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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꿈은 이루어지는가?

beautician 2016. 8. 7. 00:34


한때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고 2학년 시절 교내 문학상에 도전해 소설부문 가작으로 교지에 글을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죠.

당시 당선작이 없는 가작이었습니다.


그런 후 대학 4학년 시절 외문문학상에도 입선됐었죠. 이번에도 당선작이 없는 가작이었습니다. 

그런 대로 글을 쓰긴 하지만 아무리 당선작으로 꼽을 다른 경쟁작품이 없다 하더라도 내 글을 당선작으로 올리기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뜻이었죠. 


그게 문학상에 공모하여 글을 내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 군복무와 대기업 신입사원 시절이 이어지면서 빠듯하게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면서 글쓰는 일은 뒷전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결혼 초창기 시절까지 부족한 수입을 메우기 위해 밤늦게까지 영어번역을 했지만 그걸 가지고 글쓰는 일을 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시간을 허비하며 신춘문예에 응모할 수 있었던 그 많은 시간들을 흘려 보내고 말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40대를 지나면서였지만 정작 신춘문예의 문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 베트남으로 옮겨갈까 고민하던 2014년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공모전을 위한 글을 쓰지 않았고 내 감수성과 글솜씨는 낡은 과도처럼 철저히 무뎌져 있었습니다. 너무 늦게 시작했고 뒤늦은 시도는 무모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4월경 재외동포재단에서 실시하는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을 다시 두드려 보기로 했습니다. 제 15회 이후 3년만이 재도전이었죠. 자카르타 생활이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들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조선배의 이야기를 담아낸 그 글을 쓰고 다듬는 것은 2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7월로 예정되어 있던 발표는 8월로 접어들고서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나도 이미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8월 4일 금요일 오전에 한 이메일이 날아 들었습니다.

그 제목은 이랬습니다.


안녕하세요. 재외동포재단에서 소설부문 심사결과를 알려드립니다. 


난 한숨을 내쉬었어요.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내용은 너무나 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응모해 주셔서 고맙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블라 블라 블라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단 몇 번의 시도만에 뭔가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였을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열어본 그 이메일은 정반대의 내용이었습니다.




소설부문 대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난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내가 대상이라고....?

그것도 당선작이 없는 가작이 아니라...?


비록 국내의 내로라하는 신문사들이 주최하는 신춘문예와는 현저히 격이 다른 무대이기 하지만 전세계 재외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문학상에서 그 수많은 나라에서 많은 교민들이 응모했을 공모전에 자카르타 한 구석에서 일상의 업무에 시달리던 내가 대상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하며 전혀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자기야, 나 등단했다.'


그렇게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 것이 내가 제일 처음 한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상을 타게 된 것 만으로 등단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마음만은 등단한 것 이상으로 기뻤습니다.

10대시절부터 꿈꿔왔던 어떤 일 하나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니 말입니다.


나보다 내 아내가 더 기뻐해 준 것도, 그래서 처가 단톡방에 마구 자랑을 해댄 것도 좀 민망스럽지만 한편으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덕택에 그간 돈 버는 일 대신 딴 짓 하고 있었다는 게 들통나긴 했지만서도요. 그날 저녁 아내와 자카르타를 방문중이던 아들을 불러 내 끌라빠가딩의 한 경양식집에서 스테이크를 자르며 이 첫번째 결실을 함께 자축했습니다.


물론 아직 상패와 상금은 전달되기 전이고 재외동포재단 홈페이지에 입상자 공고가 오르지도 않은 상태이니 폭죽을 터트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게다가 당선소감을 적어 내라는 요청에 어떻게 글머리를 열어야 할까 목하 고민 중이기도 합니다. 소설 그 자체를 쓰는 것보다 당선소감을 쓰는 게 더욱 민감하고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중입니다.


어쨋든, 이렇게 꿈을 하나 이루었습니다.

물론 난 또 다른 꿈들도 꾸고 있습니다.

꿈은 정말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일까요?



2016.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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