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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

라라 종그랑의 전설

beautician 2017. 7. 18. 17:17


라라 종그랑의 전설





 

자카르타의 멘뗑 지역엔 유서 깊은 동상이나 공원들은 물론 박물관에 버금가는 소장품들을 진열하고 있는 식당들도 있습니다. 라라 종그랑(Lara Djonggrang)이라는 식당 역시 그런 곳입니다. 예전에도 언젠가 한 번 와본 듯한 곳이지만 그 당시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식당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듯 합니다.

 

7 17일 이곳을 방문한 것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양승윤교수님과 한인니문화연구원 사공경원장님과의 회동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기묘한 인연으로 개인적으로 알게 된 양교수님과 작년 말 멘뗑의 또 다른 고풍스러운 음식점인 꾼스트링 플레이스(Kunstkering Pleis)에서 처음 안면을 튼 후 어찌어찌 하여 막스 하벨라르라는 170년 전 네덜라드 고전소설의 영어판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고 중간에 조정과정을 거쳐 전반적인 기획 및 전체적 관리와 완성을 양교수님이 하시고 나는 번역 실무, 사공 원장님이 자카르타의 물타뚤리라는 제목의 서문을 써주기로 하면서 구성된 물타뚤리 번역팀의 회동이었습니다.


물타뚤리 번역팀

 

현지 한인사회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소개의 저변을 넓힌 사공 원장님은 아마도 이런 식당들을 잘 아시는 모양이었고 덕택에 평소 같으면 범접하기 어려웠을 고급식당에 발을 들여 볼 수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오갔던 대화 중 식당 이름인 라라 종그랑에 대한 얘기가 매우 흥미로워 따로 찾아 보았습니다. 이 정도의 전설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한국인들은 물론 인도네시아에 오래 사는 외국인으로서도 최소한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무지는 죄악이니까요.

 

여기 라라 종그랑(Lara Djonggran) 그러나 더 많은 경우 로로 종그랑(Roro Jonggrang)이라고 표기되는 아름다운 공주의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각주를 다는 수고를 덜기 위해 여기서 밝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영어판 위키백과에서 가져왔고 식당의 사진들은 직접 찍었습니다.

 

 

설명: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7/Durga_Loro_Jonggrang_copy.jpg/250px-Durga_Loro_Jonggrang_copy.jpg

쁘람바난 사원의 시바신전 북쪽 방에 세워진 이 두르가 여신상 (두르가 마히사수라마르디니 -  Durga Mahisasuramardini) Princess Rara Jonggrang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설명: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a/Prambanan_Shiva_Temple.jpg/220px-Prambanan_Shiva_Temple.jpg

쁘람바난 사원의 시바신전

쁘람바난 사원 전경

 

 

이 라라 종그랑의 전설에 대해서는 아마도여러 버젼이 존재하는 듯 하고 몇몇 한글로 번역된 자료들도 있는데 그 전체 얼개는 비슷하나 디테일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다음 사이트에 들어가면 조금 더 구체적이지만 약간은 다르게 전개되는 라라 종그랑의 전설을 볼 수 있습니다.

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106Rara (Roro)는 자바어로 귀족 처녀를 뜻하므로 Rara Jonggrang Slender Virgein 늘씬한 처녀를 뜻한다그녀의 얘기는 고대 자바의 두 왕국뼁깅(Pengging)과 보꼬(Boko)에서 유래한다

 

뼁깅은 쁘라부 다마르 모요(Prabu Damar Moyo)국왕이 통치하는 번영한 나라였고 반둥본도워소(Bondowoso) 왕자는 국왕의 아들이었다한편 보꼬는 잔혹한 식인거인 쁘라부 보꼬(Brabu Boko)가 다스렸는데 빠띠 구뽈로(Patih Gupolo)라는 또 다른 거인이 그를 도왔다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추악한 본성에도 불구하고 쁘라부 보꼬에게는 라라 종그랑이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쁘라부 보꼬가 그의 왕국의 영토를 확장하려 하여 뼁깅을 침략하려고 군대를 훈련시키고 세금을 올리는 장면으로 돌입한다(원래는 반둥 조코 왕자가 영적 수련을 통해 악마를 제압하고 초월적 능력을 얻으며 반둥 본도워소라고 불리게 되는 과정이 선행되지만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과감한 생략을 통해 전쟁부터 벌이고 보는 패기를 보여주고 있다 - 역주)보꼬가 뼁깅을 기습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양쪽 나라의 기근이 드는 등 총체적 파국으로 치닫는다침략에 맞서 쁘라부 다마르 모요는 그의 아들 반둥 본도워서를 보내 쁘라부 보꼬와 싸우게 한다격렬한 전투 끝에 왕자는 신비한 초능력을 발휘해 쁘라부 보꼬를 죽일 수 있었다그 조력자 거인 재상 빠띠 구뽈로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서 퇴각했다.

