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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시장조사 (인니)

자카르타의 인터넷전화 환경

beautician 2009. 1. 7. 16:59

 

 


처음 자카르타에 독립하여 사무실을 내던 시절 쪼들리는 자금상황을 더욱 압박하던 것은 전화사용료였다.

 

당시 환율이 아직도 미화 1불당 2,200루피아 선을 오가던 시절이었으므로 한 달에 보통 2백만~3백만 루피아 정도로 날아오는 전화요금 통지서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긴밀한 연락을 해야 하고 공장에서 제품검사를 하다가 중대한 문제가 발견되면 서울과 유럽 바이어에게 핸드폰으로 장시간 통화해야 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니 한 달에 1,000~1,500불 되는 전화비를 울며 겨자먹기로 내야 했고 어떤 달에는 2천불을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전화선 공급자체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전화회선을 늘리는 것은 시내에 사무실을 내던 99년도가 되어서야 가능했고 그래서 한동안은 부득이 전화국번이 9번으로 시작되는 라텔인도 전화기를 설치할 수 밖에 없었는데 위성을 사용하는 그러나 이 전화 서비스는 1년도 안되는 동안 수많은 고장과 수준 이하의 서비스에다가 마치 수중에서 통화하는 듯한 웅~~ 거리는 통화음질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

할인전화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등장한 것은 경제위기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에도 여러 가지 서비스가 있어 내가 근무하던 짜꿍(Cakung) 공단의 공장에도 전화며 팩스에 데이컴 다이얼러를 설치했지만 가끔 전혀 전화가 걸리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서 데이컴 측과 말다툼을 한 기억도 있다.

 

98년도의 자카르타 폭동은 인도네시아를 공포 속으로 몰아 넣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대폭적인 절하로 한 때 달러당 18,000 루피아까지 떨어진 이후 7~8천 루피아 대에 안정되면서 전화통화료는 획기적으로 절감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전화료의 달러 환산액은 무려 8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현재는 97년 초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 되어 있지만 당시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비용을 줄이려던 기업들은 그나마 비용을 더 줄이기 위해 앞다투어 할인전화 서비스를 신청했다.
 
할인전화는 일반 전화선 라인을 사용하는, 말 그대로의 할인전화와 인터넷 라인을 사용하는 VoIP 서비스로 나뉘어지는데 예전의 데이콤이나 온세통신 등이 전자이고 국제통화카드를 사용하는 선불카드, 후불 서비스 등이 후자에 속한다.

 

