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동화속 왕자와 공주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본문

일반 칼럼

동화속 왕자와 공주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beautician 2020. 3. 4. 10:00






왕자와 공주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해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결론을 난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맺어진 왕자들과 공주들도 그 후에 갈등과 고통을 겪어 성격차이나 숨겨놓은 애인 문제로 이혼하기도 하고 왕위를 찬탈당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패해 죽거나 노예로 떨어질 수도 있고 후궁을 들여 본처인 공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그렇게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로 동화를 마무리 짓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 동화들은 인생이 장기전이라는 진실로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 물론 그러니까 동화인 거긴 합니다.

 

교회 주보에 실린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지내는 고사에 무릎꿇기 싫어 기도실에 숨어있던 부장이 나중에 자기 위의 차기 사장 후보자가 짤리고 자기가 결국 그 자리까기 올라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사자로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했겠지만 내겐 참 얄팍하고도 일방적인 간증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간증의 맥락을 따라가 보면 고사에 참여하지 않은 자신은 축복을 받아 승진했다는 메인 스토리의  뒷면에 고사에 참여한 그 차기 사장 후보자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입니다일요일 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말 가족여행을 떠났던 한 집사님 가정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가족 전원이 사망했다는 예전 어떤 목사님이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며 성도들을 위협했던 것을 말입니다. 30년 다 된 일인데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당시 성도들은 아멘을 외쳤지만 그 목사님은 스스로 만유의 주재라 찬양하던 하나님을 교회 안나오는 사람들을 교통사고로 막 죽여버리는 참 파렴치하고도 잔혹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 고사를 피해 기도에 매달렸던 예의 부장은 같은 맥락의 생각을 하며 그 간증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 출처는 '직장인이라면 다니엘처럼'(원용일 저)라고 합니다. 난 사실 그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승진한 그가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 진급한 부장도 그렇게 잘린 차기 사장 후보도 그 인생이 거기서 그렇게 끝나버렸을 리 없습니다. 자랑스럽게 간증하던 그 사건이 결국 자신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고 젊은 날의 말도 못할 실패가 훗날 그의 성공을 담보하는 시금석이  되었음이 증명되기도 하는데 저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그 승패가 뒤바뀌지 않은 채 현상이 지속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장기전이니 말입니다. 인생을 저렇게 간단히 해석했던 부장에게 하나님은 너의 자랑이 너의 부끄러움이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성서에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4.3 사태 당시 제주도 양민들을 학살하던 서북청년단에 대해 '우리 교회 청년들이 잘 하고 있다'고 말했던 한경직 목사님의 입도, 온갖 부정부패로 국가의 자산고 국민의 세금을 철저히 탕진해 버리고도 역대 정권 중 '도덕적으로 가장 당당힌 정권'이라 말했던 이명박 전대통령의 입도 이젠 부끄럽기 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목사님도 세상 꼭대기에 섰던 위정자도 결국 그리 멀리 내다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ROTC
전역자라면 대기업 입사가 보장되어 있다시피 하던 1988 6월 사회로 복귀한 내 동기들 중 J만 유일하게 취직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베트남어를 전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공산화된 베트남은 한국에겐 적국이었고 외교관계도 없었으니  그의 전공은 오히려 그의 족쇠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중국어와 영어에 더욱 매진하던 그를 보면 대부분의 동기들은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어느날 베트남 시장이 열리자 갑자기 각광받기 시작한 그는 LG그룹 기획실을 거쳐 유수한 업체들을 타고 가장 먼저 베트남에 들어갔고 승승장구한 끝에 지금은 호치민 일대에 현대화된 공장 여러 개를 거느린 제약회사 회장이 되어 있습니다. 동기들 중 가장 성공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인생은 장기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한순간 수세에 몰렸던 젊은이가 강산이 두세번 변한 후에도 여전히 그 코너에 몰려있을 리 없으니 말입니다

 

물론 J의 삶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며 변화해 갈 것입니다.

내가 처음 5년 임기를 예상하며 인도네시아 왔을 때 만약 여기서 20년 넘게 살게 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여러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해보려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현지인들을 사귀며 저변을 넓히고 비파에서 정식으로 인니어를 배울 뿐 아니라 중국어와 네덜란드어도 배우고 현지 국적을 따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했을 것입니다. 20년은 그 모든 것을 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코앞의 미래도 바라보지 못했던 나는 그 모든 기회를 놓치고 그 긴 세월을 허송하고 말았습니다물론 그냥 논 것은 아니지만 더 할 수 있었을 일들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현지 문화와 무속, 근현대사 역시 일찌기 눈을 떴다면 현지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하고 학위도 몇 개 더 땄을 지 모를 입니다. 그래서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 그것들을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상황은 더욱 빡빡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 것 같지만 앞으로 20년 후 다시 후회하기도 싫고 그때 가서 인생이 장기전이라는 것을 새삼 되뇌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말하길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고 저런 성공을 거두었다 하는 사람들의 간증 속에서 오히려 그런 교만이 더욱 느껴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인생은 장기전이란 말이 성서에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일까요?

 

 

2018.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