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강연·세미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등장한 한국인 투사의 역할 (히스토리카 세미나)

beautician 2019. 8. 17. 12:39





2019년 8월 16일 한국 광복절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사이에 낀 금요일에 한국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이하 UI대) 사회문화학부 9번 건물 대강당에서 현지 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가 주최하는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원제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등장한 한국인 투사의 역할'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양칠성 세미나'라고 알려진 것으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행사였습니다. 작년과 다른 점이라면 전원 인도네시아인 발제자로 구성되었던 작년과 달리 이번엔 한국인(접니다) 발제자가 한 명 더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후원요청을 거절했던 한국문화원은 이날 오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에서 공부한 경험' 토크쇼를 후원했고 오후 세미나에는 전조영 공사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재난대책 담당 류완수 영사가 쭉 자리를 지켰습니다. 후원도 하지 않고 나중에 양칠성로 명명식에 나오는 건 얌체짓이라고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꼬집은 것을 보고 찔린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부터 후원하려 했던 진심을 제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 그 양칠성로 명명식은 우리의 현충일 격인 올해 11월 10일 인도네시아 영웅의 날에 가룻에서 거행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음을 히스토리카 압둘바시드 회장에게 확인했습니다. 해당지역 부빠띠(군수)가 히스토리카 발기인 중 한 명이자 마잘라 히스토리아 기자인 헨디 조(본명 헨디 조하리)를 불러 최근 관련 협의를 했다고 하는군요.


이날 세미나에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을 포함해 300명 정도가 참석해 진지하게 경청하고 질문을 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측에서도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을 포함해 연합뉴스, 한국일보 등 국내 매체와 한인뉴스, 데일리인도네시아 등 교민매체들이 참석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당일 성혜미 특파원이 바로 송고된 연합뉴스의 관련 기사는 다음포털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로 등재되기도 했고 그 영향인지 양칠성 태그를 단 이 블로그의 다른 게시물들도 부쩍 조회수가 늘어났습니다.


사실 당일 세미나에서 양칠성을 중점적으로 발표한 사람은 헨디 조 기자였고 두 명의 UI 대학교 교수들은 주로 태평양 전쟁 당시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인 군무원들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고 내가 발표한 것은 일본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바라보는 시각 차이의 이유를 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이런 저런 일로 치어 부족한 시간에 만든 PPT 자료가 2시간 강연에 해당하는 물량이어서 현장에서 원고를 버리고 대체로 즉흥적인 발표를 20분간 했습니다.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부분에서 대부분 여성들인 청중들이 웅성거리는 등 가시적인 반응이 조금 보였다고 이날 사회를 맡았던 홍윤경씨가 알려주었습니다. BIPA에서 정식 인도네시아어 교육을 받은 홍윤경씨는 영국에서 공부한 재원으로 현재는 롯데쇼핑, 퍼시픽 플레이스 등에 고급 의류매장 운영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입니다.


세 시간의 세미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청중들의 진지한 반응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질문들도 인상적이었는데 한 나이 지긋하신 분 (아마도 UI대 교수님?)은 한국의 경제발전이 북한, 일본에 대한 경쟁심때문었냐 질문하셨고 한 여학생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이 사과의 배상을 하지 않으면 한국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를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작년 어떤 현지인 유튜버가 "한국인들이 위안부나 징용자로 나왔더라도 어쨋든 일본으로부터 연금을 받을 텐데 왜 일본을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질문에서 우리가 인도네시아를 잘 모르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인들도 한국이나 한국의 역사를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내 발표자료의 기획은 1년 만에 그렇게 인도네시아인 학생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준비가 충분치 못해 부득이 대부분 발표를 영어로 해야 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2019.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