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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계+인 1부> 리뷰

beautician 2022. 9. 22. 09:59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간 <외계+인 1부>

<외계+인 1부>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 영화가 왜 그렇게나 혹평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면 기본적으로 영화를 좀 안다고 말하는 평론가들의 꼰대력과 고집, 익숙한 것에 취해 새로운 것들을 부족하고 미련한 것으로 치부하는 게으름, 그리고 실제로 등장하는 몇몇 부자연스럽고 생경한 장면을 가지고 전체를 재단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잘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설정은 전혀 나쁘지 않다.

물론 그게  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하기 짝이 없는 설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쨋든 충분히 재미있는 전개를 끌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엔 분명하다. 

 

그 설정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1. 외계인들은 오래 전부터 죄수들을 인간의 뇌 속에 감금해 왔다.

2. 그런데 가끔 탈옥하는 놈들이 나온다. 하지만 지구의 대기는 외계인이 5분이상 본체 상태로 머무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3. 그렇게 감옥으로 사용되어 사실상 기생당하는 인간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일상을 살며 숙주가 죽으면 외계인 죄수도 죽는다.

4. 그 외계인이 각성하면 원래 숙주의 몸에서 나와 다른 숙주로 옮겨갈 수 있지만 그 경우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이 부분이 조금 무리. 이전 숙주의 뇌에 예전의 기억을 모두 이전한 게 아니라면 원래 외계인으로서의 기억은 보존해야 하는데 숙주를 옮기는 것으로 예전 기억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봉인된다는 설정)

5. 시간은 동시에 존재한다. 물론 이 설정은 1부의 내용만 보아서는 서로 다른 시대 사이에서 점프 또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계인 죄수 호송선이 현대에만 도착하는 것을 보면 외계인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싱크로 되어 있고 외계인이 곧바로 지구의 과거나 미래에 죄수를 보내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다.

6. 도술은 실제로 존재한다.

대략 이 정도의 설정이다. 

물론 좀 더 세련되게, 좀 더 복선을 깔고 좀 더 개연성 있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거란 비판 또는 비평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맨땅에서 머리를 짜내 이 정도의 설정을 구축해내는 건 그 위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비평가들에 비해 훨씬 큰 창의력과 노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일반적 영화평론가는 누구든 될 수 있지만 비판적 영화평론가가 되는 것은 최소한 500만 명이라도 동원한 영화를 한 번이라도 만들어본 감독들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여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했어야 성공했을 거라 말하는 건 평생 일반인들의 일상을 경험해 보짇 못한 판사나 목사가 사람들의 유뮤죄를 판단하고 인생 사는 법을 가르치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디 그것 뿐이랴. 모 대통령 후보에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준비해 주겠다며 정치고수를 자처했던 젊은 당대표가 정작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비딘주머니는 커녕 헝겁쌈지 하나 없이 좌충우돌하며 몰래 녹취한 대화나 풀고 자극적인 도발만 하는 걸 봐도 그렇다.

 

비판적 정치평론을 하거나 정치비젼을 제시하려 한다면 자신 스스로 성공적 정치가였던 적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성공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운동종목 코치나 감독이 되어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얘기가 좀 옆으로 갔다.
어쨋든 앞서 언급한 저런 설정들은 잘만 쓰면 꽤 유용하다. 외계인 대기를 응축해 가져온 '하바'라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다.

또 다른 것들은 콤비 또는 사이드킥들의 존재다. 예를 들어 도사 류준열에겐 두 마리 그림 속 고양이 신수들이 따라붙고 외계인 죄수 관리인 김우빈에겐 인공지능 사이드킥이 있다. 염정아와 조우진이 분한 인왕산 신선 두 명의 감초같은 코믹한 연기도 영화에 감칠맛을 더한다. 

 

하지만 조금 더 입체적이었으면 좋을 뻔 했다. 고양이 신수들이 왜 그림 속에 들어앉게 되었는지, 인공지능 사이드킥은 어떤 존재인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한편 인왕산 신선 쪽의 백그라운드는 사뭇 재미있고 입체적이다.

 

이외에도 이 영화 속에는 감독과 작가의 수많은 아이디어가 투하되어 있다.

그게 생경해서 이상하거나 서툴러 보일 수는 있지만 절망적이지 않으며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참신하다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평론가의 태도일 텐데 오늘날의 평론가들은 너무 빡빡한 것이, 아마도 그 흔하디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2022.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