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여인의 몸에서 솟아난 서누아 섬 본문
[라이우-나투나 민화] 서누아 섬(Pulau Senua)의 고사
서누아 섬(Pulau Senua)은 라이우제도군, 나투나(Natuna)의 동부 붕우란(Bunguran Timur) 소재 딴중 서누빙(Tanjung Senubing)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서누아(Senua)란 현지 방언으로는 ‘둘로 갈라진 한 개의 몸’이란 뜻. 흰제비집 채집지로 유명한 이 섬은 마이 라마(Mai Lamah)라는 여인의 몸이 두 개로 자라난 모습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라아우 제도 나투나 지역엔 옛날옛적 한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바이투센(Baitusen), 아내는 마이 라마(Mai Lamah)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운명을 시헝하는 심정으로 붕우란 섬(Pulau Bunguran)으로 떠났는데 그들이 붕우란 섬을 선택한 이유는 산호와 바다소라가 많은 그곳에서 바다의 보물, 즉 많은 수산자원들을 얻기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붕우란 섬에 정착한 후 바이투센은 그곳 다른 주민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어부가 되어 일했습니다. 그는 매일 물 속에 들어가 껍데기를 장신구 만드는 데에 사용하는 시풋롤락(siput-lolak) 류의 소라와 진주조개 등 다양한 조개들을 채취했습니다. 그리고 마이 라마는 남편이 잡아온 조개와 소라의 껍데기로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붕우란 섬 사람들도 그들에게 친절하고 살갑게 대해주었으므로 두 사람은 그곳에 사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들 바로 옆집엔막 스마(Mak Semah)라는 가난하지만 마음씨 좋은 산파가 살았습니다.
“혹시라도 몸이 아프거나 하면 아줌마를 불러요. 꼭요. 그럼 내가 와서 도와줄게요.”
막스마는 세 이웃이 된 마이 라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이 라마는 그렇게 말해주는 막스마가 너무나 믿음직스러워 기꺼이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섬 사람들 모두가 바이투센과 그 아내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으므로 바이투센과 아내는 이사온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온전히 붕우란 섬의 주민이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보 이 마을에 들어온 이후 우리를 외지인 취급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형제자매처럼 생각해 주는 게 너무 고마워요.”
마이 라마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들 사는 곳에 들어가서도 처신만 잘 한다면 그렇게 되는 거요.” 남편은 웃으며 그렇게 대꾸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이투센은 더욱 열심히 조개와 소라를 따왔습니다. 그는 태양이 수평선에서 떠오르기도 전부터 바다에 나갔고 해진 후에나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다니는 지역도 점점 넓어져 붕우란 섬 동쪽 해변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느날 바이투센은 해삼 수천 마리가 사는 해삼 구덩이를 발견했습니다. 해삼을 채취하기 시작한 이후 바이투센은 더 이상 조개나 소라를 캐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는 물론 광동지역 중국상인들에게 비싸게 팔리는 해삼 덕에 생활이 크게 나아질 거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삼을 가져와 집 근처에서 말린 후 싱가포르나 중국 상인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해삼 장사는 대박이 났고 바이투센과 아내는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곳에서 가장 부유한 어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바다 건더의 거상들이 붕우란 섬에 큰 배를 가져와 바이투센이 잡아서 대량으로 준비해 놓은 해삼을 사 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큰 운반선이 6개월에 한 번 붕우란 섬 동쪽 항구에 정기적으로 들어와 해삼을 실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바이투센이 해삼 공급자로 크게 이름을 떨치자 이제 여러 나라에서 해삼을 사려는 상인들이 그를 찾았습니다. 불과 2년 만에 붕우란 섬 동쪽 해변엔 매우 번잡한 장터와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바이투센의 부인도 남편을 찾아오는 단골 거상들로부터 마이람 부인(Nyonya May Lam)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분명 영예로운 칭호였겠지만 그렇게 불리면서 마이 라마는 예전의 초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어렵고 가난하게 지내던 시절의 마음가짐, 당시의 소소한 행복들과 함께 말이죠.
부유한 거상의 아내가 된 후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선 그는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했으며 온갖 향수를 뿌렸습니다. 변한 것은 겉모습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성격과 행동거지도 예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녀는 예전에 가까이 지내던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생선, 뻐닥빌리스(pedak-bilis: 말린멸치무침 같은 나투나 전통음식), 바다소라 비린내를 풍기는 이웃들을 얕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말도 거칠어지고 인색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하루는 이웃의 막스마가 쌀을 빌리러 마이 라마의 집에 들렀는데 쌀을 빌리긴커녕 모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가난하기 짝이 없고 손바닥 만한 밭도 없는데 그렇게 계속 빌려가면 나중에 갚을 수나 있겠어요?”
