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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의 부통령들 본문
수하르토 정권시절 부통령들을 보면 그 정권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신질서 정권의 기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는 수하르토의 재임기간 동안 부통령을 역임한 여섯 사람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스리 술탄 하멩꾸부워노 9세 (Sri Sultan Hamengkubuwono IX, 무소속, 재임기간 1973. 3. – 1978. 3.): 족자 술탄, 국방장관 등 초창기 수까르노 정부의 요직을 역임. 이 분은 수하르토도 어쩌지 못할 인도네시아의 진정한 영웅 중 한 명이죠.
- 아담 말릭(Adam Malik, 골까르당, 1978. 3. – 1983. 3.): 이 분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립선언일 전 수까르노와 하타를 랑가스뎅끌록으로 납치해서 독립선언을 종용했던 청년 열성당원들 중 한 명이었죠. 언론계를 거쳐 KNIP 부회장, 1962년 서부 파푸아 이양협상의 인도네시아 단장, 통상부 장관, 교도민주주의 정착부 장관, 외무성 장관까지를 수까르노 정권에서 지냈습니다. 그런 후 유연하게 수하르토로 갈아 타 골카르 입당 후 1971년 UN 총회 의장, 1977년 국민자문의회(MPR) 의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 우마르 위라하디꾸수마(Umar Wirahadikusumah, 골까르당, 1983. 3. – 1988. 3.): 육군 대장 출신, 인도네시아군 부참모총장을 역임했습니다. 군시절 수하르토를 추종했고 9.30 쿠데타 진압 때 수하르토의 큰 신임을 얻은 인물이죠.
- 수다르모노(Sudharmono, 골까르당, 1988. 3. – 1993. 3.): 육군 중장 출신. 그의 이력은 전임 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뜨리 수뜨리스노(Try Sutrisno, 골까르당, 1993. 3 – 1998.3): 육군 대장 출신, 인도네시아군 참모총장을 역임. 군 최고사령관을 마치자마자 부통령이 되었으니 수하르토 정권이 군을 손아귀에 쥐고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Bacharuddin Jusuf Habibie, 골까르당 1998. 3. 14 – 1998. 5. 21): 테크노크랏, 과학기술 분야 출신으로 수하르토 하야 후 대통령직을 승계합니다. 그는 경제위기를 맞은 수하르토 정권이 내세운 비장의 카드였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던 것이죠.
첫 10년간 차례로 부통령을 역임한 족자 술탄 하멩꾸부워노 9세와 아담말릭은 독립전쟁 당시부터 주요인사였을 뿐 아니라 수까르노 시절 마지막 내각에서 수하르토와 함께 나란히 부총리를 맡았던 인물로 훗날 국가영웅으로 지정됩니다. 그들은 절대권력을 쥔 수하르토조차 함부로 하기 어려운 중량급 정치인들이었으므로 대통령과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견제작용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부통령에 앉히고도 수하르토가 마음대로 국가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수하르토는 강력한 군의 지원을 배후에 깔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 그는 더 이상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인도네시아를 완전히 거머쥐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그 후 내리 15년간 군수뇌 출신들이 부통령을 맡습니다. 이는 정권의 기조가 철권통치로 돌아서며 군이 권력의 핵심에서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였습니다.
1997년 태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자 이듬해 3월 경제관료 출신인 하비비를 부통령으로 세웠으나 이미 기울어져 버린 판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1998년 5월 뜨리삭띠 대학생들 다수가 시위 중 경찰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촉발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는 도시 빈민들의 광범위한 약탈행위로 번져 자카르타에서는 며칠동안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무정부상태가 이어져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파괴되었고 국내외의 비난과 압박을 견디지 못한 수하르토는 결국 하야성명을 내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지32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재자의 말로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2018.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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