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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레본의 뻴렛주술 사례

beautician 2022. 5. 15. 11:22

[뻴렛주술] 바리딘과 수랏미나의 사랑 이야기

 

옛날 찌레본에 바리딘(Baridin)이란 이름의 노총각이 살았습니다. 못생기고 더러운 행색의 바리딘은 복왕시(Mbok Wangsih)라는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었습니다. 바리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이 되어 일을 하며 어머니를 봉양하고 생계를 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찌레본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딸 수랏미나(Suratminah)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예쁘고 부유한 집안의 고명딸이 바리딘 같이 못생기고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올 리 없었습니다.

 

수랏미나에게 마음을 뺴앗긴 바리딘은 어머니에게 수랏미나 집안에 청혼을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안에서 바리딘의 청혼을 받아줄 리 없다고 거절했지만 바리딘은 집요하게 계속 부탁했습니다. 그는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복왕시는 아들의 강요와 위협에 못이겨 수랏미나에게 청혼을 넣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랏미나의 집에 도착해 청혼 이야기를 꺼내려던 복왕시는 수랏미나와 그 아버지 앞에서 구타까지 당하고 문전박대 당하는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수랏미나가 자기 어머니를 함부로 대했다는 말을 들은 바리딘의 마음 속에 복수심이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수랏미나를 아내로 취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여전했습니다. 자격이나 형편이 되지 않아도 원하는 여자는 취하고 싶고, 그래서 마구 들이댄 결과 당한 모욕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총체적 난국의 남자가 택한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리딘은 오만한 여인에게 분풀이를 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는 흑마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40일 밤낮을 금식하면서 주술의식을 행했는데 그 목적은 수랏미나가 자신에게 미친 듯 빠져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을 상대로 억지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찌레본의 이 주술은 끄맛(Kemat) 또는 뻴렛(Pelet)이라 부르는 것이었고 바리딘이 사용한 것은 그 중에서도 아지안 끄맛 자란 고양(Ajian Kemat Jaran Goyang) 즉 ‘절륜의 종마 주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술에는 여성의 옷가지나 머리칼 또는 생리대 같은 것들이 주술재료로 사용되고 주술을 건 소금이나 식재료를 여성에게 몰래 먹이는 방식도 포함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40일이 지나자 수랏미나는 전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난하고 못생긴 바리딘에게 미친 듯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수랏미나는 심지어 한밤중에서 혼자 일어나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바리딘과 혼인시켜 달라고 아버지에게 졸라 댔습니다. 수랏미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랏미나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했으므로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수랏미나의 아버지 망담(Mang Dam – 담 아저씨)는 결국 딸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망담은 수랏미나가 바리딘을 만나도록 자리를 주선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늦어 바리딘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복수심에 뻴렛주술을 걸기 위해 40일간 금식하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끝에 주술이 효력을 발하는 순간 그 역시 생명을 다하곤 만 것입니다. 굶어 죽은 것이죠. 뻴렛주술을 비롯해 귀신을 부리는 모든 주술은 뚬발(tumbal) 즉 제물을 요구하는데 대개는 그것이 시전하는 사람 본인, 또는 가까운 가족들의 목숨입니다. 바리딘은 자신의 생명이 주술의 제물로 소비되고 만다는 사실을 미처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딘이 죽고 나서도 수랏미나에게 걸린 주술을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바리딘, 바리딘, 바리딘…..”하며 그의 이름만 되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서 세상을 떠난 바리딘을 애도하며 먹지도 마시시도 않은 수랏미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바리딘의 주제넘은 욕망과 복수심으로 복 왕시는 자신을 부양할 아들을 잃었고 망담 역시 한번 가난하고 못생긴 청년을 무시한 대가로 딸을 잃고 말았습니다.

 

찌레본은 예로부터 뻴렛주술로 유명한 곳이며 지금도 남편이나 애인과 문제가 생기면 찌레본의 주술사, 흑마술사를 찾아가 고액의 대가를 치르고 부적이나 주술이 담긴 약재, 브로치, 화장품 같은 것들 것들을 받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관행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찌레본의 뻴렛주술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도 하는 건지도 모르죠. 때로는 바리딘과 수랏미나가 겪은 참혹한 파국을 포함해서요.

 

 

출처:

https://www.cirebonkota.go.id/profil/sejarah/cerita-raky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