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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다리 경찰청 유치장에..... 본문
친구가 또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2019년에도 르바란 때 끈다리 경찰청 유치장에 갇혀 나랑 인디아에계 영국인 변호사 비나이(Vinay)와 함께 도와주러 날아간 적이 있었는데 근 2년 만에 비슷한 일이 또 다시 벌어졌습니다. 술라웨시 동남부 '꼬나웨 우타라'라고 하는 곳에 여러 개의 니켈 광산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자 오랜 동료 릴리는 늘 누군가 마찰을 빚고 있는데 그건 그 사업에 큰 돈이 걸려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 니켈이 톤당 40불쯤 하나요? 바지선에 실으면 최소 3천 톤은 되니 12만 불짜리가 되는 거고 5만톤 벌크선에 실으면 2백만불이 되는 겁니다. 단위가 틀리죠. 잘만 한다면 돈이 잘 벌리는 장사여야 합니다.
하지만 늘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 이해가 첨예하기 대립하고 좀 더 챙기겠다고 무리를 하기도 합니다. 배 한 척 실어 나오는 이익이 일정한데 누군가 더 챙기겠다고 하면 반드시 그만큼 못챙기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죠.릴리는 광산주이면서도 늘 못챙기는 축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거기 장비와 인원 들여 들어와 릴리에게 톤당 몇 불 로열티 주기로 하고 채굴하는 회사들은 그렇게 만든 카고가 검사에서 기준 순도를 넘기지 못해 리젝트 되면 다른 방법을 통해 손해를 보전하고 심지어 이익까지 내려 했는데 그 일환으로 경찰과 결탁해 릴리를 감옥에 쳐넣고 밑도끝도 없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겁니다. 말도 안될 것 같은 그런 일이 광산 현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납니다. 문제는 그걸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이 당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물론 실제로 릴리가 뭔가 큰 잘못을 해서 저 사단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우주 배재할 수는 없습니다. 둘이 맞붙어 싸울 때 어느 한쪽이 완전히 결백한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또요? 왜요?"
전화기 너머 베트남 다낭에 있는 릴리의 남편 루벤의 목소리엔 황망함이 느껴집니다. 왜 안그렇겠어요.
"파트너사에서 자기 변호사팀을 내일 세 시 비행기에 태워서 끈다리로 보낸다는 거에요. 오늘 밤은 전화 좀 돌려보고 자료도 찾아본 다음 내일 아침에 저 대만사람들이랑 얘기 좀 해보면 도움될 거에요."
다낭에서 큰 공장을 가진 벨기에 회사 CFO인 루벤은 20여년 전에 내가 소개해 줘서 릴리랑 결혼한 잘 생긴 벨기에 남자입니다. 난 하나도 잘못한 것 없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괜히 그에게 미안해집니다.
"릴리 때문에 또 피해자가 생기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루벤은 이미 릴리가 잘못한 거라 판단을 내린 듯 얘기하지만 말은 그리 해도 가장 릴리를 유치장에서 빼내고 싶은 건 당연히 그일 것입니다. 릴리는 딸이 보는 앞에서 술라웨시에서 온 경찰들에게 잡혀 끈다리로 압송되어 갔습니다. 딸은 그냥 엄마가 끈다리에 갔다고만 루벤에게 말했지만 똑똑하기 짝이 없는 딸은 사람들 걱정시키기 싫어 자긴 이해 못하는 척,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겁니다.
전화를 끊던 루벤의 기분이 썩 좋을 리 없었지만 나 역시 올해 첫 전화통화가 기껏 아내가 유치장 들어간 얘기였다니 아쉬울 따름이었어요. 스리랑카와 상해를 거쳐 지금 다낭에 가 있는 그는 사실 인도네시아를 떠난지 10년도 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애틋한 가족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건 아마도 딸에 대한 루벤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이겠죠.
"이런 일 있으면 미리 얘기했어야지. 어떻게 대만 파트너한테 얘기를 듣게 해?"
이번엔 릴리의 비서 격인 노피입니다.
"저도 아직 얘기 다 듣지 못했어요.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릴리 고모를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어요."
지나 2019년에도 릴리를 유치장에 넣은 사람들은 경찰에 손을 써서 릴리의 면회도 모두 막았었죠. 그런 식으로 유치장 안의 사람을완전히 고립시켜 놓고 자기들 원하는 방향으로 네고를 하려는 것이죠.
"네가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해. 내일 대만팀 들어가면 네가 상황설명하고 데리고 다녀야 해."
노피는 2019에도 이런 상황을 함께 겪었던 친구입니다. 릴리의 조카이기도 하죠. 두 번째 겪는 일이니 좀 더 매끈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02년에 끈다리에서 새하얀 할아버지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요즘도 일년에 한 번 쯤 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날 처음 만나 그분은 이런 말을 했죠.
"내 딸 둘이 자카르타에 가 있으니 그 애들이 자카르타에 있는 동안 자네가 책임지도 돌봐 준다고 맹세할 수 있겠나?"
그는 굳이 나에게 맹세를 시켰고 그건 일종의 계약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릴리의 아버지였는데 릴리가 8남매의 막내였으니 아버님의 연세는 아주 높았고 불과 몇 개월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그리고 그 맹세만이 남았습니다. 내가 돌봐주기로 했던 그분의 두 딸 중 하나가 릴리입니다.
내가 릴리를 도우려 노력하는 건 그날의 맹약이 주술의 힘을 빌어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 약점의 이름은 오지랍입니다.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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