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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6만 루피아(약 5천원)의 행복

beautician 2022. 8. 6. 11:37

 

7월 셋째 주는 마르셀, 차차와 두 번씩 데이트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차차와 중학교에 들어가는 마르셀의 방학 마지막 주였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코로나가 잦아들면서(사실 재확산이 일어나 방역이 다시 강화되는 분위기이지만) 교육부가 전국 학교에 새 학기엔 오프라인 수업을 명령했기 때문에 차차와 마르셀도 2년 반 만에 정상 등교를 하게 됩니다.

 

나도 그간 걸려 있던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 이 친구들이랑 놀아주지 못했지만 마침 7월 10일부터 조금 여유가 생겨 마지막 주에 한 명씩 데리고 나가 그간 하고 싶어했던 일들을 함께 했습니다. 마르셀은 두 번 다 부페에 가고 싶다고 해서 한국식당에 데리고 가 부페에 간 것 이상으로 배불리 먹여 주었고 좀 더 미묘하고 섬세한 차차는 첫날은 JGC 이온몰에 가서 생선 중심으로 집에서 먹을 음식재료들을 사주면서 점심식사, 두 번째는 끌라빠가딩 몰에 가서 개학을 앞두고 필요한 스테이셔너리와 두 권의 책을 사주고 Boost 키오스크에서 All Berry Bang 음료를 함께 마셨습니다. 

 

차차는 내가 힘들 거라며 자길 어디 데려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자기랑 함께 다니는 시간이 내게 가장 즐겁고 힘나는 시간이라는 걸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친구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가지 못하고 그렇게 매번 교대로 한 명씩 데려가는 이유는 띠띠 아줌마라 부르는 아이들 할머니가 집에 있기 때문엡니다. 2014년 거의 죽어가던 사람을 메이가 집에 데려와 2년 가까이 돌보며 간신히 살려놨는데 (그 바람에 메이가 일에 전념하지 못해 내가 베트남 가면서 맡겨 놓았던 미용사업이 2015년 완전히 죽어 버렸음) 그 후 몇년간  폭력남편과 천방지축 손주들이 있는 센띠옹 까위까위의 본가에 돌아가 지내다가 병이 다시 도저 메이 집에 온지 반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엔 거동할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이젠 한 달에 한 번 비싼 주사를 맞으면 조금 걸어다닐 수 있는 상태가 된 모양입니다.

 

건강이 굉장히 호전되어 이젠 차차와 마르셀에게 밥을 해줄 정도 되었습니다. 예전 라삐필름 영화판을 쫒아 다니며 현장직원들을 위한 이동식 식당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띠띠 아줌마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어서 한때 케이터링 사업을 함께 할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라삐필름이라면 조코 안와르 감독의 2017년 작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으로 유명한 호러영화 전문 영화제작사입니다. 

 

띠띠 아줌마는 힘든 삶을 살아오며 폭삭 늙어 지금은 완전 호호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보다 한 두 살 어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2남 3녀 중 두 아들을, 장남은 자싱아 산속의 한 광산에서, 막내 아들은 교도소에서 걸린 급성 신부전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친동생을 심장마비로 먼저 보낸 띠띠 아줌마는 올해 초엔 친엄마도 장사지내야 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진 상태에서 메이가 다시 집으로 데려온 겁니다.

 

마침 지난 몇 년동안 홍수가 나는 집들을 전전하다가 2년 전 현재의 집으로 옮겨주었는데 홍수가 나도 물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고 집도 전에 집들에 비해 괜찮은 곳이어서 아이들을 위해서나 띠띠 아줌마를 위해서나 꽤 쾌적한 곳입니다.

 

메이에겐 띠띠 아줌마를 센티옹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계속 함께 지내라 했습니다.그곳에 돌아가면 메이가 어린 시절 메일 메이 자매들과 띠띠 아줌마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 다당 할배가 아직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고 메이 동생 리스티의 아들과 딸은 그런 환경에서 험하게 자랐는데 거기서 부대끼다 보면 다시 건강이 악화될 것은 너무 뻔한 일입니다. 그 집이 있는 까위까위의 그 골목에서 2020-2021년 사이 수십 명이 코로나에 걸려 실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리스티의 아이들은 차차와 마르셀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천방지축에 안하무인, 당연히 띠띠 아줌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모양이죠. 

