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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뿌뜨리 두융 전설 (Legenda Putri Duyung)

beautician 2022. 3. 18. 11:50

인도네시아 인어 전설

 

이깐 바까르(ikan bakar)  

 

“이 생선 너무 맛있어요!”

첫째 아들이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래 생선은 자주 밥상에 오르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원래 하는 일은 밭에 옥수수와 고구마를 키우는 것이었으니까요. 당연히 매일의 주식은 옥수수와 고구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인근 바닷가 마을 친구 부탁을 받고 그를 따라 허리 깊이까지 올라오는 바다에 들어가 그물 던지는 일을 돕고 그 대가로 큼직한 생선을 세 마리 받아왔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생선반찬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생선을 다듬어 굽는 내내 옆에서 침을 흘렸던 것입니다.

 

“생선 더 먹어도 돼요?”

생선 한 마리가 순식간에 뼈만 남자 둘째가 눈치를 보며 물었습니다.

“물론이지. 맘껏 먹거라.”

 어머니는 막내에게도 밥을 떠먹여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큰 생선 두 마리가 아직 남아 잇었으니까요.

“아빠! 너무 고마워요. 너무 맛있어요!”

첫째와 둘째 모두 입에 밥과 생선반찬을 잔뜩 넣은 채 즐거워하며 아버지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자기가 잡아온 생선을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는 원래 잔정이 없고 화를 잘 내는 편이었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있다가 다시 바닷가 마을 친구에게 가서 그물 던지는 일을 좀 더 도울 게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여보, 난 먼저 나가 보겠소. 나중에 점심 때 먹게 생선 한 마리는 남겨 주오. 다시 바다에 잠깐 갔다 오겠소. 혹시 또 생선을 더 얻게 될 지도 모르지.”

평소 무뚝뚝하고 집안 일에 무심하던 남편이 생선을 더 가져올 생각을 하는 게 기특했던 아내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바닷가 마을로 가고 아이들도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는 남은 생선 한 마리와 밥을 찬장에 보관했습니다. 세 아이들은 어느 새 뛰어놀기 시작했고 아직 아장아장 걷는 막내도 형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남편과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생선 한 점도 맛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뜨자 막내가 또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배고파요. 아까 아침처럼 밥과 생선을 먹게 해주세요.”

형들을 따라 놀다가 지치고 배고파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머니는 남편을 위해 생선을 남겨 두려 했습니다.

“그건 아버지 드려야 하니, 그 대신에 삶은 고구마를 가져다 줄게.”

“싫어요. 생선반찬에 밥을 먹을래요.”

막내가 투정을 부리며 이번엔 울음까지 터트렸지만 어머니는 투정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평소 말이 없고 무심한 편이었지만 자기가 한 말을 거역하는 것은 용납하는 법이 없었고 심하면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내는 원하는 것을 어머니가 주지 않자 아예 땅바락을 데굴데굴 구르며 배고프다고 울면서 졸라댔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결국 막내에게 밥과 생선반찬을 내주자 그것을 본 장남과 둘째도 득달같이 달려와 자기들에게도 생선반찬을 나누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결국 세 형제가 함께 남은 생선을 순식간에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버지 몫은 뼈와 가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상을 치우고 난 어머니는 나중에 벌어질 일을 걱정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천에 뜬 해가 조금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바닷가에 갔던 남편이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엔 물고기를 얻지 못해 벌써부터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가꾸던 고구마밭도 멧돼지들이 온통 파헤쳐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상태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여보, 너무 피곤하구려. 점심상을 내오시오.”

아버지는 식탁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내가 눈치를 보며 삶은 고구마를 내오자 그의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아니? 아침에 먹었던 생선은 어디 있소? 내, 아까 한 마리 남겨놓으라 하지 않았소?”

“미안해요. 여보. 아까 한 마리 남겨놓았지만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졸라서 결국 아이들에게 주고 말았어요.”

아내는 어쩔 줄 모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을 밥상을 뒤집으며 화를 냈습니다.

“뭐라고? 이 집의 가장인 나한테 그럴 수 있소? 내가 어떻게 고생하며 가져온 생선인데 내 몫을 남겨놓지 않았단 말이오?”

“여보, 그건……”

“듣기 싫소!”

아내의 눈에 불이 번쩍 일었습니다. 남편이 손뚜껑 같은 손으로 뺨을 때린 것입니다. 아내는 엎어진 밥상과 흩어진 고구마들 위로 쓰러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곤 하는 남편 성격을 애당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미안하다며 용서를 빌었지만 남편의 잔소리를 끝없이 이어졌고 급기야 험한 말까지 나오고 말았습니다.

“내 눈 앞에서 당장 꺼지시오! 당신은 더 이상 아내도 뭣도 아니야! 없어져 버리라고!”

