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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돋는 팔 본문
새로 돋는 팔
영화 ‘고지전’(2011년, 장훈 감독, TPS컴파니)은 한국전쟁 막바지의 참상과 전쟁 속에 일그러진 인간군상의 모습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스팩타클한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흥행에서도 일정부분 성공한 이 영화는 그러나 그 강렬한 메시지와 여운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권에 의해 좌파영화로 낙인 찍혔습니다.
물론 그 이유를 유추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반전 메시지가 영화 전반을 흐르고 있었지만 류승룡 김옥빈 등 멋지게 묘사된 일부 북한군들, 그리고 자기가 살기 위해 아군에게 총질하고 무모한 명령을 강요하는 상관을 살해하는 하사관들의 모습 등이, 비록 그것이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허구이며 예술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불편해 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숙하고 자기만 한없이 잘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맺어진 휴전협정이 그 발효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는, 그런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래서 그 전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던 양쪽의 의지에 내몰린 병사들이, 그 긴 전쟁의 마지막 날 더욱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고 그 결과 살아남을 수도 있었던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야만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물론 그 전쟁을 끝내는 것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 목숨을 제물로 하는 것이죠. 이 사실 역시 누군가의 양심이나 신념을 거슬렀을까요?
그런데 스크린을 압도하던 그 수많은 죽음과 파괴의 영상들보다도 거기 등장하는 한 전쟁고아 소녀의 말 한 마디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이 팔도 나중에 크면 새로 나오죠?"
폭발물이나 총격으로 팔 한쪽이 팔꿈치 쯤에서 잘려나간 아이였습니다.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듯, 유치가 빠지면 새 치아가 돋아나오듯 영화 속 그 아이는 잘린 팔도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다시 새 팔이 돋아날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파이더맨이나 온갖 수퍼 히어로 영화를 보면 잘린 팔 다리 한둘쯤은 간단히 다시 자라니 복원되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의 갈망과 욕구들이 영화와 소설과 만화와 TV에서 구현되고 무한 재생산되는 것이죠. 하지만 고지전은 비록 영화이면서도 그런 판타지를 허락하지 않았고 아이는 자신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뼈아픈 진실을 알고 무너져 내립니다.
주일날 교회주보에서 제거된 갈비뼈도 골막이 손상되지 않으면 새로 자라난다는 기사를 읽고 고지전의 그 소녀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험한 사고를 당해 이식수술을 포함한 대형수술을 받았던 그 기사의 주인공은 이식수술용으로 채취한 자기 갈비뼈가 새로 자라났다는 사실을 토대로, 하나님이 에덴에서 잠자던 아담의 갈비뼈를 하나 뽑아 이브를 빚어 만들었을 때 그 뽑힌 갈비뼈가 결국 다시 자라났기에 그때의 아담도, 오늘날의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은 수의 갈비뼈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고 성서와 과학을 적당히 뒤섞어 창조과학론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몸에는 다시 자라나는 기관도 있지만 영영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기관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매우 불공평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기왕 창조할 때 모두 재생되고 다시 자라날 수 있도록 디자인 하시지 그렇게 하지 않은 창조주가 좀 인색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은 사람도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사람도, 질병으로 장기의 일부나 신체의 일부를 들어낸 사람들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100% 원상복구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면 세상은 조금 더 행복하고 더욱 긍정적인 곳이 되었을까요? 물론 그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겠죠. 모든 것이 회복되는 세상 말입니다.
하지만 아주 일부를 제외하곤 신체 대부분이 재생되거나 원상복구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세계관에 분명 일정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꼭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신체 기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나 염치처럼 우리 몸 어딘가에 붙어 있을 게 분명한 무형의 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양심과 염치를 버린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 양심과 염치가 다시 자라나 회복되기를 기대하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런 일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남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슬퍼하는 공감능력을 개발하지 못한 사람들이 영영 그것을 갖지 못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신체기형을 갖게 된 사람들처럼 그런 감정적, 정신적 결함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고지전이나 변호인, 택시운전사, 군함도 같은 영화들을 좌파영화라 매도하는 고매하신 분들,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과 자녀들을 유족충이라 폄하하며 유민아빠의 단식투쟁현장에서 폭식투쟁이란 걸 하면서 희생자들의 처참한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없이 조롱했던 사람들, 누군가를 블랙리스트로 묶어 배제해 온갖 불이익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던 사람들은 현실사회에서 어쩌면 세련된 양복에 멋진 헤어컷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잘려나갔거나 개발되지 못한 그들의 양심과 염치는 고지전 고아소녀의 잘린 팔처럼 영원히 다시 돋아나지 못합니다. 골막이 상한 겁니다.
국정감사를 보면서 그 고지전을 기억해 낸 것은 이미 져버린 전쟁에서, 그러나 그 판결이 아직 2년 남아 있어 그동안 온갖 분탕질을 치고 있는 옛 여당 의원들의 억지들, 전 정권에서 모든 전횡을 일삼고서도 온갖 핑계를 대며 회계하지 않는 옛 관료들과 관변단체들, 전직 대통령들은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인내심을 한없이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고지전의 용사들 대부분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지만 양심과 염치를 잃은 여왕의 기사들은 왜 매번 기필코 돌아와 국민들 가슴에 창을 겨누는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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