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기록

코로나 시대 재외동포: 무너진 최후의 보루

beautician 2021. 2. 19. 11:26

코로나 시대 재외동포: 무너진 최후의 보루

 

 

인도네시아는 지난 1월 13일 본격적인 중국산 시노백(Sinovac)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해 이제 한 달 여 시간이 지났다. 1차 접종 2주 후 한 번 더 접종해야 하는 시노백 백신의 1차 접종자는 2월 15일 110만 명에 육박했고 2차 접종자는 그 절반인 48만 명을 조금 넘었다. 1월 13일 첫 접종자로 나섰던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1월 27일 2차 접종을 받았고 해당 장면이 유튜브로 생방송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집단면역을 위해 전체 인구의 70%인 1억 8150만 명을 접종대상자로 하여 이중 의료진 및 공공분야 인력 약 4,020만 명에게 올해 4월까지 우선 접종하고 나머지 인구에 대해서는 2022년 3월까지 모두 무료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월 15일 인도네시아 시보백 백신 접종현황 (Kawalcovid.19.id 페이스북 캡쳐) https://www.facebook.com/KawalCOVID19/?ref=page_internal  

 

지난 12월 누적확진자 백만 명, 사망자 3만 명을 넘어선 인도네시아는 백신접종 개시에도 불구하고 신규확진자가 2월 초까지 한 달 가까이 하루 1만 명대를 넘다가 2월 9일부터 8천 명대로, 14일부터는 6천 명대로 떨어져 그래프로만 보면 갑자기 안정세로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백신 접종 상황이 아직 미미한 상태이고,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발령된 대규모 사회적제약조치(PSBB)는 전환기 발령으로 일부 약화되었다가 1월 11일부터 자바섬 대부분과 발리에 사회활동제한조치(PPKM)로 강화, 그리고 2월 9일부터 소규모 지역단위 사회활동제한조치(PPKM Mikro)로 다시 완화되는 등 방역수위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등락을 반복하고 있어 특별한 반전요인 없이 신규 확진자가 감소한 것은 단순히 검사수 감소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분석된다.

 

 

2월 15일(월) 인도네시아 신규확진자 발생 추이 ( https://covid19.go.id/peta-sebaran )

 

현지 한인사회도 코로나 상황에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작년 6월 26일 현지에서 한국인 확진자가 처음 확인된 이후 지난 1월 18일 현지 한인매체인 한인포스트 중간집계에 따르면 한국인 누적확진자 90명에 사망자 5명이 발생해 당시 인도네시아 평균 코로나 사망율 3%를 크게 웃돌았다. 당시 한국인 확진자 중 한 명은 한화 1억원 넘는 비용을 지불하며 에어앰블런스를 불러 한국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았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당시 통계에서 한국에 도착한 후 확진된 인도네시아 교민들이 현지 한국인 확진자보다 훨씬 많은 147명이란 점이 주목을 끌었다. 이는 그간 현지 한국인들 중 코로나 증상이 있는 이들이 이를 쉬쉬하며 몰래 해열제를 한 웅큼 먹고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항간의 소문이 수치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거의 한 달이 지난 2월 15일 업데이트된 한인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현지 한국인 확진자는 97명으로 7명 증가, 귀국 확진자는 184명으로 37명이 증가해 현지 한인동포들이 코로나 확진 시 현지 방역당국이나 대사관에 보고하기보다 신속한 귀국을 선택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국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사이트 (http://ncov.mohw.go.kr/search/search.jsp)를 통해서도 확인가능한 해외유입 코로나 확진자들 중 인도네시아에서 도착한 한국인 숫자가 지금도 거의 매일 추가되고 있다.

 

이는 의료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감염되면 엄청난 금전적 지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인도네시아보다 한국의 코로나 정책과 의료시스템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며 아마도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서만의 문제는 아닐 듯하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거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코로나 증상이 발현된 사람, 또는 래피드테스트 양성결과를 받은 사람들이 현지 보건당국에 보고되는 PCR 검사를 추가로 하지 않고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다. 나름 주변 감염을 막기 위해 꽁꽁 동여매고 구석자리에 앉는다 해도 결과적으로 승무원과 다른 승객들을 위협하는 행위지만 코로나 팬데믹 세상에 내던져진 현지 한인교민들에게 그것은 어쩌면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것이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최선의 살 길을 찾으려는 그 결정을 무조건 이기적인 행위라고 폄훼하며 비난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난 2월 10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세계 해외입국 내국인에 대해 출발일 기준 72시간 내 발급된 PCR 음성확인서 제출의무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그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렸다. 해당 확인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한국에 도착하더라도 임시생활시설에서 자비로 14일 격리해야 하는데 정작 문제는 현지 발권 카운터나 탑승 게이트에서 항공기 탑승 자체가 거부될 것이란 점이다.

 

인도네시아 방역당국의 백신접종 계획엔 현지 외국인들에 대한 내용은 누락된 상태이고 본국은 재외공관을 통한 1월 29일 공지를 통해 재외동포들의 접종계획을 밝히고 있으나 귀국해서 접종하라는 취지이므로 귀국 시 자가격리 14일, 대부분 백신이 2주 후 한번 더 접종해야 하니 또 14일, 인도네시아 돌아온 후 호텔격리 5일 등을 감안하면 근로비자를 받아 현지 직장을 다니는 동포들로서는 시간 상 백신접종 목적 귀국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지 한인사회의 실망감과 상실감이 현지 한인 소셜미디어를 달구는 가운데 2월 15일자 한인포스트는 “현명한 묘책을 강구하여 자국민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는 동포들의 목소리를 싣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적용되고 있던 PCR 음성결과지 소지의무가 한국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2월 24일부터다. 불안감에 휩싸인 교민들의 억울한 감정과는 별도로, 바이러스 유입을 막아야 하는 본국 방역당국의 입장 역시 충분히 이해된다는 측면에서 예외적으로 2주의 시간을 두고 미리 공지한 것도 나름 당국의 배려로 읽힌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재외동포들을 위한 그 배려의 폭을 조금 더 넓힐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