 

보꼬 왕궁으로 돌아온 빠디 구뽈로는 라라 종그랑 공주에게 그의 아바지가 전사했음을 알렸다공주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만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뼁깅의 군대가 포위작전을 펼쳐 마침내 왕궁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반둥 본도워소 왕자는 슬픔에 잠긴 공주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녀에게 청혼했다그러나 공주는 그 요구를 단번에 거절했다반둥 본도워소 왕자는 그래도 결합을 강요했으므로 라라 종그랑 공주는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걸어 조건부 승락을 한다우선 왕자는 잘라뚠다(Jalatunda) 우물을 파야 했고 두 번째로 하루 밤 만에 1천 개의 신전을 세워야만 했다.

 

사랑에 빠진 왕자는 이에 동의하고 곧 일을 시작했다(언제나 그렇지만 사랑이 문제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노래를 불렀지. '사랑, 그놈~' 이라고 - 역주) 그는 그의 초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해 순식간에 잘라뚠다 우물을 파고 그 결과물을 공주에게 보여주었다공주는 그를 속여 우물 안으로 들어가게 한 후 빠디 구뽈로가 우물에 바위를 채워 넣어 왕자를 생매장시켰다반둥 본도워소 왕자는 천신만고 끝에 우물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녀를 용서해 주었다그러나 공주는 전혀 감동받지 않았고 오히려 복수심만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두번 째 조건을 실행하기 위해 왕자는 명상에 들어가 다수의 악마들을 지상으로 소환했다그 악마들의 도움으로 999개의 신전을 세웠고 이제 마지막 한 개의 건축에 돌입했다 그러나 왕자의 노력을 무산시키기 위해 공주는 동쪽에 불을 밝혀 마치 날이 밝아오는 듯 보이게 하고시녀들을 시켜 쌀을 찧기 시작했다이는 전통적으로 새벽에 행하는 관습이었다곧 해가 떠오를 거라고 착각하게 된 악마들은 마지막 신전을 완성하지 못하고 땅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격분하여 라라 종그랑에게 저주를 걸어 석상으로 변하게 만들어 버렸다그녀는 결과적으로 마지막 천 번째 신전을 장식하는 하나의 장식품이 되어 반둥 본도워소 왕자의 결혼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마지막 단계가 되었다. (일설에는 반둥 왕자가 이 석상을 데리고 살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석상과 결혼한 왕자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리 흔치 않은 전개다 - 역주)

 

이 이야기는 좀 더 많은 디테일과 흥미로운 전개를 보이지만 위키백과에서는 이 정도 소개에서 그친다.

 

이 전설은 현지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민화로서 라뚜 보꼬 궁전(Ratu Boko Palace), 셀라/쁘람바난 사원 중앙실의 드루가 석상인근 세우 신전 단지(Sewu Temple Complex) 등 중부자바의 고고학적 장소들의 초자연적 믿음의 기원을 보여준다이들 신전들은 9세기 시르카(Circa) 왕조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 신화는 그 후인 마따람 술탄왕국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따르면 이 일천 개 신전은 세우 신전단지의 일부인 것으로 보며 세우(sewu)란 자바어로 1천의 숫자를 가리킨다공주는 쁘람바난의 시바신전 북쪽 석실의 두르가(Durga) 여신의 형상으로 남았다고 여겨지며 라라 종그랑 또는 slender virgin (늘씬한 처녀)라고 불리운다.



세우 신전

 

또 다른 해석에 따르면 이 전설이 이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약간은 모호한 집단기억에 기반한 것이라고도 한다. 9세기 무렵 이 지역에서는 사일렌드라(Sailendra)왕조와 산자야(Sanjaya)왕조가 중부자바의 패권을 두고 격돌했는데 보꼬 국왕은 아마도 사일렌드라 왕조의 사마라뚱가(Samaratungga)왕을 묘사한 것이고 반둥 본도워소 왕자는 산자야의 왕자인 라까이 삐까딴라라 종그랑은 라까이 삐까단의 아내이자 사일렌드라 국왕의 딸이었던 쁘라모다와르다니(Pramodhawardhani)를 묘사한 것이라 한다보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은 사일렌드라의 후계자 발라뿌드라데와(Balaputradewa)와 그의 누이 쁘라모다와르다니 사이에 두고 벌어진 경합이었다고 추정한다쁘라모다와르다니는 남편인 라까이 삐까딴의 지원을 받아 마침내 삐까딴이 승자가 되어 사일렌드라 왕조는 중부자바에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no=13701

 

그 라라 종그랑 공주가 이제 자카르타 시내 멘뗑의 고급스러운 식당이 되어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2017. 7. 18.


P.S. 라라 종그랑 식당의 다른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