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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엔 구마사제, 이슬람엔 루키야

beautician 2021. 3. 30. 12:26

루키야(Ruqyah): 이슬람 퇴마사의 세계

 

우스타즈(ustadz)인 아흐맛 쥬나이디(Ahmad Junaidi-왼쪽)가 방카-블리뚱 제도군의 동부 블리뚱(Belitung) 망가르(Manggar) 소재 한 이슬람사원에서 단체 ‘루키야’ 테라피를 행하고 있다. 루키야(Ruqyah)는 인도네시아에서 행해지는 신앙을 통한 치료방식의 한 형태로 흔히 이슬람식 퇴마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Ahmad Junaidi/Courtesy of Ahmad Junaidi)  

 

막 결혼식을 마친 키키는 결혼하자마자 며칠 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싸움으로 기분이 완전히 다운되어 버렸다. 그의 새 집에 깃들어 사는 유인원 닮은 악한 진(귀신과 마물의 사이쯤 되는 존재-역주)이 끝없는 말다툼을 유발시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어느날 키키의 아내가 기도하던 중 그 진에게 빙의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키키와 세 명의 무슬림 우즈타즈(uztaz-전문가)들이 이슬람식 퇴마술로 알려진 루키야(ruqyah) 의식을 행해 악한 진을 쫓아낼 수 있었다.

 

‘루키야’란 주문을 뿌리고 악한 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상은 2005년부터 상영된 TV 시리즈 아스타그피룰라(Astagfirullah)의 한 에피소드에 나온 장면이다. 루키야는 이 TV시리즈가 차용한 여러 유사한 주술의식 장면들 중 하나였으나 곧 이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현직 우즈타즈인 아흐맛 주나이디에 따르면 그 TV 시리즈는 루키야를 주류사회 대중에게 알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는데 특히 이미 그 업계에 있는 이들과 이제 막 뛰어들려 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루키야는 그 시리즈의 도움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아흐맛은 48세로 현재 마잘라 고입(Majalah Ghoib)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을 다루는 잡지의 편집팀을 이끌고 있다.

 

아흐맛과 그의 팀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루키야 테라피스트’ 들 중 하나이고 아스타그필루라 같은 쇼들도 자신들을 모델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초현실적 소재를 다루는 연속극들과 ‘리얼리티 루키야 쇼’ 같은 것들이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그의 마잘라 고입의 적극적인 자체적인 홍보에도 크게 힘입어 아흐맛은 굉장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매달 그를 찾는 고객들이 극적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아흐맛에게 자신과 가족들을 괴롭히며 빙의하려는 진과 다른 악령들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류세계 속으로

아흐맛이 또 다른 루키야 테라피스트인 파들란 아담 하심(Fadhlan Adham Hasyim), 아흐맛 자이로피(Ahmad Zairofi)와 함게 마잘라 고입을 창간하며 2002년 미디어 비즈니스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 이전까지 루키야를 테라피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당시 우스탓들은 상업적, 기업적 마인드가 배제된 퇴마의식을 개인적으로 행했고 클리닉이나 병원에서 행하는 치료행위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들이 만든 잡지는 이런 시각을 바꾸는 것에 우선 목표를 두었다. 그래서 진들이 출몰하는 미지의 세상을 이슬람의 시각으로 소개하고 그런 세계가 무당들과 주술의 전유물이란 생각을 타파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우린 일반인들로부터 그런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한 증언을 모아 잡지에 실었고 진과 악마와 도깨비들에 대한 유래와 배경을 설명했죠. 그러기 위해 우린 알꾸란과 하디스(Hadith: 마호멧이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이의 행동을 묵인한 내용을 기록한 책, 마호멧과 그 친구들의 언행록 -역주), 이슬람 학자들의 가르침들을 연구했습니다.” 아흐맛의 말이다.

 

그들은 자카르타 소재 마타람 거리의 좁은 골목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본부로 삼았다. 5천 부를 찍어낸 창간호는 날개 돋힌 듯 팔려 매진되었고 다음 달에는 7천 부를 찍었다.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잡지 출간빈도는 월간에서 격주로로 바뀌었다.

 

한편 아흐맛은 다른 한 명과 함께 잡지 사무실 한 켠에서 루키아 테라피스트 서비스도 키워갔다. 그 사업에는 법정 근로시간이란 것이 없었다. 아흐맛은 루키아 서비스를 위한 도구란 오직 알꾸란 뿐이며 무당(두꾼)들이 쓰는 부적이나 신물 같은 신비로운 물건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2004년에 이르러 마잘라 고입은 중부 자카르타의 좀 더 큰 사무실로 이전했고 루키야 테라피스트 서비스의 고객들도 더욱 늘어났다.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자신이 귀신에 들렸다고, 또는 육체적인 병에 걸렸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 즈음에 잡지는 그들의 서비스 명칭을 고입 루키아 샤리아(Ghoib Ruqyah Syarah)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이슬람과 토착 주술을 섞어 놓은 듯한 뉘앙스 – 역주)

 

마카사르에서 진행한 집단 루키야 의식 (Tribun Timur/Sanovra Jr.)  