마이 라마는 그렇게 막스마를 조롱했고 모멸감에 넋을 잃은 막스마는 아무 말도 못하고 거기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마침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와 아내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여보, 그러지 말고 원하는 걸 드리시오. 이분은 우리 귀한 이웃이 아니오? 예전에 우릴 많이 도와주었는데 그걸 잊으면 안되오.”
“하! 언제까지 옛날 일을 파먹고 살 거에요?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요!” 마이 라마는 목소리에 가시를 곧추 세웠습니다.
비단 막스마뿐 아니라 도움을 청하러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마이 라마는 그런 식으로 모욕을 주며 쫓아내곤 했습니다. 결국 그런 성격에 질린 이웃들과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그녀가 이웃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마이 라마의 출산이 임박했는데 바다 건너 섬으로 사람으로 보내 불러오기로 한 산파가 아직 오지 못한 것입니다. 바이투센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막스마를 비롯한 여러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이 라마에게 여러 차례 모욕을 당해 마음을 상한 상태였습니다.
“마이 라마를 도와서 뭐 하겠어요? 오만하기 짝이 없이 은혜와 호의를 원수로 갚은 그 여자가 이번엔 스스로 좀 깨달아야 해요. 사람들 사이의 정이 돈 보다 더 중요하단 걸 말이에요.”
또 다른 이웃인 어부의 아내 막사이야(Mak Saiyah)도 이렇게 말하며 바이투센의 도움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바이투센은 산고를 시작한 아내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함께 바다를 건너 산파를 찾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바다를 건너 저쪽 섬으로 가 산파를 찾읍시다.”
바이투센은 아내를 안아 배에 태웟습니다.
“여보, 우리 없는 사이에 이웃들이 우리 재산을 노릴지 몰라요. 집안의 금은보화가 든 보물상자들을 모두 배에 함께 싣고 떠나요!”
마이 라마는 산고를 느끼면서도 재물에 집착했습니다. 아내의 변한 성격을 잘 알고 있던 바이투센은 시간이 촉박했으므로 아내의 말대로 몇 번씩이나 집을 오가며 금은보화를 가득 채운 상자들을을 배에 실었습니다. 바이투센이 해삼을 따러 갈 때 쓰던 그 작은 배는 보물상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 후 두 사람은 배를 띄워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급박한 와중에 배를 띄우는데도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투센이 직접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자 파도가 점점 더 거세졌습니다. 파도가 치며 물이 자꾸 배 안으로 넘쳐 들어오자 배는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바이투센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배가 가라앉으면서 함께 실었던 금은보화의 보물상자들도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바이투센과 부인은 간신히 배를 빠져나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류를 타고 붕우란 섬 동족 해안을 향해 헤엄쳤습니다. 그런데 마이 라마의 몸이 자꾸 물 속으로 가라앉으려 했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그녀의 배가 산더미처럼 불러 있었는데 거기에 금목걸이와 금반지, 금으로 만든 펜던트, 금귀걸이 등이 그녀의 몸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남편의 허리띠를 단단히 잡고서 붕우란 섬 동쪽 해변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허리띠는 나무껍질을 단단히 엮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붕우란 섬은 거상의 오만한 부인을 더 이상 그 땅에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붕우란 섬의 사람들은 물론, 붕우란 섬의 정령들도 마이 라마의 귀환을 받아들일 수 없엇던 것입니다.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천둥과 벼락이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마이 라마의 몸이 돌로 변하면서 두 개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이 라마는 그 모습에 망연자실하는 남편에게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1]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형성된 큰 바위가 별도의 섬이 되어 붕우란 섬 동쪽 해변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 섬은 사누아(Sanua)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하나의 몸이 두 개로 갈라졌다는 뜻입니다. 몸이 두 개’가 된 것은 당시 마이 라마가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한편 마이 라마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온갖 금붙이들은 현지에서 부룽 왈렛(burung Walet)이라고 부르는 제비가 되었고 그래서인지 붕우란 섬은 지금도 중국음식 최고 재료로 손꼽히는 흰제비집 채집지로 유명합니다.
출처:
https://id.wikipedia.org/wiki/Kisah_Pulau_Senua
[1] 다른 버전에서는 바다에 빠져 익사한 바이투센과 마이 라마의 시신이 붕우란 섬 동쪽 해변으로 파도에 밀려왔는데 마이 라마의 시신에 벼락이 몇 차례 때리자 마이 라마가 돌이 되며 증식하듯 팽창해 서누사 섬이 되었다고도 한다.
'인니 민속과 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속과 괴담 사이 (34)] 금빛 달팽이 께옹마스(Keong Mas) 전설 (0) | 2022.04.03 |
---|---|
지팡이 구멍에서 물 나와 호수가 만들어졌다는 전설 (0) | 2022.04.01 |
바뚜르 호수의 거인 꺼보 이와(Kebo Iwa) (0) | 2022.03.30 |
눈물에 떠내려간 왕국 (0) | 2022.03.29 |
인도네시아 빠왕 후잔의 위력 (0) | 2022.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