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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반품 가능한 세상을 위하여

beautician 2022. 4. 24. 11:37

 

 

반품은 자유민주주의의 척도

 

  

인도네시아의 건강보험은 예전에 노동자들을 위한 잠소스텍(Jamsostek)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조코 위도도 대통령 시대가 도래하면서 BPJS라는 이름의 건강보험(BPJS Kesehatan)으로 통합되어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되었습니다. 이른바 전국민 건강보험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하지만 BPJS 건강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병이나 치료항목들이 적지 않고 기본적으로 보건소를 먼저 가서 긴 줄을 선 후 복잡한 수속을 거쳐 실제 치료를 받거나 입원할 병원을 지정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그렇게 해서 간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 병원이나 지정 약국에 없으면 다른 일반 약국에서 보험 적용되지 않는 가격으로 개인적으로 약을 사야 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건강보험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한국보다도 먼저 영리병원들이 자리를 잡고 높은 병원비를 강요하는 인도네시아, 그나마 의료수준이 낮아 부자, 정치인들은 감기만 걸려도 모두 싱가포르나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 그런 나라에서 그나마 BPJS는 서민들의 유일한 동아줄인 셈입니다.

 

그래서 일부 기업들을 직원들을 위해 BPJS 이외의 민간 건강보험을 들어주는 복지혜택을 주기도 합니다. 나도 2018년에 그런 혜택을 잠시 누려 보았습니다. 연간 치료비 상한액이 정해져 있고 조건도 칼로 그은 듯 명확해 여전히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사용한 병원비를 소정의 양식을 통해 어플리케이션으로 신청하면 회사구좌를 통해 개인에게 지출된 뱡원비의 보험사 부담액이 돌아오는 방식이었고 그 수속이 단 며칠 정도 걸렸으므로 꽤 편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그 보험 조건 중엔 보험기간 중 안경을 한 개 맞추는 것도 보험료로 지원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 혜택을 쓰지 않으면 없어지고 마니까 누구나 안경을 새로 맞췄고 그래서 그 기간 동안 나도 안경을 맞췄는데 늘 가장 싼 수준의 안경을 사용하다가 그땐 보험사가 사주는 것이니 한도에 가까운 금액으로 골랐습니다. 대개 10만원 밑, 정확히는 5만원이 채 안되는 가격에 맞추던 안경을 그땐 30만원 가량 주고 옵틱 세이즈(Optik Seis)라는 꽤 유명한 현지 안경점에서 맞췄습니다. 안경테도 적잖은 가격이었는데 그때 산 것은 Bolon이란 브랜드였어요. 마치 서구 브랜드처럼 보였던 그 제품은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 샤멘 지역 업체가 만든 것이더군요.

 

아무튼 그게 현지 안경점에서 맞춘 첫 안경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진 한국에서 맞추거나 현지에 진출한 한국 안경점에서 맞췄거든요. 그러나 그 안경점들이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부득이 현지 유명 안경점을 택한 것이었는데 비싸고 유명하다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맞춘 지 2주 후에 나온 안경은 눈에 맞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래시브, 그러니까 다초점으로 맞췄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쓸 수 없었어요. 한국 안경점에서 맞춘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새 안경은 도저히 쓰고 다닐 수 없는 수준이었고 반품도 수리(?)도 안된다고 하여 1년쯤 묵혔다가 결국 렌즈만 다시 한국 안경점에서 맞춰 단 후에야 쓰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경 프레임은 비싼 돈을 준 것이 무색하게 금방 색이 벗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게 중국제란 걸 알았다면 그러려니 하고 살 때 속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서구 브랜드라 믿고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기가 찼어요. 결국 사람들 만날 때 쓰고 다니기 곤란한 상황이 되어 안경을 하나 더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 Bolon 안경테가 얼마전 한쪽 다리가 헐거워지며 수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 4만원쯤 하는 다른 플라스틱 안경테로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렌즈 사이즈가 딱 맞는 안경이 있어서 그냥 렌즈를 전 안경에서 뽑아 새 안경에 끼우는 식으로 거래가 진행되었고 꽤 만족스러운 결과였습니다. 결국 당시 보험을 이용해 산 안경은 안경테도 렌즈도 4년 사이에 다 바꾸고 만 것입니다.

 

얼마전 아내에게도 첫 프로그래시브 안경을 맞추어 주었는데 마치 내가 보험으로 처음 맞춘 그 안경처럼 너무 어지러워서 안경점에 불만을 접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렌즈를 새것으로 갈아주었습니다. 옵틱 세이즈에선 오리발 내밀며 절대 후속처리 해주지 않던 그 서비스를 한국계 안경점이던 내 단골점(내가 렌즈와 안경테를 늘 사던 곳)에서는 그렇게 책임져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안경도 안경점도 한번 써보지 않으면 그게 정말 좋은 지 나쁜 지 알 수 없다는 것을요.

 

한번 써보는 건 구매자의 권리입니다. 돈만 낸다면요.

하지만 그게 하자가 있다면 하자가 없는 것으로 바꿔주는 게 원칙이어야 합니다. 안경점에서 말하길 자기들도 사온 물건이라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안경점은 앞으로 신뢰하고 사용할 수 없는 겁니다. 내가 그 렌즈사에 직접 클레임을 걸 수 없는 일이니까요. 옵틱 세이즈는 당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안경 잘 못 산 당신 책임이라고 모든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안경 한 번 사면 5년쯤 쓰게 됩니다.

더 오래 쓰기도 하고요.

 

꽤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안경들이, 보석이나 전자제품과 달리 품질보증서나 서비스 워랜티 같은 게 나오지 않는 건 좀 이상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선거를 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데 그 중요한 선택이 혹시라도 잘못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거나 숨겨놓은 하자가 얼마 후 발견되어도 선택을 정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걸 중간에 정정할 수 있어야 우리 생활이 더욱 나아지고 손해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써보지 않고 그게 정말 좋은 지 나쁜 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좀 써보고 더 늦기 전에 바꿀 수 있어야 좋은 안경점이고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2022.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