 

이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십 수 명의 테라피스트들을 더 확보했고 고객들에게 질병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해줄 의대생들도 고용했다. 고입 루키야 샤리아에 연락을 해오는 고객들은 하루 200명에 달했다.

 

아흐맛에 따르면 TV나 영화사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제작할 작품들의 소재로서 실제 루키야 사례를 묻는다고 한다. 그의 사례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는 모든 쇼들은 이슬람 관점에서의 종교적 해법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고입 루키야 샤리아는 선뚜안 콜부 메타피시카(Sentuhan Qolbu Metafisika)라는 쇼를 통해 이 테라피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영적 접촉의 원리’ 정도로 번역되는 제목의 프로그램이다. 이 쇼가 방영되자마자 고객 수가 100% 증가했다고 아흐맛은 주장했다. 이 시리즈 이전엔 오전 7시반에 문을 열고 오후 4시반에 퇴근했던 아흐팟의 테라피팀은 그 후 밤 9시까지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쇼는 더 많은 이들에게 루키야 테라피스트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들어 아흐맛의 팀은 많은 도시들을 방문해 그 방법을 가르쳤다. 더욱이 인도네시아 울라마 위원회(MUI)도 2005년 무속을 금지하는 파트와(fatwa)를 발표하면서 루키야 방식을 공식적으로 축복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루키야 테라피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더욱 굳건해졌다. (파트와는 아슬람 학자가 이슬람 율법에 입각해 내놓는 의견으로 종교적 의견이지만 무슬림 국가에서는 세속법 이상의 권의를 갖는다-역주)

 

하지만 마잘라 고입도 인터넷의 부상에 떠밀려 2007년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아흐맛은 파들란, 자이로피 등과 함께 설립했던 클리닉을 떠나 2009년 독자적으로 ‘인도네시아 루키야의 집 재단’(Yayasan Rumah Ruqyah Indonesia)을 설립했다.

 

동부 자카르타에 개설한 이 클리닉에서 그는 매일 10명 안팎의 고객을 맞는다. 루키야 테라피 비용은 고객이 선택하는 테라피 종류에 따라 10만 루피아에서 30만 루피아까지 다양하다. 아흐맛은 2013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샤리아 루키아 협회(Ruqyah Syar'iyyah Indonesia Association – Arsyi)를 설립했는데 여기 등록한 루키야 테라피스트들은 1천 명이 넘는다.

 

2019년 Arsyi는 Go Ruqyah라는 앱을 출범시켰다. 이 앱은 원격의료처럼 고객과 인근의 테라피스트들을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아 연재까지 등록된 유저는 1천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마잘라 고입이 매인스트림에서 그간 해온 마케팅의 영향을 받아 루키야 테라피스트가 되려는 신세대들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찐타 루키야 샤리아 재단(Cinta Ruqyah Syar'iyah foundation)을 설립한 우즈타즈 슈하다 하나피(Ustadz Syuhada Hanafi)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잘 알려진 루키야 테라피스트이지 루키야 강사 겸 TV 방송인으로 ‘무속의 굴레를 끊는 것’을 자신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우린 인도네시아 각 지역에 최소한 한 개의 루키야 클리닉을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슈하다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부르나이 다루살람 등 인근 국가들을 여행하며 현지 고객들을 돕고 있다.

 

상업주의와 이슬람

루키야는 보편적인 의식이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또는 많은 형태의 신앙적 치료가 그렇듯 영적 플라시보 효과에 지나지 않는지는 알려지 았지 않다.

 

25세의 언론인 엘마 아디샤(Elma Adisya)는 취재를 위해 루키야 클리닉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아마 내가 그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아무튼 아무 효과도 없었어요.”

 

가자마다 대학교 종교와 이문화간 연구소(CRCS)의 아흐맛 문짓 조교는 루키야에 대한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를 2000년 초반부터 인도네시아에 불기 시작한 종교적 보수주의에 편승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새 밀레니엄에 들어서 이슬람의 레이블이 확산되며 상업적 상품에도 붙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정 부문 이슬람 정치세력의 출현에 힘입은 바 크다. “이슬람 레이블이 붙으면 판매하기 좋아지거든요. 그 시장은 매우 크고 소비자들은 이슬람 레이블에 끌리죠.” 아흐맛의 설명이다.

아흐맛은 본격적으로 루키야를 비난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치료방식에 대한 일말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아흐맛은 루키야 테라피스트들이 이런 말을 하길 원한다. “루키야를 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꾸란 뿐입니다. 진도 부적도 필요없어요.”

 

사실은 수고비 사례금도 필요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에두른 표현이다 (역주)

 

대표적인 루키야 이미지

 

루키야 행사도 일단 돈은 받는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JOHANES HUTABARAT March 13, 2021  /  08:00 am

https://www.thejakartapost.com/life/2021/03/12/ruqyah-the-mainstream-business-of-islamic-exorcism.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