아내는 크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남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아까 낮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것이 자기들이 떼를 써서 생선을 다 먹어버렸기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 어머니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배 아파 낳은 금쪽 같은 아이들이어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엄마가 가서 물고기를 잡으마.”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세 아이들은 엄마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어보아도 아버지는 모르겠다며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습니다.

“아마 물고기라로 잡으러 간 모양이지. 너희들이 생선이라면 환장을 하잖아?”

속좁은 아버지는 뒤끝까지 쩔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세 아이들은 잠결에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아 급히 바다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바닷가 마을을 지나 해변에 도착한 아이들은 긴 해변을 뛰어가며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어머니, 배고파요! 어디 계세요?”

깜짝이야. 난 또 어머니가 걱정되어 찾으러 간 줄 알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다에서 파도를 등지고 어머니가 물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어머니가 손에 물고기 몇 마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뭍으로 나와 세 아이를 와락 껴안고 한참을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집에 돌아가거라. 이 물고기들로 점심을 해 먹으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첫째가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함께 돌아가지 않을 거에요?”

“엄마는 물고기를 더 잡고 좀 있다가 갈게.”

그렇게 말한 어머니는 돌아서서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세 아이들은 어딘가 이상해진 어머니 뒷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맨손으로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맛있는 생선을 또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쥐어준 생선들을 들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고 첫째가 부엌에서 불을 피워 생선을 구웠습니다. 생선은 너무 맛있게 구워져서 아이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그러고도 남은 생선은 저녁에 밭에서 돌아온 아버지 몫이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가 잡은 물고기에요. 어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어요.”

게걸스럽게 남은 생선 두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누구? 누가 잡았다고?

“엄마가요.”

“엄마? 누구 엄마?”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아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 그런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밤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잠을 참으며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를 더 잡으면 온다던 어머니는 밤이 깊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내내 심드렁한 채 아내가 돌아오든 말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세 아이들은 다시 바닷가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해안에서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며 찾았어요. 그러자 바다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얘들아, 엄마 여기 있어.”

목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본 아이들을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 분명 엄마의 얼굴을 한 사람이 있었지만 몸에는 반짝이는 비늘이 돋았고 다리 대신 꼬리와 지느러미가 물 속에서 물결치듯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림이라기보다는 물고기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얘들아, 엄마야~  

 

“얘들아, 엄마가 그리로 갈 수 없으니 너희가 이쪽으로 오렴.”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손짓했지만 아이들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너희들을 위해 물고기를 잡았어.”

엄마의 두 손에는 팔뚝 만한 물고기가 아가미를 잡힌 채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가장 잘 따르던 막내도 울음을 터트리며 어머니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냐! 우리 엄마가 아냐!”

막내가 그렇게 소리지르자 첫째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우리 엄마를 닮았지만 절대 그럴 리 없어! 당신은 요괴지? 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잡아먹었지? 그렇지?”

어머니는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가야.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난 너희 엄마야. 믿어주렴. 엄마가 이렇게 변한 건 이제부터 바다 속에서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야. 엄마는 더 이상 너희 아버지 곁에서 살고 싶지 않단다.”

어머니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려 했으나 아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매일 맛있는 물고기들을 잡아 줄게.”

하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고함을 지르며 모두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들은 반은 물고기처럼 변해버린 어머니를 괴물 취급하며 욕을 하다가 결국 돌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크게 상심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줄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느러미와 꼬리가 돋은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그녀는 해변 가까운 바다에서 상체를 내놓은 채 한동안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결국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후 그곳 어부들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그녀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융(duyung)’ 또는 ‘뿌뜨리 두융(Putri duyung)’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인어공주라는 뜻이었죠. 하지만 안데르센 동화 속 그 인어공주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뿌뜨리 두융 아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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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뜻하는 뿌뜨리 두융이라는 제목만 보고 내용을 읽은 사람은 우선 이야기 구조의 기괴함에 어딘가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를 언뜻 떠올리게 됩니다. 그의 만화에서는 어느 순간 각성하여 점점 이상해지거나 파국으로 치닫는 캐릭터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 엄마가 그렇습니다.

 

이런 질문이 생기죠.

 

1. 어머니는 왜 인어가 된 걸까? 아이들에게 고기를 잡아 주려면 어부가 되었어야 하는데.

 

2. 어머니는 그날 밤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물귀신이 되었거나 인어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 또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뭐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것일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은 남아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는 장면은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당시 어머니 상을 그려낸 것일까?

 

4. 아이들은 왜 어머니를 사랑하는 순종적인 모습 대신 지독히 이기적이고 철없는 모습으로 그렸을까? 어머니와 아들을 여자와 남자라는 젠더 권력관계로 표현한 것일까?

 

5. 이 이야기에 무슨 대단한 메시지가 있길래 안쫄 해양공원에는 뿌뜨리 두융이라는 이름의 고급 숙박시설(Putri Duyujng Ancol Cottage)이 건설된 걸까?

 

안쫄 소재 뿌뜨리 두융 리조트  

 

이 민화는 뭔가 찜찜함이 남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