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출장 본부장님

인니 출장가신 본부장님 (7) – 에필로그

beautician 2014. 6. 13. 04:12


 

이번 에피소드 여섯 꼭지를 MS 워드 폰트 10 크기로 A4용지 57매분을 약 보름간 써내려 갔네요.

생업은 언제 했을까 싶을 정도로 몇 번은 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번 에피소드는 좀 복잡하기도 했거니와 하고 싶은 얘기들도 참 많았습니다.

 

우리 기업문화 속에 깊이 녹아내려 있는 갑을문화 같은, 대기업도 아니면서 자신이 오더를 주는 입장, 채용하는 입장이라 하여 일견 약자의 위치에 있는 상대방을 얕보고 업신여기는 행태를 부각시켜 보고 싶었고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이런저런 조사요청을 하면서 그 모든 서비스를 공짜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고구조, 분명히 실패해 버린 사업부문이었고 엄청난 물의를 빚은 출장이었는데 온갖 왜곡과 축소, 첨삭, 미화로 얼룩진 보고서를 상사에게 올려 오히려 칭찬과 포상을 받으려는 본사 중역들과 직원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 받게 되는 현지법인이나 거래선, 에이전트들의 얘기들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생업에 쫓기다 보니 너무 허겁지겁 끝내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사실 저와 같이 자카르타에서 독립군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저마다의 S뷰티를 한 두 개씩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밀고 들어와 여기저기에 물의를 일으키고, 싸우고, 심지어 빚까지 지기도 하고, 그 결과 중간에서 일의 진행을 도와준 개인이나 업체들이 토사구팽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그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폄하당하고 비난받는…, 어쩌면 인도네시아 교민들대부분이 그런 일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기업의 법인장, 지사원들이나 대사관의 영사님, 공무원들은 상상도 못하는 세계가 바로 그 한 층 아래에 펼쳐져 있는 것이죠.

 

이 에피소드를 적으면서 같은 경험을 한 수많은 분들이 왜 이런 글을 공개하거나 공유하지 않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습니다.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교신자료들까지 들이밀며 모두 까발려 버리면 나중에 겁이 나서라도 누가 또 다시 나한테 같이 일하자며 손을 내밀겠어요? 억울한 일을 당해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고 있는 수많은 교민들이 인도네시아 구석구석에 계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죠.

 

혹시라도 인도네시아에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은 이걸 알아봐 달라, 저걸 도와달라 하기 전에 그 반대급부로 자신은 그걸 도와주는 사람에게 뭘 해줄 수 있는가를 진심으로 먼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아무 것도 보상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괜히 큰 소리나 뻥뻥 치지 말고 사실대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최선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많이 주제 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많은 분들, 인도웹에서 늘 댓글 달아주시는 단골 아저씨 아줌마들, 감사드립니다.

 

2014.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