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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 부록(5) 본문
제5장 : 디포네고로의 아내들
디포네고로 왕자가 스스로 후궁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열등감으로 왕위를 사양하기도 했지만 그가 평생 8명의 여인과 결혼한 것은 족자 술탄 왕가에서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문헌에서는 그의 아내를 9명까지 헤아리기도 합니다,
그는 1803년 10월 하멩꾸부워노 1세의 정실이었던 증조할머니를 여읜 후 더욱 이슬람에 심취하며 뜨갈레죠 일대에 사는 울라마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족자 북쪽 슬레만(Sleman) 지역 이슬람 선생의 딸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신부의 이름은 라덴 아유 렛노 마두브롱토(Raden Ayu Retno Madubrongto)였습니다.
그녀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첫 번째 부인입니다. 그녀는 잘 생긴 아들을 낳아 라덴 마스 온또위료라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시절 이름을 붙여주는데 1825년 8월 이후엔 디포네고로 2세 왕자, 1830년 이후엔 라덴 만뜨리 무하마드 응아립(Raden Mantri Muhammad Ngarip)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는 훗날 바바드 디파나가라 수리아 알람(Badad Dipanagara Surya Alam)이라는 예언서 성격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아버지의 종교적 의무를 다할 때에 자신의 어머니가 늘 그 곁을 지켰다고 거기 기록하고 있습니다.
1807년엔 지빵 빠놀란(Jipang Panolan)의 영주 뚜먼궁 나타위자야 3세(Raden Tumenggung Notowijoyo III)의 여식 라덴 아젱 수빠드미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녀는 화교 혼혈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아버지 술탄 하멩꾸부워노 3세가 여러 정치적 이유로 라덴 아젱 수빠드미(Raden Ajeng Supadmi–이후 라덴 아유 렛노꾸수마(Raden Ayu Retnokusuma)라고 불림)와 보다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리도록 종용하였고 디포네고로 왕자가 마침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수빠드미를 결혼 2개월 전에 처음 만나 얼굴을 익혔지만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은 것 같고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화교 혈통과 관련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네덜란드인들뿐 아니라 화교들 역시 이슬람을 훼손하는 이교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대한 결혼식이 1807년 2월 27일 거행되었는데 당시 지방총독이 결혼선물로 길이 1.5미터짜리 문서기록용 가죽을 바쳤다는 세세한 내용이 당시 지방총독의 문서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디포네고로 2세 왕자의 기록에 따르면 왕자는 한번도 아내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들 사이의 유일한 아들을 낳은 후 거의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라덴 아유 렛노꾸수모는 줄곧 족자의 끄라톤 궁전에 살았는데 매우 오만한 성격이었고 디포네고로 왕자의 첫 부인 라덴 아유 마두브롱토를 함부로 대했다고도 전해집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기록한 디포네고로 2세 왕자는 정실 마두브롱토의 아들로서 두 번째 부인 수빠드미에 대해 호의적으로 기록하지 않을 만한 인간적인 이유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수빠드미가 1808년에 낳은 아들은 디포닝랏 왕자(Pangeran Diponingrat)로 1856년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집니다.
1808년에 디포네고로 왕자는 라덴 아유 렛노데와티를 세 번째 아내로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직 뜨갈레죠에 살던 시절, 그러니까 자바 전쟁이 시작되기 전, 마두브롱토와 렛노데와티는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1810년 초 디포네고로 왕자는 다시 길을 떠나 왕국의 동쪽지역을 여행하던 중 라덴 뚜먼궁 롱고 쁘라위로슨티코 (Raden Tumenggung Ronggo Parwirosentiko)의 딸 라덴 아유 찌트로와티(Raden Ayu Citrowati)와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지만 라덴 마스 싱론을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마디운 폭동에서 진압군으로 나선 네덜란드군에게 아버지 라덴 롱고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1814년 9월 28일에 그는 다섯 번째 부인인 라덴 아유 마두렛노(R.A. Maduretno)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하멩꾸부워노 2세의 딸 라뚜 마두렛노와 라덴 랑가 쁘라위라디르요 3세(Raden Rangga Prawiradirjo III)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으니 그와는 고종사촌 관계였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그녀의 입지를 더욱 굳혀 주었던 것인지 자바 전쟁 중이던1828년 2월 18일 디포네고로 왕자가 대관식을 올릴 때 그녀는 깐젱 라뚜 끄다톤(Kanjeng Ratu Kedaton)이라는 칭호로 왕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왕가의 남녀들 이름은 당사자의 위상을 나타내는 호칭이므로 역사 곳곳에 같은 호칭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중심부’, ‘성스러움’을 뜻하는 끄다톤이란 이름의 왕후들도 그래서 자바의 역사 속에 여럿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1822년엔 라덴 아유 렛나닝시(Raden Ayu Ratnaningsih)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자바 전쟁 내내 디포네고로군을 종군하며 남편의 곁을 지켰고 훗날 디포네고로 왕자가 유배당했을 때에도 유배지까지 동행해 아내로서의 소임을 다합니다. 유배지에서 그녀는 라덴마스 낀더르(Raden Mas Kindar-1832), 라덴 마스 사르꾸마(Raden Mas Sarkuma-1834), 라덴 마스 무따와리딘(Raden Mas Mutawaridin-1835), 라덴 아유 뿌뜨리 무나디마(Raden Ayu Putri Munadima-1836), 라덴 마스 둘까블리(Raden Mas Dulkabli-1836), 라덴 마스 라잡(Raden Mas Rajab-1837), 라덴 마스 라마지(Raden Mas Ramaji-1838), 라덴 아유 빠드모디뿌로(Raden Ayu Padmodipuro)를 출산했습니다.
1828년 1월, 디포네고로는 디포위요노 2세(Dipawiyana II) 라고도 불리던 뻐능아 왕자(Pangeran Penengah)의 여식, 라덴 아유 렛나닝룸(R.A. Retnaningrum)과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최소 12명의 아들과 10명의 딸을 두었고 오늘날 그 후손들이 인도네시아는 물론 호주, 세르비아, 독일, 네덜란드, 사우디 아라비아 등지까지 퍼져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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