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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 특징, 좀비 영화 매니아의 멘탈

beautician 2020. 8. 16. 11:59

좀비 영화 특징, 좀비 영화 매니아의 멘탈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좀비 영화에 매료된 게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아니,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이었던가?

 

귀신영화 별로 좋아하지 않던 시절에 처음 본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은 충격적이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로부터 좀비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내 대부분의 공포영화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게 분명한 선이 있는 것 같은데 난 귀신이나 괴물들이 나오는 공포영화는 즐겼지만 잔혹한 살인마나 집단살인 같은 건 좋아하지 않았다. 뱀파이어, 좀비, 늑대인간, 백상어, 거대한 악어 등등은 좋지만 <텍사스 체인쏘 살인사건>(Texas Chainsaw massacre)이나 <힐스 아이스>(Hills Have Eyes) 류의 기형인간들이 살육을 저지르는 내용,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I Still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류의 살인마 이야기, <호스텔>(Hostel) 같이 살인공장을 다룬 영화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얘기는 질색이지만 그 살인범이 <13일의 금요일> 제이슨이나 뱀파이어라면 즐겨보게 되는 거다. 내 취향을 가르는 선은 대략 어디쯤에 그어진 것일까?

 

<호스텔 2>

 

그건 결국 판타지와 현실이란 차이점 아닐까 싶다.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을 공포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절대 현존할 리 없는 공포는 관심의 대상이 되어 심지어 매니아처럼 구석구석 찾아 구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천, 수만 편의 영화에서 지구는 종말을 맞고 전 세계의 유명한 귀신들로부터 이름도 모를 지역구 동네귀신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최소한 그런 시도를 해보는 것을 보면 나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 분명 적지 않다는 반증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좀비 영화라 하겠다. 좀비 영화들은 분명 많은 매니아들을 양산했는데 그 콘텐츠의 어떤 부분이 중독성을 가진 것일까? 좀비 영화의 전형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그 매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대략 추론할 수 있다.

 

1. 누구나 평등하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사랑하던 애인도, 가족도, 영웅도, 위선자도, 심지어 갓난아이도 물리면 좀비가 된다. 그러니 이 클리셰를 깨는 건 모험이자 영화의 성공을 위한 도전이 된다. 영화 <28 Weeks Later>에서 주인공 남매의 엄마는 좀비에게 물리고도 살아남았다가 나중에 자길 버리고 도망간 전력의 남편이 좀비가 되자 잡혀먹힌다. 그런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곤 이 법칙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28 Weeks Later>

 

2. 좀비는 죽여야 한다.

좀비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 좀비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서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왜들 그러는지 몰라. 좀비라도 살아 있어야 장땡이고 그래야 혹시라도 사람으로 회복되거나 좀비 왕국에서 왕이 될 가능성이라도 있지. 아무튼 좀비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법칙은 좀비 세계관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이다. 좀비가 되면 그가 엄마든, 아빠든, 사랑하는 딸이든, 머리를 쏴 죽여도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인간을 얽어매고 있던 윤리의 굴레에서, 우린 좀비 영화를 보는 동안 완전히 벗어나, 어떤 의미에서 훨훨 날아다니게 된다. 좀비 영화를 통해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사이코패스가 파괴적 쾌락 속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 <Z-World War>에서 아파트 옥상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헬리콥터를 타려던 주인공은 방금 전 자길 구해줬으나 지금은 좀비가 된 중동출신 은인 부부 머리에 사정없이 총격을 가한다.

 

<Z World War>

 

3. 절대 좀비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게 좀비가 된 엄마 아빠를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이 법칙을 깬 <웜바디스>(Warm Bodies>같은 영화는 재미있긴 했지만 윤리적 카타르시스는 떨어진다. 하지만 제작자는 그런 관객들의 의식 속 갈망을 알기라도 한 듯 회복 가능한 좀비와 달리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스켈레톤을 등장시킨다. 육신이 백골로 변해버린 이들은 죄책감 없이 죽여도 좋다.

 

 

4. 좀비는 머리를 쏴야 죽는다.

좀비 영화 초기엔 그런 법칙이 없었다. 그래서 잘라진 팔도, 잘라진 머리도 살아서 돌아다녔다. 하지만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입장에선 그래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어서 언젠가부터는 뇌를 부수면 좀비도 죽는 것으로 세계관과 법칙이 고착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나오곤 하는, 무덤에서 시체들이 일어나는 장면은 일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미 매장된 시신들은 뇌도 썩어 없어졌거나 총에 맞은 것 이상으로 훼손되어 있을 텐데 말이다.

 

<레지던트이블 2>

 

5. 좀비는 종교관도 파괴한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환생을 한다는 게 그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좀비영화엔 그런 게 없다. 죽으면 좀비가 되어 인지능력을 잃고서 지독한 공복을 채우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다가 언젠가 소멸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공복이란 측면에서 동양무속의 아귀와 비슷한데 그래서 <킹덤>같은 한국 좀비영화에선 이를 약간 변형해 <야귀>를 등장시키는 것 같다. 아무튼 내세도 환생도 없어진 세계. 좀비 영화는 진정한 아포칼립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킹덤>

 

이렇게 보면 좀비영화가 진정 매력을 발산하는 이유는 기존 윤리관, 종교관의 파괴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좀비영화는 가장 참혹한 영상 속에서 윤리와 종교를 파괴하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관객들에게 최고의 카타르시스와 모든 속박으로부터 심리적 해방을 선사하는 것이다.

 

2020년에 전세계에 창궐하는 코로나-19를 접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좀비 아포칼립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구든 전파된다는 점, 그래서 스스로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점, 코로나에 걸리면 가족이든 절친이든 일단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등…, 그래서 가끔은 코로나 좀비들이 내 아파트 복도 앞으로 몰려드는 꿈을 꾸기도 했다.

 

좀비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반드시 생존자가 있다는 점이고 대개는 바로 내가 그 생존자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는 점이다. 하지만 좀비 세상이 정말 도래한다면 우린 저 길바닥을 서성거리고 있을 좀비들 중 한 명이 되어 있기 쉽다. 요즘 좀비영화 트랜드가 변하는 바람에 먹이감, 타겟이 나타나면 두 손 뻗고 어~~ 거리면서 뒤뚱뒤뚱 걸아가야 하는지(<레지던트이블>시리즈 까지는 좀비들이 천천히 걸어다녔다) 아니면 뛰어다녀야 하는지(<28 Days Later>에서 전력질주하는 좀비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고민하면서 말이다.

 

걷는 좀비
질주하는 좀비

 

 

 

2020.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