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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의 전설 (창세기 3장) 본문
오랜 만에 [하다하다 별 걸 다] 시리즈 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경계를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후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는 장면은 사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인간이 성장해 나가는 보편적인 모습을 성경 초입에 상징과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성장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죠.
설마 정말로 선악과란 나무 열매가 실제로 있고 유창하게 사람의 말을 하는 뱀에게 우리 선조가 속아 넘어가 그게 원죄가 되어 후손인 우리가 그 원죄를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진 않겠죠?
성서의 해당 부분 원문은 이렇습니다.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1)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와는 왜 뱀을 만났을까요? 그것은 뱀이 피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그 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다니는 그 뱀이 아닙니다. 뱀은 '시간'을 뜻합니다. 인간은 시간을 피할 수 없어요.
선악과는 Adam's apple의 일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과처럼 생긴 과일이었을까요? 무려 인간의 눈을 밝혀 선악을 알게 하는 것인데요? 그리고 그걸 먹고 알게 되는 첫 번째 선악의 구분이란 게 왜 '옷을 입지 않으면 부끄러운 것이다' 였을까요? 그건 어린 아이가 자라나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을 수 있는 나이쯤 되면 판단력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아는 눈이 밝아졌다는 얘기는 기저귀를 벗을 나이쯤 되면서 인간적인 판단력이 생성되기 시작한다는 당연한 성장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속고, 누가 잘못했고, 그래서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사건이 아니란 말이죠.
선악과를 따 먹어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니라 사과를 베어 먹을 나이쯤 되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지식과 상식을 쌓아가기 시작할 최소한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4~7세 사이의 아이들은 비로서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 창피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하고 누군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면 (성서에서처럼 성난 하나님이 자기들을 찾아 나선 것처럼)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뒤에 숨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기 이전의 어린 아이들은 기저귀를 차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사자가 군침을 흘리며 다가와도 왜 무서워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당연히 인간이 태어나 적당한 나이에 이르면 판단력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이죠. 그게 원죄가 될 리 없는 일입니다.
그런 후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들이 성장하면 당연히 벌어지는 일들과 각각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쫒겨난다는 것은 남녀가 결혼하면 분가하여 따로 가정을 구축하는 것을 뜻하죠.
성장한 남자는 농사를 지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물론 '농사'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모든 종류의 노동을 뜻합니다. 일하는 것은 모든 남자들, 사실은 모든 인간들의 의무라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창세기가 쓰여질 당시는 물론 근세기 산업혁명 당시까지도 어린이란 개념은 없었다는 겁니다. 어린이는 그냥 작은 어른이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몸도 작고 뼈도 약하지만 노동현장에 내몰려 이런 저런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영국 산업혁명 시대엔 그렇게 노동에 내몰린 어린 아이들이 과로와 영양실조로 어린 나이에 죽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성서에서 남자들에 나가 일해야 하는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그런 소년노동에 내몰려야 하는 당시의 생활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한편 성장한 여성이 출산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성인여성의 역할입니다.
그 의무를 다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임을 창세기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성서의 이 부분을 왜 인간 원죄의 현장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최초 성서의 저 부분이 꼭 저렇게 쓰여 있었을까요?
성서의 기자는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하고 겪어야 하는 일들은 왜 신이 내릴 형벌이라는 뉘앙스를 주려 했던 걸까요? 그는 무위도식하는 나태한 삶, 임신도 출산도 없는 불임의 세상이 인류가 누렸어야 할 행복이라고 강조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은 당시 시점에서 보았던 인간들의 전형적인 성장과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현대 신학은 시작부터 해석이 틀렸으니 그 뒤의 모든 해석도 다 틀린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부조리와 고통을 고작 뱀이나, 오랜 선조 한 명, 그것도 여성 선조에게 돌리는 것은 매우 비겁한 일인데 기독교와 당시 권력을 가졌던 자들은 성서 초입에서부터 그런 생각을 '원죄'로 포장하여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는 파렴치함을 무릎쓰며 성서와 에덴동산의 전설을 통치기제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202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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