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연관검색 알고리즘 본문
연관검색 알고리즘
어느 정도 나이 먹고 나면 어떤 단어나 상황이 닥치는 순간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생긴다. 관념이나 특정 장면일 수도 있는 그것은 인터넷 포털의 연관검색어처럼 사뭇 자동적이지만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자동차’라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의 드림카를, 또 어떤 이는 가장 치명적이었던 교통사고 경험을 떠올리는 것처럼.
인생의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난 상무대 시절 소대전투 훈련을 떠올리곤 했다. 무등산 산자락을 깎아 만든 넓은 개활지는 점점 좁아지면서 높은 고지를 향했고 적 진지 턱 밑, 거의 수직으로 난 비탈에서 우린 M16 소총에 착검하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 올라갔다. 그때 그 가파른 비탈에 수없이 미끄러지면서 전투라는 게 영화와 달리 전혀 낭만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을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포탄과 수류탄이 작렬하여 파편을 흩뿌리고 총탄이 빗발쳐 살을 찢고 뼈를 쪼개는 진짜 전장이었다면 우린 대부분 그 비탈 밑 수북한 시체더미 속에 눕게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은 고지점령. 한국전쟁 막바지에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대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양측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인명피해를 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의 전투 속에서 매번 비탈에 마주친 나는 마침내 고지를 점령해내는 승리자일까? 아니면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수많은 전사자들 중 한 명이 될 것인가? 죽음이 창궐하는 비탈 밑에 웅크려 장미빛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하지만 천운을 얻어 거기서 살아나면 전투력이 놀랍도록 상승한다. 무엇보다도 맷집 부분에서.
몇 해 전 실로 오랜만에, 온통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선 일이 있다. 그 익숙한 감각은 새삼스러움을 넘어 반갑기까지 했다. 씩씩거리며 한인회 도서관에 들어선 자그마한 체구의 회장이 곧바로 나를 참소하기 시작하자 거기 모인 어르신들은 돌연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이미 사전 교감을 했을 테니 이렇게 전개될 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금전까지 짐짓 아무렇지 않게 나와 담소하던 그들이 사실은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했을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적대적인 단체와 양다리를 걸쳐 우리 모임에 위해를 가하는 저 인간을 제명해야 합니다’ 교민사회 문인들을 대변할 것만 같았던 문예모임의 회장은 그렇게 기염을 토했고 ‘맞아요, 어젠 저 인간이 나한테 욕까지 했어요’ 사무국장은 눈물마저 찔끔 흘리며 장단을 맞췄다. 정말 수상한 점은 한인회 부회장이 상공회의소 이사를 동시에 맡으면 ‘적극적이며 다양한 교민사회활동’을 한다고 칭송하지만 두 개의 문예단체에 함께 이름을 올리면 ‘박쥐같이 양다리 걸치는 인물’이 된다는 부분이었다. 문인들의 넘쳐흐르는 감수성과 창의력이 어쩌면 그런 식으로 발현된 것이리라. 하지만 이치에 맞든 그렇지 않든 자기들끼리 몰래 합을 맞춘 뒤 어떤 귀띔도 듣지 못한 당사자 등에 불시에 함께 비수를 꽂는 것이 매우 고전적인 수법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억장이 무너질 법한 그 상황에서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건 표절이라고 외치고 싶은 유사한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태초처럼 오래 전으로 느껴지던 지난 세기 막판에 공장장과 창고장은 물론 시내 지사장까지 아침 일찍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내가 공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맹공격을 퍼부었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공장장을 통해 비자금 명목으로 횡령한 회사돈을 후임공장장으로 잠정 내정되어 부임한 내가 함께 은폐해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난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그래서 그들은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 본사 시절 가깝게 지냈지만 결정적 이해관계가 뒤틀리자 우린 그렇게도 간단히 서로를 파괴해야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들은 나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그간 미행을 붙이고 뒷조사 한 결과들을 그날 아침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침을 튀기며 위협을 가했다. ‘내 말 안들으면 너희 가족 절대 무사히 한국 돌아가지 못해!’ 그런 말을 정말 듣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칼집이 난 내 끼장 자동차 바퀴가 출근 길 고속도로에서 터져버렸고 이듬해 난 결국 한화그룹에서 떨려나왔다. 그들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내 밥줄을 끊어 당초의 악의를 관철한 것이다.
그 사건이 아직도 생생했으니 그날 한인회 도서관에서 전개되던 상황에 실소가 터진 건 당연했다. 장창에 심장 근처를 꿰뚫려 본 경험에 비추어 그 정도 아담 사이즈의 과일 깎는 칼로는 몇 번을 찔려도 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슨 생사여탈권이라도 쥔 듯 겁박하는 모습에 난 한 마디 응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교민사회 특정 모임에 가입하는 건 누군가의 용병이 되어 다른 누군가와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닌데, 양다리요?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들이 정작 문제삼은 것이 양다리 문제가 아니라 등단장사를 비난한 내 블로그 글임을 알게 된 것은 얼마 후의 일이다. 돈을 받고 작가와 시인으로 등단시키는 문단의 반칙행위를 지적한 그 글에 왜 발이 저렸을까? 하필 그 시기에 단체 차원에서 또 다른 이와 물밑에서 은밀하게, 그러나 성공적으로 진행하던 등단장사가 그 글로 방해를 받았다 한들 그걸 내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 글을 블로그에서 내리고 사과문 게재하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그들은 당초 계획한 대로 날 공식 제명했지만 밥줄을 끊지는 못했다. 맷집이 좋아진 탓일까? 과도가 무뎠던 탓일까?
세상의 모든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연상시켜야 할 문학과 문단이 등단장사 같은 파렴치한 개념을 연상시키는 건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등단’이란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난 이젠 한인회 도서관의 그 장면을 떠올린다. 다음과 네이버 같은 인터넷 포털의 연관검색어 알고리즘은 알 길 없지만 우리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연관 장면’ 연상의 알고리즘은 아마도 빈도보다는 ‘어처구니 없음’에 방점이 찍힌 모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