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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월요병의 근원

beautician 2019. 9. 30. 10:00


월요병의 근원 





사람 마음 간사하다는 걸 스스로도 자주 느낍니다.


몇 번째인가도 모를 파국이 다시 찾아온 건 2013년 말이었습니다. 

한국 공급선의 내 등 뒤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자카르타 시장에서 내가 파는 것과 똑같으 제품을 더 싼 값으로 파는 것을 보고 알았을 때의 일입니다. 10년동안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내 시장에 파키스탄 경쟁사가 무혈입성했던 것입니다. 그 파키스탄 회사를 탓하진 않습니다. 찬스를 노리고 상대편의 급소를 치는 건 상업사회의 인지상정이니까요. 하지만 내게 팔던 제품을 몰래 경쟁사에게 팔면서 내 입지를 무너뜨린 한국 공급선은 분명한 악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거래를 시작하던 시절, 앞으로 영원히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으면서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나락을 헤매야 했고 다른 기회를 찾기 위해 베트남에서 1년 이상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을 자카르타에서 처음 겪었던 것이 1998년입니다. 동남아 외환위기와 IMF 사태 당시.

그런 다음이 2002년이었죠. 완전한 파산. 저 밑바닥에서 굴렀던 시절.

그래서 간신히 파산의 구덩이에서 기어나와 나름대로 사업을 일궜던 것이 그렇게 2013년말부터 급격한 하향곡선을 탔습니다.


2016년 재외동포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그런 환경에서였죠.

문학적인 결과물을 낸다는 것은 그렇게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그래서 작가들은 늘 배고픈 걸까요? 이름 뒤에 '작가'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했지만 2017년 하반기에는 영구귀국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본격적인 번역작업을 시작하고, 출판도 계약하면서 전문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 길이 매우 힘들 것임을 알았죠. 


수입이 뒷받침되지 않은 '비쁜 일'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전장에서 부하들에게 멋들어진 격려를 해주고 전선 맨 앞에서 달려나가며 모범을 보이다가 적탄에 제일 먼저 맞아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니까요. 내 목숨을 위해 남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것이 이 사회의 전형이자 모범이며 돈을 벌려면 그리해야 한다는 걸 늘 보아왔지만 그걸 배우지 못한 난 학습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만약 다시 어딘가 조직에 들어가 월급 받으며 일을 하게 된다면, 그래서 생활이 안정된다면 정말 다행스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비록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매월 일정액의 돈이 생기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월요일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스스로를 보며 인간 마음의 간사함을 새삼 깨닫는 겁니다.

누군가의 직원 또는 브로커 또는 안내인이 되어 일을 한다는 것이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결과적으로 그 성격이 월급 주는 이를 위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란 사실은 그 특정 업계의 문제일까요? 조직 상사의 문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내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라 그럴까요?


사람의 마음 만큼이나 사람의 말 역시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쉽게 잊습니다. 그런 약속을 했다는 사실조차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상대방이 초심을 잃었다고 비난하곤 하죠.


그래서 월요병이 생깁니다.

똥물이 쏟아져 내릴 줄 알면서 다시 하수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심정.



언젠가 다시 때가 오면 난 나를 위해 일하는 일들에게 그런 감정 들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2019.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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