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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그들은 언제나 풀스윙

beautician 2021. 3. 24. 13:54

 

취지를 모르는 권력

풀스윙 전문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장을 봤습니다.

 

파키스탄 귤 15개 (약 2킬로. 씨가 있지만 아주 달고 맛있습니다)

계랸 25개

우유 1리터

참치캔 1개

1.8미터 형광등 1개

 

형광등을 제외하면 마트 안 장바구니 3분의 2 정도를 채우는 물량이 됩니다.

하지만 형광등은 길쭉하니 카트에 장바구니와 함께 넣고 끌고 다니는 게 편리하죠.

 

이제 카운터에서 결제하고 나가야 하는데 장바구니 전용 카운터를 사용하려 하는데 계산대의 마트 직원이 카트를 끌고 오는 난 보고 질색을 합니다.

 

"카트는 안돼요!"

 

난 바구니를 들어 보였죠. 그러자 직원은 또 다시 경고합니다.

 

"그럼 바구니만 올려 놓으세요."

 

그래서 바구니와 형광등을 올려 놓고 카트를 바깥 쪽으로 빼려 했습니다. 계산을 마치면 카트에 넣고 끌고 가려 생각했으니까요. 장바구니에 들어가는 정도의 물량이지만 무게가 꽤 나가고 게다가 형광등도 들고가야 하니 카트를 사용하는 게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산대 직원이 소리를 지릅니다.

 

 

"카트를 빼지 마세요! 여긴 장바구니만 계산하는 곳이에요!"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걸까요?

이 대목에서 저 카운터 직원과 말다툼을 해야 할 지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트에 장바구니 전용 카운터가 있는 이유는 산 물건이 많지 않은 손님들이 빨리 결재하고 나갈 수 있도록, 그래서 전체적으로 마트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죠. 즉 장바구니 카운터는 카트가 지나갈 수 없는 계산대가 아니라 장바구니 분량을 구매한 손님들이 신속히 결재하고 지나가는 창구라는 의미입니다. 그건 손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마트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장바구니 전용 카운터를 사용한 사람은 빨리 통과하는 대신 아무리 불편해도 카트를 사용해서는 안돼고  산 물건들을 무조건 양손에 들고, 또는 품에 품고 나가야 한다는 페널티 적용의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카운터의 저 직원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주 마주치는 부류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해도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권력'을 풀파워로 휘두르는 것이죠. 카운터 직원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절대 이 카운터를 통과할 수 없다며 기염을 토하는데 내가 이런 논리를 설명하며 그 친구를 설득해야만 할까요?

 

사실 선택지는 단순합니다.

 

1. 논리적으로 설명, 이해 못하면 말다툼, 매니저 불러서 불평불만 접수, 사과 요청.....이건 아무래도 갑질 같습니다.

2. 됐고 옆에 카트 채로 결재하는 카운터로 이동하거나

3. 알겠습니다. 빨리 계산해 주세요.....하고 장바구니 카운터 그대로 이용.....이건 갑질을 당하는 거지만.

 

몇년 전 같으면 1번으로 갔겠지만 오늘은 3번.

싸우는 것도 귀찮아요.

 

카운터 여직원은 뭔가 마음에 맺힌 게 있는지 모릅니다. 그 친구가 나한테 감정 있을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맡은 장바구니 카운터의 원래 취지가 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죠. 거길 통과하는 손님들에게 그가 페널티를 안겨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물론 그건 저 카운터 여직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가지고 닥치는 대로 풀스윙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사람들을 자기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게 재미있겠죠.

 

그런 인간들이 마트 계산대 뿐 아니라 모든 길목과 문턱마다 자리잡고 풀스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린 가끔 그 풀스윙에 얻어맞는 야구공처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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