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센똣 알리바사 3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 부록 (7)

제7장: 센똣 쁘라위라디르죠의 생애 센똣 쁘라위로디르죠는 네덜란드에게 항복한 후 매우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입니다. 그는 디포네고로 왕자 회유에 앞장섰고 자바 전쟁이 끝나자 서부 수마트라에 파견되어 네덜란드 편에서 이슬람 파드리 분파(Paderi)의 반란 진압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는 그렇게 평생을 네덜란드에게 놀아난 끝에 1855년 4월 17일 유배지에서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한때 모셨던 디포네고로 왕자가 마카사르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지 3개월 후의 일이었죠. 센똣은 한때 세상을 전율케 한 영웅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지 못했습니다. (계속)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0)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0)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 족자 외곽에서 여러 뚜먼궁들이 네덜란드군에 백기를 들었고 망꾸부미 왕자의 부인도 네덜란드군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 난 이제 더 이상 뭘 위해 싸워야 할지 모르겠구나.” 뻥아시의 야전막사에서 디포네고로 왕자와 마주앉은 망꾸부미 왕자는 술탄과 신하가 아닌 삼촌과 조카로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버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이모기리의 묘역에도 방문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질렀는데 이젠 가족들마저 족자 끄라톤에 잡혀갔으니 난 이제 반쯤 죽은 시체나 다름없구나.” “숙부님, 그럴수록 힘을 내셔야죠.” “내 가족들을 세랑 왕자가 잘 돌봐 주고 있다고 하는구나.” 망꾸부미 왕자는 서한 한 통을 디포네고로 왕자 앞에 내놓았습니..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6)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6) 이쯤 되자1825년 8월 7일 드콕 장군은 양자 협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서둘러 디포네고로군에 보냈습니다. 네덜란드로서는 당장 전쟁을 멈추게 하진 못하더라도 시간이라도 벌어야 할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서한엔 대담하게도 이런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자들은 신분의 귀천과 지은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사면해 줄 것이다’ 이 편지를 함께 열람한 고아슬라롱의 디포네고로 왕자, 망꾸부미 왕자, 끼아이 모조 등은 실소를 터뜨리며 조요꾸수모 왕자(Pangeran Joyokusumo)와 수르옝로고 왕자(Pangeran Suryenglogo)에게 강경한 답신을 쓰도록 했습니다. ‘네덜란드군이 무장해제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그 길을 막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