되는 걸까요? 그걸 그리 정한 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오만하길래 죽고 나면 이 세상의 굴레를 모두 벗어버릴 인생들에게 그 마지막 순간까지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넌 노년에 병상에서 생명유지장치에 매달려 연명하다가 모두에게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선사한 후에 죽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걸까요?

 

장례가 부모 친지 이웃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는 과정인 것처럼 죽음의 방식이 어떠해야 한다고 인간의 법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겉치레이자 규정해서는 안되는 것,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규정하려는 고집과 오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걸 내가 결정하지 못했다고 죽는 것조차 스스로 결정하면 안되는 건가요? 그건 병신 같은 사고방식 아닌가요?

 

모름지기 우린 이제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할 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영향과 파국, 그 처리과정에 발생하는 법적 문제와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시점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죽음에 임해야 한다고요.

 

물론 이러한 죽음음 세상에 등떠밀려 생을 마감하는 자살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법적 제도적 보완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나이 80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볕도 좋고 바람도 시원한 아침, 늘 한 응쿰씩 먹던 약에 손도 대지 않고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 입은 후 그간 오래동안 마음 먹었던 일을 하기 위해 일어섭니다. 국립복지의료장의센터에 가는 겁니다.

 

난 군 의무복무를 마쳤으므로 내가 죽으면 내 시신의 화장과 납골당은 국가가 책임집니다. 그리고 내가 아직 3등급 이상의 건강을 유지한 80대라면 자발적으로 조기에 생을 마감할 경우 장기기증을 전제로 고통없는 안락사와 일정 수준의 장례절차와 비용을 국가가 책임집니다. 난 오늘 아침 침실에서 눈을 뜨며 세상을 떠나기 가장 좋은 날임을 예감한 겁니다.

 

센터에 도착하니 친절한 프론트 직원이 상담사를 연결해 줍니다. 석 달 전에도 만났던 그 상담사입니다. 그땐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좀 더 살아보겠다고요. 상담사의 역할은 센터에 찾아온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북돋아주는 겁니다. 그들은 절대 안락사를 유도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그것이 안락사에 이르기 전 마지막 단계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모든 마음의 준비를 마쳤고 그걸 여러 차례 확인한 상담사는 이제 더 이상 만류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센터에 입소해 필요한 준비를 합니다. 죽기 위한 마음의 준비, 즉 종교적 의례나 유언장을 쓰거나 하는 일들을 모두 마치고 죽음을 맞을 시간을 결정합니다. 그럼 자연적으로 장기기증을 위한 수술일정이 잡히죠. 그것은 센터 시설과 국가 장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센터에서 내 유족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임종을 지킬 사람들, 상주가 될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이죠. 물론 난 자녀들에게 내 계획을 이미 오래 전 알려둔 상태입니다. 모든 죽음은 항상 황망하겠지만 내 계획을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내 자녀들은 나와 거의 같은 정도로 내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터입니다.

 

그렇게 난 정해진 시간에 국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 길을 걷고 내가 남긴 각막 등 장기로 여러 사람들이 새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상조비, 장례식장비, 묘지비용, 사망신고 등으로 유족들을 괴롭히던 모든 비용과 관련 절차들을 국가가 준비한 센터 전문인력들이 무상으로 처리해줍니다.

 

그를 위한 조건이란 센터를 통한 합법적인 장기기증과 안락사 신청뿐입니다. 센터를 통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개인이 장례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군복무를 마친 이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화장과 묘지/납골당을 국가가 부담합니다.

 

이외에도 국민들 모두는 '국위선양점수'라는 것이 있어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한 사람들은 국가가 장례를 책임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 금메달을 따거나 대통령을 역임하면 장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국위선양점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죠.

 

난 그 국위선양점수가 충분치 않아 센터를 이용한 것이고요.

80세가 넘은 국민들은 누구나 센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80세 미만이라도 특정조건을 충족한다면 센터 서비스 대상이 됩니다. 일반 자살은 센터가 취급하지 않습니다. 센터는 가장 합법적으로 스스로 생명을 마감하는 곳이며 장기기증, 때로는 재산사회환원 등을 전제로 장례와 매장까지 모든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는 곳입니다.

 

최소한 난 치매에 걸려 내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나 자신을 망각한 상태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난 생명유지장치에 매달려 삶을 의미없이 연장하면서 나와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년의 어느날 요양원에 들어가 낯선 사람들의 손에 관리를 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난, 내 죽음이 누구에게도 피해나 고통을 주지 않는 깔끔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내 죽음이, 내 시신을 위한 장례가 내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 죽음이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린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시점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22.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