일반 할인전화는 음질이 뛰어난 데에 비해 할인율이 텔콤 가격의 60~70% 선에 머물지만 VoIP 서비스는 텔콤에 비해 25~40% 사이의 가격대인 대신 음질보장 부분엔 문제가 많고 처음엔 접속도 잘되고 음질도 괜찮던 VoIP 서비스도 시간이 지나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접속도 잘 안되고 음질도 나빠지는 것은 아마도 서버나 게이트웨이의 용량이 고객이 증가되는 속도만큼 빠르게 증설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할인전화 서비스와 VoIP 서비스를 구분하는 방법은 할인전화 서비스는 대부분 다이얼러를 전화나 팩스에 설치해 주어 별도의 접속번호 없이 바로 001 등으로 시작하는 국제전화번호를 누르면 되는 반면 VoIP 서비스는 복잡한 접속번호를 눌러 서버에 접속된 후에 컴퓨터의 영문안내에 따라 구분번호, 전화번호, 심지어 비밀번호를 누르는 복잡한 절차를 통해야 하고 할인전화는 TELKOM이 제공하는 일반 전화회선으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VoIP의 경우에는 대개의 경우 핸드폰으로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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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한국에 비교할 수도 없는 열악한 인터넷 환경을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VoIP 서비스를 통해 훨씬 싼 통화료를 내면서 일반전화와 같은 통화음질을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지만 마치 목성에서 지구로 전화하는 것처럼 음성신호에 시간차가 생겨 대화를 대화답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고 내가 말한 목소리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메아리 쳐 돌아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나 통화가 중간에 뚝뚝 끊어지곤 하는 것이 초창기 VoIP 서비스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끊임없이 고객망을 넓혀 갈 수 있었던 것은 파격적으로 저렴한 요율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는 VoIP 사업의 천국이 되어 가는 듯 했고 앞다투어 늘어나는 해당 업체들의 광고가 교민지들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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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콤에서 하는 VoIP 서비스인 텔콤세이브(Telkomsave)의 경우에는 전화통화료와 함께 VoIP 사용료가 청구되지만 대개 전화료와는 별도로 청구되는 여타 VoIP 서비스의 청구서를 볼 때마다 이상한 점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한달 내역을 쭉 훑어 보면 5~10초 정도 통화했다는 기록이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면서 이들에 대해 기본 통화료(1)이 부과되어 있는 것들을 매번 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안 후 난 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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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전화의 경우에는 전화신호가 가고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면서부터 통화료가 부가되지만(텔콤 시내전화의 경우가 그렇지만 5초를 통화하더라도 기본 3분 통화료가 부가됨. 4분 통화하면 6분 통화료 지불) VoIP 서비스의 경우에는 통화료 산정기준이 모두 제멋대로다. 다이얼링이 끝난 직후 또는 10초 후부터 무조건 전화료가 계상되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신호음이 나가기 시작하면서 계산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꼭 상대방이 통화 중이거나 자리를 비워 통화가 되지 않더라도 VoIP 사용료를 내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며 그렇기 때문에 청구서에는 5초 짜리, 10초 짜리 통화에 대한 기본 통화료가 그토록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D사의 경우 다이얼링이 끝난 후 신호음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오며 “Your call cost is .” 하면서 2천루피아 정도의 통화료를 부과한다는 공지를 듣는 경우였다. 그러니 대개의 경우에는 VoIP 서비스 업체로서는 고객이 접속번호를 누르는 순간 원가가 들지 않는 매출이익이 상당부분 발생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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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P
서비스의 사용료 차트에 나타나는 통화료 요율에도 몇가지 문제가 있다. 흔히 ‘한국 국제전화 분당 3,000 루피아’ 식으로 광고하는 것은 분명 거짓말은 아니지만 더 말해줘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 셈이다. 분당 3천 루피아는 실제로 ‘한국 서울에 있는 일반전화에 전화하는 경우’의 요율이지 인천이나 부산에 거는 전화의 요율은 분명 이보다 더 비싸다. 특히 핸드폰에 전화하는 경우에는 광고된 요율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부분은 사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청구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통화료 계산방식이 1분당 얼마가 아니라 30초당, 또는 6초당 얼마로 나누어질 경우에는 계산이 더 복잡해진다. 그러니 VoIP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국전화 1분에 3천 루피아를 낸다고 생각하며 결재하지만 사실은 항상 그보다 훨씬 많이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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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2002년 상반기까지도 VoIP 서비스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앞다투어 새로 생겨났던 것은 통신료를 절감하려는 고객들이 계속 늘어난 것뿐 아니라 절대이익 자체도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인니 정부로부터 예기치 않았던 철퇴를 뒤통수에 맞은 것이 2002 5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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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어떤지 몰라도 인도네시아의 정통부나 텔콤(Telkom), 인도삿(Indosat) 등에서 보기에는 이런 VoIP 서비스가 자기들의 전화선, 인터넷 라인을 악용하여 자기들이 받아야 마땅한 국제통화료를 가로채고 있다는 인식을 기본에 깔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어느날 인니 정부는 VoIP 사업권은 텔콤(Telkom), 인도삿(Indosat), 사텔인도(Satelindo), 가하루(Gaharu), 아틀라삿(Atlasat) 5개 업체에만 부여하고 여타의 모든 VoIP 업체들을 전격적으로 불법화시켜 버렸다. 인도네시아 VoIP 통신시장의 기존 틀을 뒤엎어 버리는 대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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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련을 맞아 경찰서에 불려 다니며 급기야 벌금을 물고 심지어 눈물을 머금고 간판을 내리고 만 회사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5개 업체 밑으로 헤쳐 모여 줄을 서고 그 대리점으로 전락한 기업들이나 새로 개업한 선불카드 업체들도 적지 않고 개중에는 단속을 피해 한동안 굳세게 합법과 불법 사이의 애매한 지역을 맴돌며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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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으로 전락한 업체들은 이익이 크게 줄어 들었지만 고객들로서는 꼭 상황이 나빠진 것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VoIP 서비스는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더욱이 국내통화료를 내지 않고 국제통화료만 내는 톨프리(Toll Free) 접속번호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7번으로 시작하는 다섯자리 톨프리 접속번호로 VoIP 서비스의 서버와 접속하면 국내통화료를 따로 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17번 접속번호는 전회선이 사용중인 경우가 많아 접속 성공률이 많이 떨어지는데 간혹 별도의 접속용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7자리 또는 8자리의 일반전화번호로 접속할 경우 별도의 시내 통화료를 내야 하므로 전화 사용료를 이중으로 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톨프리 17번 접속번호가 좀처럼 걸리지 않는 핸드폰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일반 전화번호로 접속해야 하지만 이때에는 텔콤 요율보다 더 비싼 사텔인도 같은 이동통신업체의 국내통화료 메타와 VoIP 서비스의 국제통화료 메타가 함께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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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VoIP 서비스는 통화료를 이중으로 내더라도 분명 텔콤의 001을 직접 돌려 거는 전화보다 훨씬 저렴한 것이 틀림없고 당시 할인전화 서비스보다도 반은 더 쌌다. 특히 전화료가 계속 인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할인전화와 VoIP 서비스의 요율도 인상되었지만 그래도 그 절감효과로 인해 그 중요성과 시장의 관심은 더욱 커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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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P
계열로 인터넷폰 역시 옵션 중 하나였다.