 

특히 리스티의 큰 애 빌라가 사고를 많이 치는데 다당 할배 눈 밖에도 나서 다당이 정글도를 들고 쳐 죽이겠다고 빌라를 쫒아다니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고 합니다. 띠띠 아줌마는 그 상황에 매번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고요.

 

난 그게 100% 믿겨집니다. 옛날 마르셀이 태어나기 전, 차차가 아직 세 살 쯤일 때 출근해야 하는 메이가 어쩔 수 없이 차차를 까위까위 집에 맞길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차차도 다당 할배의 폭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뜨거운 커피물을 뿌리고 한번은 자전거를 차차에게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차차 머리에 난 상처를 보고 내가 직접 나서 다당 할배를 만났죠. 그 골목에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은 외국인이 들어오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바라보는 가운데 그 집에 들어가 다당할배 귀에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한 번만 더 저 애를 건들면 당시 다리를 부러뜨려 놓겠소."

 

그말에 정말 겁을 먹었던 것인지, 차차는 물론, 이후 태어난 마르셀이 다당 할배 손에 다치는 일은 두번 다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착한 차차와 마르셀은 그간 띠띠 아줌마 곁을 줄곧 지켜 왔습니다. 그래서 예전엔 내가 두 아이를 한꺼번에 데리고 나가 쇼핑을 하거나 식사를 했는데 이젠 한 명은 띠띠 아줌마를 지켜야 하니 내가 한 명씩 데려나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하면 띠띠 아줌마는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혼자 지내야 하는데 이젠 그런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녁 7시-9시 사이에 또 뻥아지안(Pengajian)에서 알꾸란을 배워야 해서 또 함께 나가야 합니다. 아이들도, 띠띠 아줌마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야만 할 시기입니다.

 

아직도 거동이 완전히 자유로운 게 아니어서 내가 띠띠 아줌마를 함께 데리고 나갈 수는 없지만 메이는 꽤 노력을 합니다. 특히 회사에서 업무용 차를 내준 상태여서 상황이 허락하면 주말에 함께 다니기도 하고 지난 르바란에는 발리까지 다녀왔습니다. 메이의 노력은 사뭇 눈물겹습니다.

 

전부터 메이가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도록 비용을 대주거나 쿠폰을 얻어주곤 했는데 얼마 전 띠띠 아줌마와 함께 처음으로 <쥬라식 월드>를 보러 갔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영화관에 가본 띠띠 아줌마는 당일 쇼크를 먹었던 모양인데 그 대단한 경험을 잊을 수 없어 꼭 다시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답니다.

 

그렇다면 또 봐야죠. 지난 목요일 차차와 만났을 때 30만 루피아를 쥐어 주며 주말에 <토르> 영화를 보러 가라 했습니다. 주말에 네 식구가 영화를 보려 하면 30만 루피아면 충분할 듯 했습니다. 일인당 6만 루피아 쯤 할 테니까요. 평일에는 4만 루피아, 시내에서는 주말에 8만5,000루피아까지 하지만 끌라빠가딩은 주말 2D 영화가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습니다.

 

그래서 7월 17일 일요일 저녁에 메이가 보내온 사진

 

 

왼쪽 두 번째 띠띠 아줌마가 나름 화장을 하고 영화관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 이 분 화장한 거 처음 봤습니다. 아, 전에 막내딸 예니가 결혼할 때 한번 봤구나.

 

오른쪽 끝 마르셀은 사진찍기 싫다고 구석에 앉았는데 아마 나중에 만족할 만큼 살을 빼고 나면 자신있게 사진을 찍으려 하겠죠.

 

오른쪽 두 번째 차차는 여느 때보다 더 예쁩니다. 아마 화장을 하고 나온 모양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여고생이란 대개 극강의 미모를 갖고 있기 마련이죠.

 

15년도 넘게 나랑 여러가지 문제로 지지고 볶고 있는 메이는 2015년인가 2016년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소개해 주었는데 어쨋든 중심 잘 잡고 가족들 잘 돌보고 있어 다행스럽고 꽤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띠띠 아줌마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이로 따지자면 내 친구 또래인데 띠띠 아줌마도 지금의 환경에서 이런저런 고민과 회한을 일단 내려놓고 좀더 즐거운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엄청 고생을 했으니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아야죠.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드는 친구들이지만 불과 6만 루피아 짜리 영화티켓에 행복을 느낀다면 앞으로도 여러 번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2022.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