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하멩꾸부워노 5세 3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 부록(8) 완결

제8장 : 그날 이후 족자 술탄국– 끄라톤 술탄 살인사건 하멩꾸부워노 5세는 장성한 후에도 여전히 소심한 성격으로, 주어진 것은 누리되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 버릇이 몸에 베여 있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눈에 나는 것도 원치 않았지만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치적 행위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정치와는 거리가 먼 문화예술 방면에 관심을 쏟아 스스로 몇몇 궁중무용을 고안하기도 했고 그의 재위기간 중 와양 그림자극 변사들 숫자도 5배나 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하멩꾸부워노 5세의 무기력한 처신에 만족해한 것은 아닙니다. 술탄의 형제인 구스티 라덴 마스 무스토요(Gusti Raden Mas Mustojo)는 그런 모습을 노골적으로 혐오했습니다. 그는 하멩꾸부워노 ..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7)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7)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후1826년 내내 네덜란드와 망꾸느가라안 봉국의 군대들을 맞아 승승장구했습니다. 바글렌에서도 농민군이 네덜란드군을 몰아냈고 끄지완(Kejiwan)에서도 베이 왕자(Pangeran Bei-조요꾸수모 왕자)가 승전보를 전해왔습니다. 족자 북동부 방면의 들랑구(Delanggu) 지역에서는 양쪽의 대군이 맞붙는 매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전황이 디포네고로군에게 크게 유리해지면서 네덜란드군을 짓쳐나가 결과적으로 ‘들랑구 대첩’이라 불려 마땅할 큰 승리를 거둡니다. 여기서 디포네고로군은 수십 정의 소총과 12문의 화포를 노획했습니다. 그후 한동안 네덜란드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자 디포네고로군 전략고문이 되어 있던 끼아이 모조의 제안에 따라 디포네고로 왕자는..

[인도네시아 근대사] 술탄 하멩꾸부워노 5세 – 끄라톤 살인사건

술탄 하멩꾸부워노 5세 – 끄라톤 술탄 살인사건 스리 술탄 하멩꾸부워노 5세 하멩꾸부워노 5세의 생애는 사뭇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막 세 살이 되던 해에 술탄의 왕좌에 앉았다가 증조부인 하멩꾸부워노 2세를 다시 불러들인 네덜란드 총독부에 위해 폐위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신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