누구나 한번쯤은 써 보았을 인터넷폰은 당시 앞서 언급한 라텔인도 이상의 지독한 음질과 음지연으로 두번은 써보지 않았을 테지만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린 후 개발된 수많은 인터넷폰들은 일반전화에 못지 않은 선명한 음질을 자랑하기 시작했고 유료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장비만 구매하면 이들 서비스를 통해 국제전화를 무한정 무료로 사용했었다.

일반 VoIP 서비스가 일반적으로 음성정보 전용인 H203 프로토콜을 통하는 반면 통신장비 라기보다는 프린터, 디지털 카메라 같은 컴퓨터 주변기기로도 볼 수 있는 인터넷폰은 일반정보가 통과하는 UDP32000 프로토콜을 함께 사용하므로 기존의 VoIP 서비스와는 일부 맥락을 달리했다. 더욱이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는 외국에 있기 마련이고 경비의 부과도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인니정부의 철퇴를 맞거나 텔콤에서 나와 개인컴퓨터에 설치한 인터넷폰을 뽑아가는 경우가 생기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비록 유료로 돌아서긴 했지만 사용료도 텔콤의 5%, 일반 VoIP 8분의 1 정도 수준이니 파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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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인도네시아에 이렇다 할 인터넷폰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깔려있는 광케이블이 거의 전무하고 인터넷 보급율은커녕 컴퓨터 보급율 자체가 한국와 비교할 수도 없는 열악한 인프라 때문이다. 한국의 고속인터넷망을 기준하여 만든 대부분의 고급 인터넷폰은 속도와는 별 관계없이 그저 인터넷에 항상 접속되어 있다는 의미만을 갖는 정도인 현지 전용선에 연결해도 IP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2메가 전후를 맴도는(물론 45메가 짜리도 있다지만) 전용선 용량으로는 인터넷폰의 음질을 좌우하는 지터버퍼(Jitter Buffer)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잖은 설치비와 월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전용선이 설치된 기업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얼마 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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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요즘도 여전히 많은 한국기업들이 자사 인터넷폰을 들고 인도네시아의 시장을 뚫기 위해 계속 자카르타를 방문했는데 그중에는 텔레프리(Telefree), 글로벌폰(Global phone)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지 전용선이나 모뎀환경에서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작동되더라도 정상적인 통화가 가능한 음질을 내지 못하는 것은 이런 절대적으로 열악한 인프라 때문이다. 가장 성능이 우수한 인터넷폰의 경우에도 CBN, Centrin 같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ISP)나 해당 지역의 전화선 품질에 따라 음질이 달라지고 더욱이 인터넷 통신량이 많은 회사나 특정 시간대에서는 목소리가 조금씩 끊어지거나 잡음이 생기기 쉽다. 더욱이 위성이나 브로드밴드를 통해 들어오는 음성정보는 약간의 음지연 발생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어떤 기가 막힌 인터넷폰이 나오더라도 업무상 해외 각국에 전화하는 것을 업으로 하여 음질과 정확한 의사전달에 목을 거는 항공사, 여행사, 해운회사 등이 업무용도로 쓰기에는 아직도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환경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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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어느새 인터넷폰의 시대를 넘어 스카이프가 대세를 이루는 추세인 듯 하다. 이젠 인터넷폰을 별도로 컴퓨터에 달아 쓰거나 쓰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각 핸드폰 통신업체들이 자체 인터넷폰 시스템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동안 난립했던 VoIP 통화업체들 역시 이제 그 광고를 교민지나 현지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IT 업계의 발전은 인도네시아에서조차 그만큼 눈부시다.

 

여담이지만 나 역시 한동안 인터넷 전화기를 굳세게 사용했던 이유는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대신 일반 전화비의 반의 반 이하로 줄어든 통신료가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속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당시 VoIP 업계 대지진을 일으켰던 것 같이 언제 또 맘 바꾸고 법도 변해 인터넷 통화가 불법이 되어 어느 날 내 사무실에 인터넷 전화기를 떼어 가겠다고 들이 닥치는 날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평소 죽더라도 찍 소리는 하고 죽어야 한다는 모토대로 받아 칠 한 마디를 늘 준비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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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니터나 프린터 같은 거 컴퓨터 본체에 꽂을 때에도 정부허가 받아야 하는 거요?

세월이 지나니 예전의 준비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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