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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스크랩] 이건 아닌데...

beautician 2019. 7. 18. 13:15

귀신 캐는 배동선 작가



<9> 귀신들의 천국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귀신 이야기를 인터넷에 연재하고 있는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 귀신은 이슬람이라는 수면 아래 흐르는 독특한 문화적 존재"라고 설명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귀신 이야기’ ‘주말의 귀신 극장’. 인터넷과 인도네시아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연재물이다. ‘믿거나 말거나’ 낯선 귀신 얘기들을 역사와 문화까지 담아 알기 쉽게 쏙쏙 풀어내는 등단 작가의 작품이다. 벌써 40종 넘는 인도네시아 귀신들이 그의 글 솜씨를 통해 한글이라는 문자로 다시 태어났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배동선(56) 작가는 1995년 ㈜한화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왔다가 공장이 문을 닫자 눌러앉았다. 봉제, 농산물 수출, 목재소 등 손댄 사업이 10년 내내 망했다. 영어 통역과 번역을 하는 아내가 생계를 꾸렸다. 대신 그는 사업 실패의 스트레스를 글쓰기로 풀었다. “리포트 내랬더니 소설 써 왔냐”는 교수의 타박과 교내 문학상 수상 등 대학 시절 꿈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운 것이다.


주인을 부자로 만든다는 인도네시아 아기 유령 투율. 배동선 작가 제공

그렇게 시작한 작문 소재가 하필 인도네시아 귀신이었다. 그 와중에 2016년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하는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타 등단했다. 귀신 연구 덕에 지난해엔 역사책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도 출간했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인도네시아 귀신과는 어떻게 연을 맺었나.

“광산 하던 친구가 주술에 걸린 것처럼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현대 의학이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했다. 자연스레 인도네시아 귀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인도네시아 역사와 고대 문화로 지평이 넓어졌다.”

인도네시아 대표 귀신 포쫑. 시신을 하얀 천으로 꽁꽁 묶고 얼굴을 드러내는 장례 풍습을 형상화했다. 배동선 작가 제공

-귀신이 실재하나.

“1940년대 독립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공산군의 자서전에 ‘총살했는데 (주술을 익혀서) 죽지 않더라’는 대목이 나온다. 1998년 폭동 때는 주술사로 몰린 200명이 살해당했다. 귀신 5마리를 잡았다는 뉴스가 비중 있게 다뤄지는 나라다. 귀신 들린 직원들을 봤다는 한인 사업가도 많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다수인데 귀신을 믿나.

“무속과 공존하는 신앙이라 그렇다. 이슬람교 전파 초기에 선교사들과 토착 귀신들이 타협하는 전설이 지역마다 전해진다. 한국은 귀신을 무서운 존재로 여기지만 인도네시아 귀신 중엔 돈을 벌어다 주는 놈도 많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사람이 아닌 귀신 탓으로 돌린다.”

임신 중 숨져 귀신이 된 쿤틸아낙이 등장하는 영화 포스터. CGV인도네시아 제공

-어떤 귀신들이 있나.

“널리 알려진 귀신은 △주인을 부자로 만든다는 아기 유령 투율(tuyul) △죽음을 형상화한 포쫑(pocong) △임신 중 죽은 여인이 변한 쿤틸아낙(kuntilanak) △색마 근드루어(genderuwo) 등 10종이다. 땅이 넓고 종족이 많다 보니 귀신 숫자는 대략 수천 종이다.”

-개인적으로 귀신을 믿나.

“없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직 못 봤다. 현지인 중엔 봤다는 사람 많다. 솔직히 믿지는 않는다. 연구할 뿐이다. 귀신은 문화다. 문화로 이해해달라.”

인도네시아 대표 귀신 색마 근드루어. 배동선 작가 제공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