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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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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 나쁜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beautician 2017. 11. 9. 12:00

2017년 10월 17일은 어쩌면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습니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1996년 한화를 나온 후 2000년대 중반에 잠시 몇번 남의 일을 해준 적이 있으니 마지막 월급을 받아본 지 10년도 훌쩍 지난 후 다시 찾아온 기회였습니다. 마침 하던 일들이 완전히 침체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나는 중이었습니다. 다시 월급장이가 되면 사업을 살리려던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이지만 삶의 질은 당장 더 나아질 터였습니다. 해외에서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영세 상인으로서 20년 독립군 생활을 하는 것은 풍찬노숙까지는 아니지만 들쭉날쭉한 수입과 불확실한 미래로 골병이 드는 생활입니다. 그것도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니 이 시점에 어디든 직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직장 밖의 세상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지 알 수 없는 법이고 한번 떠난 정상궤도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그토록 멀고 험난하다는 것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죠.

 

그건 9월말 어떤 미팅을 통해서였습니다.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 대관업무 통역을 요구하던 업체가 아예 출근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 왔던 것입니다.추석이 다가오던 시기였으므로 사장은 그로부터 3주 후인 10월 17일 첫 출근을 해달라 했습니다. 물론 3주란 사람 마음이 몇십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므로 어쩌면 그 사이 결정이 뒤바뀔 수도 있으리라 우려한 것이 사실입니다.

 

"난 사업을 장난으로 하는 사람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돈을 수 조씩 만졌던 사람이에요. 한번 뱉은 말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 이렇게 전개되니 한편으론 안정된 직장생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간 벌려놓은 일들을 정리하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몸부림친 만큼 아직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던 일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들을 접거나 정리하는 일은 관련된 사람들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문제가 될 일은 양승윤 교수님과 지난 몇개월째 진행해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른, 네덜란드 고전소설 '막스 하벨라르' 완역본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난 초벌번역을 했습니다. 몇 차례 기일을 변경해 내 초벌번역을 11월 4일까지 마감키로 한 상태였는데 이제 10월 17일 출근한다면 그 이전까지 번역전반과 오역확인 및 오탈자수정을 모두 다 마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미 출판사와 계약이 체결되었고 출판일정도 다 나온 상태였으므로 내 사정 때문에 시간을 더 늦출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번역 시작한지 이미 4개월 가까이 되었고 마지막 한 달간은 깊은 슬럼프에 빠져 불과 몇 페이지 나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고 있었는데 난 이제 남은 3주 안에 내가 맡은 부분을 마치기 위해 온종일 번역에 전념하는 것으로 부족해 매일밤을 새야만 했습니다.

 

그리 한지 1주일 남짓 지났을 때 그 회사의 인사부장이란 사람이 이메일을 한 통 보내왔습니다. 나를 면접했던 그 사장이 추석 쇠러 한국에 갔는데 채용결정을 취소한다고 연락을 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거나 어이없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출근 날짜를 3주 후로 결정하던 그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이미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일생 한번 당하기도 힘든 이런 일을 난 이미 몇 번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크게 실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정상궤도로 돌아가는 길이 다시 무너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큰 소리 뻥뻥 치던 사람이 손바닥 뒤집듯 간단히 자기 약속을 바꾼 것에 사람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뭔가 상황이 변한 것이 분명한데 그 결과의 책임을 자신이 지는 대신 상대방에게 전가해 버리는 성향 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우리 현실세계에서는 책임감 있는 사장이나 상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딱히 놀랄 일도 아닙니다. 더욱이 그는 그걸 다른 사람을 통해 통지했던 거였고요. 그는 아마도 누군가의 뒤에 숨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며칠 후 그는 한국에서 돌아왔다며 전화해 왔는데 알고 보니 한국본사에서 이미 사람을 뽑아놓은 상태여서 부득이 내 채용을 취소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건 별 의미없는 해명이었는데 말입니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사실은.그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해명이란 대개의 경우 절대 진실일 리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처음 나에게 출근하라 말하던 그 순간에 이미 그렇게 중간에 취소하리라 마음먹고 계획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그런 악의를 품을 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하지만 초면이기에 악의를 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물론 그 정사장이란 사람이 악의를 품고 일부러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경솔했다는 것과 그의 해명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난 이미 면접결과를 말해주었던 아내가 분명 크게 실망할 거라 생각해 어떻게 채용취소 소식을 말해야 할지 마음을 썪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채용이 취소된 직후 미용 세미나를 조직하는 일이 구체화되면서 일정과 수익구도가 어느 정도 확정되기 시작했고 기존 취급하던 제품들의 주문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크게 일어나는 건 아니었지만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믿을 구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10월 17일을 지나면서 만약 그날까지 모든 걸 정리하려 하지 않았다면 번역은 십중팔구 마감을 댈 수 없었을 것임을 절감했습니다. 1차 초벌번역은 10월 13일 끝났지만 오역검토와 오탈자 수정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200자 원고지 90장 전후의 단편소설을 퇴고할 때에도 한번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이 10시간은 족히 드는 작업이렸는데 200자 원고지 2천장이 넘는 양을 검토 뿐 아니라 영어원문을 다시 비교하며 오역여부를 최소한 두 번쯤 검토하는 건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역검토와 1차 퇴고를 마친 것이 11월 2일, 그리고 최종 오탈자 수정이 마감일인 11월 4일 끝났습니다. 그것도 마지막 일주일간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작해 새벽 2-3시까지 붙잡고 늘어진 결과였습니다.



 

11월 4일 원고전체를 양교수님의 재교를 위해 송고하면서 난 번역에 매진했던 지난 5개월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10월 17일부터 그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면 번역작업은 연말까지도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렵사리 마감시간을 대었다 치더라도 충분한 수정과 검토를 거치지 못한 험한 원고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겠지요.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쁜 일이 벌어져 사람을 낙담시키지만 그로 인해 안될 일이 성사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죠.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 정말 우습게 넘길 수 없는 진리입니다.

 

어쨋든 번역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한번 독립군활동에 매진해야 할 때가 찾아왔습니다.

 

 

2017.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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